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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던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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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장나영┃해인사수련동문회 2013년 06월 376호

저벅저벅 누군가의 발이 나의 머리맡을 지나간다. 신경이 곤두서고 불쾌해서 가져온 가방을 머리 위쪽에 두고 모포를 얼굴까지 뒤집어쓰고 다시 잠을 청해 본다.
이번에는 소곤소곤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처음에는 한 두 마디로 말을 주고받는 것 같더니 차차 온갖 이야기들을 끄집어내어 속닥거리고 있다. 다정한 사이끼리 낯선 곳에 와서 회포를 풀고 싶은 모양이었다. 누군가는 피곤해서 깊은 잠에 빠져 드르렁거리며 코를 골았고 그 소리조차 성가시게 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점점 잡담하는 소리까지 덧보태져서 귀를 거스르고 있었다. 코를 골며 자고 있는 사람들은 이 소리가 안 들려서 괜찮겠지만 나처럼 잠들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저벅저벅 대며 미닫이 문소리를 내고 나가는 사람들은 생리적 현상이라서 어쩔 수 없어만 잡담은 지나쳤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조용히 해달라고 했다. 잠시 조용했나 싶더니 시간이 흐르자 다시 말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공간에서 자꾸 질서를 거스르는 사람들에게 화가 치밀었고 지나치지 않느냐고 했다. 다시 조용해졌다. 더 이상 잡담하는 사람들이 없어지고 코를 고는 소리만 많아지는 것으로 봐서 모두 잠든 것 같았다.
나는 주위가 훨씬 나아졌지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조금 전에 분명 나처럼 잠들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을 텐데 모두가 참아내고 있었고 결국 나만 참지 못한 게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사람들 중에는 어디서나 쉽게 코를 골며 잘 수 있는 무딘 성격의 사람들도 있는데 싶었다.
이곳은 마음을 수련하는 곳이다. 여기에 온 사람들은 관광지의 숙소와는 다르게 일상 생활에서도 묵언黙言을 해야하고 모든 것이 수행하는 생활의 일부라고 생각해야한다.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잘못이지만 나도 묵언을 주장하며 화를 내고 말았으니 그 또한 수행에 어긋난다. 우리에게는 세 가지 독스러운 마음이 있는데 지나치게 얻고자 하는 탐심貪心, 성을 내어 남을 괴롭히는 불쾌한 마음인 진심(瞋心), 분별하여 옳다 그르다 어리석은 마음을 내는 치심痴心이 있다. 이 삼독三毒을 잘 이겨내라는 말을 많이 들었으면서도 나는 진심을 내고 말았다.
조용히 해달라는 말 한 마디 하면 될 것을 아무 말을 안 하고 있는 사람들이 미련한 게 아니라 오히려 마음을 수양한 것이고 나는 곰 같은 성격이 되지 못하고 결국 발끈거리고 말았다. 이곳에 왔으면 밤을 새고 수련을 하는 게 맞는데 지대방(절의 큰방 머리에 있는 작은방. 이부자리․옷 따위를 두고 휴식하는 방)에 내려와 잠을 청한 것도 잘못이다.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보니 금세 새벽 세시가 되었고 두어 시간이나마 눈을 붙인 사람들이 일어났다. 가까운 도반이 나에게 말했다. 지난밤에 자기도 잡담 소리가 귀에 거슬렸는데 내가 말을 해 준 이후부터 잠을 잘 수 있었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이 칭찬의 말이 아니고 결국 나만 참지 못하고 진심을 내고 만 것이라 생각되어 오히려 씁쓸해졌다.

살면서 정말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제하기 힘들 때가 있고 상대의 잘못을 말로 꼬집어 주고 싶을 때도 있고 가슴이 답답할 정도의 억울함을 당하여 그것을 풀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 모든 말들이 목젖까지 혀끝까지 밀고 나와도 꾹 참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빨리 알아차리고 제어해야 한다. 화가 나는 경우 대부분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분별심에 사로잡혀 있다. 성내는 마음을 참고 잠시 자기 자신을 돌아봐서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면 말을 터뜨려서 불쾌한 감정을 일으키고 일을 그르치는 경우를 줄이게 될 것이다.
매번 대중 생활을 불편해 하면서 그곳에 가서 지내고 오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부족한 면을 깨닫고 어렵지만 조금씩 마음을 다스려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 불쾌하고 불편한 감정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몫으로 다가오는데 사람에 따라 느껴지는 정도가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쾌적한 생활과 빨리 결론짓는 것에 익숙한 시대에 산중의 불편한 생활과 느긋하고 무던하게 생각하는 것이 힘들게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배울 점도 많다. 탐․진․치 삼독 가운데 진심에 걸려버린 내가 부끄러워졌고 불편한 환경을 참아내지 못한 나의 인내심의 부족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언제쯤이면 다른 사람들처럼 마음을 탁 놓아버리고 잠을 잘 수 있는 성격이 될 수 있을까. 곰이 미련하다고 하지만 이제는 그런 성격을 가진 분들이 미련한 것이 아니라 너그럽고 지혜롭다고 생각하고 싶다. 진심을 내지 않고 조금은 미련하고 무던하게 살아가는 성격을 배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