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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느끼는 구법승들의 길, 실크로드 성지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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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향기 - 자훈┃금호동 금강선원 2013년 08월 378호

이번에 마음으로 느끼는 비단길 실크로드 화엄경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중앙아시아를 횡단하는 고대의 동서통로, 중국과 서역 교역의 길, 이 길을 통해서 불교도 전래 되었다. 중앙아시아로 향하는 길목인 우루무치, 쿠얼러, 쿠차, 아커슈, 카스, 타쉬쿠루간, 홍티라프, 호탄, 천산산맥과, 곤륜산맥, 동북아 최대의 타클라사막, 파미르고원의 중심인 타지키스탄을 경유하면서 태어나서 처음 보는 풍광들과 현지인들의 삶의 질곡에 언듯 언듯 삶과 죽음, 신의 존재 등 무거운 주제들이 머리를 스쳤다.
파미르고원의 압도적인 풍광, 천년도 더 전에 험난한 이 길을 걸었을 현장 스님, 법현 스님, 혜초 스님 등 험한 자연의 순리에 목숨을 맏기고 오직 부처님 경전을 향해서 구도행각을 했을 어른 스님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대장경 경전들이 먼저 이 길을 걸었던 구법승들의 생을 받친 구법행각이 있었기 오늘날 우리 곁에 고려대장경이 있다. 천산산맥, 곤륜산맥, 파미르고원의 길 위에서 구법승들의 노고에 머리를 숙였다. 우전국 왕이 스님들을 보면 맨발로 나와서 맞이했고 집집마다 7미터 높이의 탑을 모시고 살았던 부처님 성지 사원과 승원 터가 지금은 거의 폐허가 되어 풍화작용을 못 견디고 사리탑 흔적만 남아 있었다.

카스의 소륵왕국 왕가사찰 모르불탑

8세기 신라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법현의 《불국기》 의정의 《대당서역구법고승전》 등을 참고하면서 순례를 했다. 당나라 현장 삼장법사가 남긴 《대당서역기》 현장은 628년에 장안(長安 지금의 서안)을 떠나 파미르고원을 넘어 인도에 갔다가 불경을 657부나 가지고 645년에 중국으로 왔으며, 화려했던 불교문화의 중심지였던 키질석굴 천불동은 4세기에서 8세기 사이에 만들어졌는데, 현재까지 61개의 석굴이 확인됐고 11개 벽화가 남아 있었고, 우전왕국의 성터인 메리카와트 고성은 화전지역에서 가장 번성한 불교성지로 길이 1.5km, 넓이 800-900m에 이르지만, 10세기경 이슬람과 불교도간의 전쟁으로 인하여 폐허가 되었고, 지금은 흔적만이 조금 남아 있으며, 이 유적지 뒤로는 곤륜산맥의 만년설이 보이고 이 산맥을 넘으면 인도라고 한다.

러와크 Rawark(해발 1310m)
호탄시내에서 50여키로 거리에 자리한 이사원은 타클라마칸 사막안에 위치해 있다.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간다라형식을 취하고 있다. 현재는 불탑기단부와 중간부분이 남아있는데 예전엔 탑 주위로 승방이 있었던 걸로 다른 탑들의 예에서 추측할 수 있다.
현장스님이 7세기 이곳을 지날 때 이미 모래에 뭍혀있던 이 사찰은 그로부터 1400여년이 지난 지금도 불심을 깨우고 있다.
화려했던 불교문화의 중심지인 돈황석굴(화엄경 변상도 32권이 남아 있는 곳), 용문석굴, 운강석굴과 더불어 키질석굴은 중국의 4대 석굴중 하나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이른 시기에 조성되었고 동서 교류의 흔적 또한 풍부하게 남아있기 때문에 키질석굴을 󰡒실크로드 불교의 꽃󰡓이라고도 한다.
지금도 모래더미 속에서 간간이 새로운 석굴들이 발굴되어 숫자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데 화엄경 변상도도 여기에 묻혀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키질석굴 앞에 구마라지바스님(344~413)의 상이 있는데, 스님은 경, 율, 론 삼장을 74부 380여 권을 입적 할때까지 한문역경에 몰두하였다.󰡒내 역경에 오류가 없다면 죽은 후 화장을 해도 내 혀는 타지 않으리라󰡓는 유언을 남겼는데 입적 후 화장했는데, 혀가 타지 않았다고 하는 전설 같은 일화를 남긴 스님이다. 구마라지바 시대부터 비로소 “공空”의 의미가 제대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소륵왕국의 왕가 사찰 모르불탑 유적지를 참배하면서 구법승들의 행각에 숙연함이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머리숙여 기도하게 되었다.
그 곳 사람들은 이런 기도를 한다. 가장 확실한 한마디 󰡒앗쌀라무 알라이꿈. 신의 평화가 당신과 함께하기를󰡓어디서나 통용되는 인사, 마법을 부르듯, 신의 가피를 기원 할 수밖에 없는 삶의 질곡, 조금 남아 있는 사리탑도 풍화 작용과 모래 바람으로 얼마나 버틸지 아쉬움으로 발길이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