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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에서 번지점프를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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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스님의 세계 만행 - 원제스님 2013년 06월 376호

이번 세계 만행을 하면서 꼭 도전해 보고픈 액티비티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번지점프였습니다. 한국에서도 번지점프를 할만한 몇몇 장소가 있기는 하지만 기껏해야 60미터 내외가 되는 낮은 높이가 썩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세계 제일의 높이를 자랑하는 마카오타워가 233미터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지만 도심의 한 중앙에서 점프를 하는 점이나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이를 도전할만한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밖에 216미터에 해당하는 남아공의 번지점프대가 있기는 하지만 접근성에서 불편했습니다. 만행을 떠나기 전 과연 어디에서 번지점프를 해볼까 알아보던 중에 가장 적합하게 여겨진 곳은 바로 네팔의 번지 점프대였습니다.
네팔의 수도인 카트만두에서 티벳 쪽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 번지점프대. 카트만두에서 차를 타고 세 시간 반이나 걸려서 도착한 곳입니다. 네팔은 국토 전역을 히말라야라는 호칭과 별 다름없이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산악국가입니다. 그렇기에 제가 번지점프를 한 그곳은 히말라야 산맥의 일부라고 불러도 무방한 거대한 협곡을 이은 다리 위였습니다. 히말라야에서 흘러내리는 강이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이는 다리의 높이는 160미터. 200미터를 넘지는 않지만 세계 10위 안에 드는 높이의 번지 점프대였습니다. 깎아지른 협곡과 고원의 강, 다소 서늘한 바람과 화창한 날씨는 번지점프를 하는 최고의 조건이었습니다.
우리 일행이 도착하기에 앞서서 저희들보다 먼저 번지점프를 하는 사람들을 주의 깊게 지켜보았습니다. 온몸에 줄을 묶고 점프대 앞에 서는 순간 많은 사람들이 그 험악한 높이에 암담함을 느끼고 점프하기를 주저주저 합니다. 어떤 여자들은 밑도 끝도 없는 공포라도 느꼈는지 진행요원의 허리춤을 붙잡고 놔주지 않으려 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우리 후발자들은 다소 맥없이 웃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자신 또한 저런 모습을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리 호탕하게 웃어보일 수는 없었던 듯 합니다. 그러나 그런 여자들도 결국에 아득한 허공을 향해 몸을 던지게 됩니다. 이에 반해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허공을 향해 몸을 내던지는 사람들이 있기는 했습니다.
저희보다 앞서 도착한 번지점프 지원자들이 있기도 했지만, 이 다리가 단지 번지점프만을 위한 다리가 아니라 히말라야 협곡의 다리 너머에 자리 잡은 레조트에 지내는 사람들의 일정도 겸하는 터라 저희는 그곳에서도 네 시간여를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새벽 여섯시에 출발해 점심을 먹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 뒤 번지점프를 실제로 하게 된 때는 오후 두시 반. 멀리서 지켜보던 다리 위에 직접 서게 되었을 때, 이제 곧 있잖아 이곳이 내가 뛰어내릴 장소라는 상상을 겹쳐보니 다소 긴장감이 몰려듭니다. 평상시에 종종 저는 고소공포증 따위는 없다고 호언장담을 했지만 160미터 높이의 다리에서 내려다보는 강의 모습에 아득한 거리감에 약간의 현기증마저 이는 듯 했습니다. 몸무게가 가벼운 순서대로 하나 둘 어떤 식으로든 허공을 향해 뛰어들고 제가 뛸 차례가 오니 되려 차분한 감이 들었습니다. 점프 전 인터뷰를 할 때에도 별다른 느낌 없이 따뜻한 봄기운을 느꼈던 듯 합니다.
드디어 안전복을 입고 로프로 제 다리를 감고 난 뒤에 이제야 점프를 한다는 실감이 오게 됩니다. 아무런 안전장치가 없는 트인 점프대 앞에서 서니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협공의 빈 공간이 제 가슴을 압도해버립니다. 그곳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 보고 난 뒤에야 비로소 ‘아니 내가 왜 이걸 하겠다고 했을까’ 라는 모든 번지점프 지원자들이 되뇌이는 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미 점프대 앞에 선 것을, 이 순간을 위해 그 먼 한국에서 이곳까지 왔음을 돌이켜보고 그냥 마음을 접습니다. 점프를 하기 바로 전에 미리 하리라고 마음먹었던 진언을 합장하고 외웠습니다. 가테가테 파라가테 파라삼가테 보디스바하.
그냥 가자, 라는 심경으로 허공을 향해 발을 내딛었습니다. 허공에 몸을 내맡기고 아래로 떨어지면서 저도 모르게 ‘으...’ 하는 신음이 흘러나왔습니다. 거센 바람이 뺨에 부딪치면서 바람에도 부피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리고 그 바람이 제 귓전을 지나며 냈던 시끄러운 소리에 정신이 없기도 했습니다. 다리에서 점프를 해 최저점까지 내려간 시간은 단 5초. 짧은 시간이었지만 강렬했던 경험만큼이나 생생한 기억을 불러들입니다. 떨어진 것 짧은 시간이었지만 허공에서 거꾸로 매달린 채로 다시 강기슭에 있는 안전요원이 건네준 대나무를 붙잡고 안전한 착륙 지점에 몸을 누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오랜시간 거꾸로 피가 쏠리고 또 카트만두로 돌아오는 지루한 시간에다 피곤기까지 더해 저는 번지점프를 마친 뒤 심한 감기몸살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며칠 뒤 저는 여행사에서 건네준 제 번지점프 비디오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영상 가운데서도 저를 유난히 잡아끈 것은 바로 허공을 향해 뛰어 내리며 제가 낸 신음소리였습니다. 뛰어내릴 때에는 정신이 없어서 잘 몰랐지만 뛰어내리는 모습을 다시 지켜보려니 그 신음을 내는 제가 굉장히 부끄러웠습니다. 남자이기 때문에 호기롭게 소리를 치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그 신음에서 어쩌면 저에게 그런 미래의 죽음이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앞을 차마 똑바로 내다볼 수 없는 번지점프의 상황에서 나를 내던지면서 나온 그 다리 위에서의 신음은 사실 솔직한 제 마음의 속내가 드러난 듯 하여 스스럼없이 웃어넘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죽음의 문턱에서, 수행으로 살아온 한 노승이 생사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그런 두려운 신음만 내고 죽는 것이라면 그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삶이란 생각에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런 제 신음 소리가 저를 계속 경책합니다.


원제圓帝 스님은 2006년 해인사로 출가 후 선원에서 정진하였으며 2011년 해인사 퇴설당에서 은사스님을 모시며 수행하던 중 2012년 가을, 유라시카(Europe, Asia, Africa) 만행을 기획하여 2012년 9월부터 세계 만행 중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