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잠결에 그것도 한밤중에 받은 메일이기에, 어쩌면 어두운 방 가운데 핸드폰에서 쏟아져 나오는 강렬한 흰빛 때문에 눈이 부셔서 퍼뜩 이해가 되질 않았나봅니다. 네, 저는 인도에서 반년정도 쉬고 있을거란 당신의 말을 기억해내고 바라나시에 도착한 뒤에 당신이 인도 어디에서 머물고 있는지를 메일을 통해 물어보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은 답신을 보냈고 그 내용은 간략 명료했습니다. 델리에서 소화에 좀 문제가 있는 듯하여 병원에 가 진찰을 받아보았는데 위암 말기였다는 것, 그러나 상황은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지나서 앞으로 1년 정도의 기한이 남았을 거란 통보를 받았다고, 당신은 그렇게 적었습니다. 잠결이 꼭 꿈결만 같아 저는 당신이 보낸 메일을 거듭해서 읽어봐야만 했습니다. 하여 당신이 보낸 메일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때쯤 되어서 저는 밤의 어두움에 기대어 참으로 오랜만에 숨죽여 울어보기도 했습니다.
당신도 머문 바 있는 바라나시를 사람들은 흔히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이라는 얘기를 합니다. 바라나시의 강가(갠지스강)에는 힌두교의 시바신이 하늘에 흐르던 강을 땅으로 내려놓은 것이란 전설이 있습니다. 그렇게 천상에서 내려온 신성한 강이기에 인도인들의 강가에 대한 애정은 각별해 보입니다. 매일 아침 찾아간 가트에서, 인도인들은 강가에서 아침마다 하는 성스런 목욕 재계를 하더랍니다. 이를 통해 그이들은 악업이 사라진 상태로 새로 태어난다고 믿고 있습니다. 또한 육신이 멸한 뒤에 이를 곱게 태워 강가에 뿌려보내면 해탈의 길로 나아간다 믿습니다. 강가는 이렇게 인간의 생과 사를 주관하는, 하늘에서 내려온 가장 성스러운 장소가 되기에 수없이 많은 인도인들이 이곳을 찾는가 봅니다. 저도 어쩌면 그런 장엄한 부름에 이끌려 인도에 올 때마다 매번 이곳을 찾는지도 모릅니다.
생사가 이렇게 강가에서 부단히 교차되고 있듯이, 수많은 성속聖俗의 일상들도 가트 너머의 거리와 비좁은 골목에서도 뒤섞여 있는 듯 보이더랍니다. 아침햇살을 받으며 명상에 잠긴 수행자와 오물들이 즐비한 음산한 골목을 맨발로 걸어가는 순례자들을 보셨는지요? 그들에게는 외국인들이 어떻게든 피하려드는 동물의 배설물들을 단지 길바닥의 돌부리보듯 무심하게 바라보고, 단지 비껴갈 뿐입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서 저는 무언의 경건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 한편으로 신통찮은 마사지로 사람들을 호객하는 안마사들과 방생을 강요하며 어망에 갇힌 물고기를 보여주는 사람들에게서는,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는 삶에의 치열한 의지도 보이더군요. 이렇게 보자면 당신이 경험하고 제가 보았던 바라나시는 단순히 사람의 남과 죽음 관장하는 신성한 의례만 있는 곳이 아니라 인간 삶의 그 다채로운 양태들이 활기차게 펼쳐지는 곳인 듯합니다.
당신이 어느 가트 가까이 짐을 풀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저는 매일마다 시체가 타는 비릿한 내음이 스며들어오고 망자의 넋을 달래는 곡성이 좁은 골목벽을 타고 울려펴지는 화장 가트 주변에 머물렀습니다. 숙소가 있는 2층에서 하릴없이 앉아 있을라면, 하루에도 수십 번 망자들의 행렬을 봅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하얀 보자기에 몸을 감싸고 길다란 대나무 들것에 몸을 뉘인 채 화장터로 이동합니다. 그러나 망자를 뒤따르는 가족들 중 누구도 울지는 않습니다. 망자가 화장대 위에서 까맣게 타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가족이나 인척들은 모두들 가벼운 희열에 들떠 있어 보입니다. 더러는 그 앞에서 단체 가족 사진을 찍어대기도 합니다. 불에 휩싸여 문드러지는 망자를 바라보며, 그 속절없이 사라지는 사체를 보며 이 몸은 금생에 어쩌다 잠시 빌려쓰는 몸뚱어리라는 생각을 다시금 되새기게 됩니다. 이런 저의 생각이야 어쨌든 인도인들의 강가에서 생을 마치는 의식은 열반으로 향해가는 조용한 축제가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고대 인도인들의 믿음에 따르면 나이 50세를 완프라스탄, 즉 숲으로 가는 나이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인간으로 할 의무를 모두 마치고 숲으로 들어가 조용히 자신을 반조하며 살아가는 시기인 겁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나이 50세는 하늘의 뜻을 안다 해서 지천명(知天命)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지천명에는 세상의 일에서 한걸음 물러나 하늘의 뜻을 더 중시여기며 그 묘리를 헤아린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과거에 50세는 공히 세상에서의 과업을 마치고 삶의 치열한 현장 뒤켠으로 물러난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지금 육순이 넘은 당신이 처한 상황과 꼭 비슷하게 여겨집니다. 검안사라는 직업에서 은퇴한 뒤에 불교 수행에 관심을 쏟고 있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각처에서 깨달음을 구하고 있는 당신의 삶은 이렇듯 완프라스탄이나 지천명과 비슷하게 닮아있습니다. 다만 당신에게는 그 기한이 좀 짧게 되었지만, 그것 역시도 당신 스스로를 돌이켜보는 하나의 수행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그 당찬 결의는 멋지게 느껴집니다.
사람들이 겉으로 볼 적에 당신은 죽는 것으로 보일 터입니다. 세상과 작별을 하고 영영 딴 세상으로 떠나는 것이라 여길 것입니다. 하지만 윤회를 믿고 또 인연을 믿는 저와 당신은, 당신의 죽음을 금생에 받은 그 몸뚱어리를 벗어 던지고 새로운 몸을 받아 태어나는 한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지난 가을 샹그릴라와 메리설산에서 열흘 넘게 당신과 나눈 그 소중한 마음의 잔상들이 저에겐 아직도 또렷합니다. 이런 마음의 인연 때문에라도 저희는 금생이든 내생이든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미국으로 들어갈 내년 가을 즈음, 당신이 아직 세상에서 살아있을지, 아니면 오래된 몸 벗게 될지 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그런 당신을 위해 저는 스님이 되고 처음으로 꽃 한다발 사보려 합니다. 전강스님이 세월따라 늙어가는 노스님들의 모습을 종종 하얀 들꽃에 비유하셨던 것처럼 당신은 멋진 백발을 하고 있지요. 하얀 데이지가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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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圓帝 스님은 2006년 해인사로 출가 후 선원에서 정진하였으며 2011년 해인사 퇴설당에서 은사스님을 모시며 수행하던 중 2012년 가을, 유라시카(Europe, Asia, Africa) 만행을 기획하여 2012년 9월부터 세계 만행 중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