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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판전의 흙 벽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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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향기 - 윤한상┃장경판전 근무자 2013년 06월 376호

세계문화유산 장경판전 건축비밀의 가장 큰 열쇠는 서로 다른 크기의 붙박이 살창에 있다. 벽면의 아래 위와 건물 앞면 뒷면의 살창 크기를 달리함으로써 공기가 실내에 들어가서 아래 위로 돌아나가도록 절묘한 건축기술을 발휘하였다. 이는 공기가 건물 내부에 골고루 퍼진 후에 밖으로 빠져나가도록 해주면서 일정량의 햇빛 유입으로 적정 온도도 지시켜준다.
장경판전은 안에 습기가 너무 많으면 경판이 상하기 쉽고 습기가 너무 없으면 나무가 갈라질 수 있다.
온도 습도를 조절하기 위해서 창문뿐만 아니라 벽면을 흙으로 쌓고 바닥에는 숯과 소금 그리고 석회를 깔았다. 흙벽과 숯, 소금, 석회로 만든 바닥은 습기가 많은 여름철에는 물기를 빨아들이고 습기가 부족한 겨울철에는 적당한 습기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바깥에는 나무 서까래를 길게 빼고 기와를 얹은 지붕을 만들어서 내리쬐는 햇빛을 막고 경판이 들어가 있는 나무선반에도 일일이 단을 만들어 공기가 경판에 잘 닿도록 하고 경판은 양쪽에 마구리를 끼워 경판과 경판 사이로 공기가 흐르도록 하여 경판이 부식되
지 않도록 하였다.
수미정상탑 우측 능선 위로 아침 해가 솟아오르면서 수다라장과 법보전 뒤편 위쪽 살창부터 아래 살창으로 내려오며 실내를 비추기 시작하는 햇빛은 동,남, 서쪽 방향으로 돌면서 오후에는 건물 앞쪽 아래 위 살창을 통하여 경판이 들어 있는 선반과 바닥까지 골고루 비추어지도록 되어 있다.
팔만대장경이 오늘까지 옛 모습 그대로 온전하게 보존되고 있는 비밀은 이처럼 건물이 자리 잡은 위치와 방향, 바닥과 천장, 벽과 살창 등 대장경과 장경판전의 구조가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뛰어난 과학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경판전의 건축기술은 공기 흐름을 과학적으로 살린 유채역학流體力學의 정수라고 한다.
흙 벽체는 수천 년 이어오던 우리 한민족의 전통 건축 양식이다. 기둥과 기둥, 하방, 중방, 창방 사이에 몇 개씩 벽 심대를 세우고 대나무 지릎댕이, 갈대 등을 새끼로 외를 엮어 벽 심대에 붙여 벽체의 뼈대를 만든 후, 주토(붉은 흙)에 짧게 썰은 볏짚과 물을 섞어 밟아 이개어서 공기를 빼고 서로 배합이 되도록 진하게 반죽한 흙을 벽체 뼈대에 붙이는 식으로 쌓아 흙 칼로 매끈하게 초벌미장을 하여 최소 10일 이상 완전히 건조시킨다.
초벌미장 된 벽체에 일반민가에는 황토를 채(얼기미)로 친 고운 흙에 모래와 밀가루 끓인 풀을 섞어 반죽한 것으로 마무리 미장(재사)을 하고, 문화재 같은 건물에는 곱게 친 황토 흙에 백회와 수세(밧줄의 원료식물에서 추출한 소털처럼 생긴 것임), 해초를 가마솥에 끓여 만든 풀을 섞어 진하게 반죽한 것으로 재사하여 벽체가 완성된다.
이렇게 만든 흙벽체는 단열과 통풍의 기능을 함께 갖추고 있어서 벽체가 숨을 쉬며 바깥기후의 영향을 잘 받지 않아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이처럼 보온과 통풍에 뛰어난 기능을 가진 흙 벽체는 대장경 보존에 소리 없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 흙벽체의 자연 공학적 가치는 실내 공기의 대류현상을 만들어내는 살창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장경판전의 흙 벽체는 뛰어난 미장기술로 손질된 아름답고 매끈한 속살을 덧칠 속에 숨긴 채 6백년 세월동안 원형 그대로 숨쉬며 보존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