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 마당엔 나무와 꽃들과 잡초가 어우러져 그것이 꾸밈도 아니며 드러냄도 아니게 그저 그곳에 피었다. 시간의 흐름에 가벼이 얹혀 그 무엇도 무게가 없으니 그 어디에도 수선스러움이 없다. 오륜스님이 이끄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니 소박한 절의 더 소박한 처소다. 살림살이도 몇 가지 없다. 책장 한켠에 꽂힌 책과 앉은뱅이책상 하나가 전부다. 그 자그마한 방에 오륜스님과 마주앉아 차담茶啖을 나누듯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한쪽 벽엔 은사 스님이신 숭산스님의 흑백 사진이 액자도 없이 지극히 붙어 있다.
\"며칠 전 모친이 돌아가셔서 목소리까지 변해버렸네요. 아무리 세속 인연을 끊는다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에요.\"
고요히 앉은 스님은 차를 내어주시며 잠잠 말씀이 없으시다. 97세의 어머니와 헤어진 72세의 아들은 부처님의 제자이기도 하지만 한 어미의 자식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 그 심경이 어떠할까 싶다.
시를 쓰며 살아온 스님께서는 다른 말씀보다도 당신의 시집을 한권 내어주신다. 스님의 온 생이 모두 그 안에 있을 터. 스님은 시인으로 살아온 길과 스님으로 살아온 길, 그 영원히 닿지 않을 것만 같은 평행선과도 같은 지나온 길들을 눈앞에 펼쳐놓으신다.
\"아버지께서 불운하게 돌아가셨어요. 그때 제가 열여덟 살이었는데 학교를 그만두고 방랑생활을 시작했지요. 전국을 떠돌며 노동도 하고 행상도 하며 시를 썼어요.\"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문학을 하려면 불교 세계를 잘 알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계기로 서울 화계사로 입산했다.
\"그땐 평생 중노릇을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내 문학 인생의 편력으로써 한 이 년만 맛보기 중노릇을 하자는 계획이었지요.\"
그렇게 마음먹고 절에 들어가 지내던 어느 날 숭산스님의 법문을 듣게 되었다. 오륜스님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교회도 다녀보고 성경도 읽고 수많은 책을 읽으며 고뇌하고 탐구하던 것의 근본적인 해답이 그 말씀 안에 있었다.
\"평생 의지하며 마음을 닦을 곳은 이곳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다시 절 문을 나가지 못했지요. 내가 알고자 한 해답이 불교 안에 있었으니까.\"
스님은 계를 받자마자 선방에 들어갔다. 도봉산 망월사를 지나 주안 용화사를 지나 대구 동화사를 지나 65년도엔 해인사 강원에서 경만 읽다가 함백산 휴일사 토굴에서 3년을 보내고 나왔다. 그러는 동안에는 불교에 심취해서 문학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러다가 화계사에 돌아와 총무 소임을 보면서부터는 마음 한켠에 접어두었던 글쓰기를 다시 펼치기 시작했다. 그때가 38세였는데 예전에 방랑하면서 써두었던 시들을 묶어 <불나비><사랑과 죽음>이라는 두 권의 시집을 발간했다.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41세에 등단을 했고 스님은 \'이소림李巢林 \'이란 이름으로 꾸준히 시를 쓰며 살아 왔다.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총 6권의 시집을 펴냈다.
\"시어를 통해 생명의 원초적인 것과 인간의 본질을 표현하고 싶어요. 사실 언어로 표현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내 시를 통해서 사람들이 그 묘한 경지를 체득한다면 좋겠습니다.\"
무상한 이야기들 빌어 본질적인 것을 체득하게 하는 스님들의 법문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환희한다. 오륜스님은 그 법문처럼 전광석화와 같이 일깨워 주는 시를 쓰고자 한다. 그래서 스님은 시를 쓰며 쾌감을 느낀단다. 그 시를 읽고 반응하는 이들을 보며 가없는 보람을 느낀단다.
\"인간의 무상함을 표현해서 그것을 통해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말하고 싶은 것이지요. 그런 것을 내 시어로 표현해서 사람들의 뇌리를 울려주고 싶어요. 그래서 자꾸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시가 가진 힘이 있다. 길게 말하지 않아도 깊은 숨을 내뱉으며 가슴을 움켜쥐는 그런 힘. 오륜스님은 그 어느 법문보다도 그런 힘을 가진 시를 쓰고 싶은 것이다. 허나 스님은 말씀하신다.
\"문학과 참선은 병행하기 참 어려워요. 참선은 다 비워야 하는 것인데 문학은 가득 채워지는 것이지요.\"
스님은 말씀하신다. 문학은 인간의 욕망 속에 있는 싸움, 운명, 불행, 사랑과 같은 것들을 소재로 하니 선과 악의 분별과 수많은 갈등을 타고 흔들리는 것이라고. 허나 참선은 다 비워내고 비워내 갈등과 번뇌를 잠재우고 본래의 것이 다 드러나는 것이라고.
\"인간의 덧없음이나 무상함이 시의 재료가 되지요. 허나 참선을 하는 데에는 그런 생각 자체가 조금이라도 붙으면 안 돼요. 심각하게 화두를 들고 몰입해야 하는 것이지요.\"
시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하는 스님과는 위배되는 것이라 말씀하시면서도 스님이 끝내 필을 놓지 못하는 연유가 있을 것이다. 그 평행선과도 같은 참선과 문학이라는 두 길이 언젠가는 같은 목적지로 가는 기차선로처럼 하나의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륜스님의 시는 \'자연\'과 교감한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인간이 있다. 아름다우면서도 처연한 인간이 있다. 그리고 현 시대의 인간은 끝없이 그 \'자연\'을 그리워한다.
\"자연自然, 스스로 그렇게 된 것이에요. 병아리가 무수한 인연을 만나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을, 어미 닭이 그 자리를 깨어주는 것을 누가 가르쳐주었나요? 스스로 그러한 것이 자연이에요. 마음이 물질적인 얽매임과 정신으로부터 자유로우면 \'자유자재 自由自在\'\'라는 말을 쓰지요. 비로소 \'자유\'를 얻고 \'스스로 있는\' 경지에 들어가는 거예요.\"
인간은 그 자연 속에 있다. 욕망을 갖고 태어난 인간은 그 자연 안에서 어찌해야 \'자유자재\'의 경지에 들어설 수 있을 것일까? 스님은 답하신다.
\"사람이 욕심이 없을 수는 없지요. 욕심을 전혀 부리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 분수에 맞는 욕심을 내야 하지는 것이지요.\"
스님은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달라지는 것이라 한다. 독사의 치액이 위장에 들어가면 보약이 되고 심장에 들어가면 독약이 된다. 그렇다면 뱀의 치액은 보약일 것인가 독약일 것인가. 결론이 나지 않는 문제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달라지는 것이니.
\"인因, 연緣, 과果 삼 단계 진행 과정이 있지요. 어떤 원인이 어떤 인연을 만나서 어떤 결과를 얻습니다. 인과因果에선 매개체인 연緣이 중요해요. 선인지 악인지 따져봐야 부질없어요. 욕심도 인연에 따라 결과가 다르지요. 자기의 분수를 알고 과욕을 부리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래도록 시를 써오신 오륜스님께서 문득 허공을 보며 말씀하신다.
\"시가 읽히지 않는 시대가 되어버렸어요. 시를 쓰는 사람은 있는데 시를 읽는 사람은 없어요. 시가 필요 없는 시대가 돼버린 게 아닌가 싶어요.\"
순수한 자연과의 교감이 없는 현대시들을 보며 옛 시풍이 그립기도 하다. 요즘의 현대시가 자연과 교감하기보다 비틀어진 문명의 이기 속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갈등과 시비를 미적으로 버무려서 표현하는 것을 보며 현대인들의 교감이란 것이 무서운 소용돌이처럼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자연\'을 외치는 현대인들을 보게 된다. 오륜스님은 그런 현대인들이 \'자연\'이란 말을 남발할 뿐이라며 안타까워하신다. 기계 문명 속에서 머리가 복잡해진 도시인들이 휴양지을 찾고 캠핑을 하지만, 그래서 마음의 이상향처럼 \'자연\'을 그리워하긴 하지만 문명의 혜택에 물들어 도시를 제대로 떠나지도 \'자연\'을 제대로 향유하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옛날에 우린 순수한 자연과 교감하면서 자랐어요. 요즘 젊은이들은 전혀 달라요. 하늘의 달 한번 쳐다볼 여유 없이 기계 속에서 살아가죠. 그러니 젊은이들은 내 시가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아예 시에 관심도 없어요.\"
그럼에도 묵묵히 시를 쓰시는 오륜스님은 점차 어두워지는 방안에 흔적 없는 듯 앉아 말씀하신다.
\"인간의 지혜에 보탬이 되는 좋은 문장을 쓰고 싶어요. 사람들이 감명 깊게 읽고 양식으로 얻는 바가 있는.\"
시대가 변해도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오래도록 물 위에 떠 있는 문장들이 있다. 그렇게 오래도록 사람들이 바라보며 가슴 설레며 인생의 보따리에 담아두는 문장들이 있다. 스님의 마음을 통해 슬며시 물 위를 떠내려 올 부처님의 말씀을 한껏 기다리며, 스님이 쥐어주신 시 한편을 소리 내어 읽으며 산길을 내려온다.
\'돌의 정적,/ 그 아름다운 꽃 위에/ 시간의 나비는 다시 찾아드는가./ 이제 돌향기 속에 나비는/ 다시 깃드는가. - 이소림, <돌과 나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