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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세계에서의 온수 해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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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로 본 세상 - 정은진/프리랜서 포토저널리스트 2013년 08월 378호

며칠 전부터 분당의 우리 아파트 엘리베이터에는 ‘온수 공급 중단 안내’와 ‘전기순간 온수기 임대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8월과 9월 약 한달 반가량 아파트 단지 내 배수공사와 물탱크 청소로 인해 뜨거운 물이 완전히 끊기게 된다는 이야기다. 나와 부모님은 11만원이라는 거금(?)을 내고 한 달반 동안 온수기를 임대하기로 결정했다.
세상에는 우리나라처럼 24시간 원하는 시간에 뜨거운 물이 나오는 곳이 흔치 않다. 제3세계에 가면 화장실 샤워기 옆에 이 온수기가 붙어있는 곳이 많다. 우리가 못살던 60-70년대에도 아파트에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아 찬 물로 목욕을 하거나 물을 끓이거나, 대중목욕탕에 갔었다. 지금 갑자기 온수가 나오지 않는다니까 올챙잇적 생각을 못하고 불편하다는 생각부터 드는 걸 보니, 인간은 역시 간사한 동물인가보다.
10년 전 중국에 처음 갔을 때, 내가 머물던 아파트에서는 한겨울임에도 불구, 온수가 전혀 나오지 않아 물을 끓였던 적이 있었다. 그 때 주인아저씨께서 물을 끓이지 말고 차라리 목욕탕을 가라고 하셨다. 그 당시 중국에는 대중목욕탕이 거의 없었지만 한국인들이 이주해오면서 한두 군데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목욕탕을 간 적이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에는 우리식 목욕탕이 없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사는 곳에는 파키스탄제 순간온수기가 설치돼 있었다. 이 온수기는 물탱크 역할도 해서, 물이 데워지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5분 정도 샤워를 하면 금방 온수가 떨어졌었다. 그래서 샤워를 하려면 초고속으로 해야지 안 그러면 금방 찬물로 돌아간다. 그러나 현지인들은 찬물로 목욕을 하거나 아니면 아예 안하거나, 아니면 물을 끓여서 할 것이다.
그런데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던 중 호텔에 온수 물탱크도 없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시에라리온이었다. 보통 제3세계라 하더라도 호텔에는 온수 탱크가 있는 곳이 대부분이었지만 시에라리온의 수도 프리타운의 호텔에는 아예 온수탱크도 없었다. 그러면 어떻게 샤워를 하느냐?
이 나라는 너무 덥기 때문에 건물 위에 있는 물탱크가 자동적으로 태양 볕에 의해 데워졌던 것이다! 찬물 더운물 구분 없이 물을 틀면 샤워물이 나오는 데, 바깥 날씨가 너무 덥다보니 미지근한 물이 나오는 것이다. 온수 급탕기가 따로 필요 없던 것.
콩고 민주 공화국에 있을 당시한달 이상 체류하다보니 호텔비가 떨어져 일반 가정의 한 구석에 미국인 자원봉사자와 합숙한 적이 있었다. 그때도 온수 탱크가 없었다. 그러면 어떻게 샤워를 해결했는가 하면, 그 룸메이트가 전기 히터를 사가지고 와서 플라스틱 양동이(버킷)에 물을 담으면 거기에 전깃불같이 생긴 히터를 집어넣는다. (감전 안 당한 게 다행이었다) 그러면 그 양동이 한두 개를 들고 화장실로 가서 찬물과 섞어서 물을 퍼가면서 샤워를 했다. 이 정도는 약과다. 뜨거운 물 뿐 아니라 찬물도 안 나올 때도 많아서 그럴 때는 아예 샤워를 포기한 적이 부지기수다. 내가 아는 오카하라 코스케라는 친구는 수단의 난민촌에서 취재할 때 한 달 동안 목욕을 못했다고 하니,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면서까지 이 일을 해야 하는 지 후회가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어쩌랴, 이 일에 몸담기로 한 이상, 돈이 억만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주어진 예산 내에서 빠듯하게 취재활동을 하려면 찬물 샤워는 감수해야하는 것을. 우리 집 화장실에 온수 급탕기가 내일모래 설치가 되면, 그동안 고생했던 생각이 많이 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