이번호 보기


행복이 어디 있는가? 생과 사가 있는 바로 이 자리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학사대 - 지명┃해인사 승가대학 3학년 2013년 08월 378호
2013년 7월 10일 감자운력
아침공양을 하러 나갔을 때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가야산 허리를 자욱하게 감고 있던 안개가 어느새 해인사 도량을 화엄세계로 장엄하게 수놓고 있었다.
해인사에 온지 삼년이 지났다.
행자복을 입고 차수하며 지내던 일들이 벌써 엊그제 같은데…갑자기 조바심이 난다.
“그동안 나는 여기서 무엇을 배우고 익힌 걸까?”
처음 머리를 깎을 때부터 나는 스스로의 ‘틀’을 만들고 살았다. 주변 상황에 물들지 않고 청정한 그대로의 모습, 몸은 변하더라도 내가 지니고 있는 순수한 마음. 그것만은 나에게 ‘변하지 않아야 할 무언가’로 생각을 하고 굳게 다짐을 했다. 스스로 타성에 젖으면 안 된다고 거듭 다짐했고, 동진이라고 말씀하던 스님들의 말에 더욱 ‘틀’을 고집했다. 그러나 그것은 점차 시간이 지나갈수록 나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그 틀은 내가 원했던 이상이 아닌 나를 그 안에 가두는 하나의 집착이었다. 점차 그것은 더욱 커져버려 나를 항상 불안하고 초조하게 했고 조금도 틀에서 벗어난 상황이 닥칠 땐 나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내가 ‘틀’을 쥐고 놓지 않은 이유는 변해가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대한 안목이 없던 나에게 세상은 그야말로 혼돈과 가식의 세계였다. 조금전만해도 웃고 즐겁던 것들이 금세 틀어지고 시들어 지는 것, 이 세계의 가식적인 얼굴이 역겨웠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 물들지 않은 어린아이의 순수한 마음을 동경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는 부처님의 가르침처럼 나 역시 변해가고 있었다.
당시 커져버릴대로 커져버린 ‘틀’은 결국 마음의 병으로 번져 나를 잠식했고, 나는 절망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틀’을 고집하면 고집할수록 괴로워서 차라리 받아들이는 것이 낫지도 모르겠다고. 옳다고 고집한 것을 놓아버리기로 했다.
“받아들이자.”
내가 싫어하는 것들을 조금씩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부정이니 가식이니 하는 것은 사실 내 스스로가 만들어낸 집착에 불과한 것이라고.
그때부터 세상과 쌓은 내 자신의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왜 저럴까?” “왜 저렇게 하지?” 라는 등의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이 사실 내 입장에서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행복이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내 스스로 상황을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마음가짐에서 행복이 나오는 것이었다.
결정된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의 선택이 낳은 결과를 내가 받을 뿐이었다.
나는 여태껏 세상이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나에게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많은 기회를 놓치고 주위상황 탓만 하면서 살아온 것은 결국 내 자신의 문제였고 스스로 풀어 나가야할 몫이었다. 세상이 중심인 것이 아니라 나의 노력이 나만의 세상을 만들고 나의 세계가 모든 바깥 세계와 공유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 세상은 그저 나와 소통하는 길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세상을 움직이는 주인공이다”라고 생각했다.

살면서 때로는 웃고 싶지 않아도 웃는 가면을 써야할 때도 있다.
싫어도 싫다 하면 안 된다고 마음을 먹어야 할 때도 있다.
그것은 더 나은 삶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합리화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행복이라는 것이 내 삶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행복을 선택하는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이 행복이라 할 것이다. 잠시 유행하는 상품처럼 변해가는 것을 행복이라 하지 않는다. 그것은 행복처럼 느껴지지만 그것들은 결국 버려져 다시 새로운 행복을 좇는 노예가 된다. 그러나 내 스스로 행복을 만들고 노력한다면 내가 있는 이 세계가 행복의 세계가 될 테고 더 나아가 모든 이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어쩌면 또 다른 하나의 틀을 만들면서 합리화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강원에서 터득한 것은 이런 생각과 노력이 내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낮추면서 문제점을 자각하고 언젠가는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살면서 행복과 괴로움이 교차되지만 괴로움에 물러서지 않고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행복에 다가서는 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