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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로 가는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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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장선정┃김영사 비채편집장 2013년 06월 376호

몇 해 전부터 제주 올레는 물론 지리산, 북한산, 서울 성곽길 등 대한민국은 걷기가 한창이다. 특히, 차로 집 문 앞까지 배송되는 택배마냥 ‘도어 투 도어’의 일상을 보내는 도시인들이라면 더더욱 산, 들, 바다의 한산하면서도 청량한 길들을 동경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이 ‘걷기예찬’에 선뜻 가담하지 못했다.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지는 않겠지만, 뭔가 몸 쓰기를 귀찮아하며 게으른 일상을 보내다가 외려 멀리서 파랑새를 찾는 게 아닌지, 조금은 사치스러운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내가 시골에서 자란 영향도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주말에 일찍부터 채비하여 서울에서 해인사로 향했다. 관광이나 등산 목적이 아니라 오랜만에 절에 간 걸음이었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일요일이면 집 근처 포교당에도 열심히 다니고 여름방학이면 해인사에서 열리는 전국 어린이 불교학교에도 참가했는데 어째서 절과 이렇게 멀어졌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해인사 입구에 당도해 있었다. 딱히 시간에 구애되지 않은 나들이여서 구석구석을 느긋하게 살피며 발걸음을 옮겼다. 붉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홍류동 계곡의 물소리, 울울창창하게 늘어선 소나무 숲의 녹음, 산사로 가는 길의 꽉 찬 감동을 가슴속에 꾹꾹 눌러 담았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할까 내 안에 작은 변화가 있는 듯했다. 매일의 때에다 고속도로에서 얹은 먼지까지, 일상의 번뇌를 조금씩 떨어내는 기분이랄까. 산사를 품은 가야산은 벌써부터 나에게 관용을 베풀었다.

어느 순간 빗방울이 후두둑후두둑 떨어졌다. 아,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한껏 느껴보나 했는데, 남부지방 잠깐 소나기라더니 왜 하필 지금……, 우산을 펼치며 구시렁구시렁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런데, 머지않아 또 다른 감동이 찾아왔다. 숲이 자아내는 빗소리가 일품이었다. 우산 아래에서 맞이하는 잠깐의 소나기가 묘한 마력을 발휘하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절을 찾은 나를 특별히 배려해주는 듯, 복잡한 머릿속을 맑고 담박하게 비우게 했다.
그리고 절 마당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아 이래서 걷는구나, 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섣부른 유행이나, 오만함으로 여겼던 타인들의 걷기 나들이도 자연스레 이해하게 되었다. 별달리 차근차근한 설명이 필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외려 색안경을 끼고 그들을 바라보았던 내가 더 오만했음을 스스로 반성했다.

절은 언제나 그렇듯 그대로 있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나 같은 사람도 넉넉히 품어주어 편안히 경내를 돌았다…….
이렇게 그날을 정리하다보니, 문득 여름 불교학교 때 한 스님께서 들려주신 설법말씀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해인사의 소나무들은 적송이 많고, 곧게 뻗은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해주셨다.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속담이 있듯 바르게 자란 나무들은 베어지게 마련인데, 해인사 산자락에서는 곡선을 자랑하기보다는 단정한 품성의 나무들이 묵묵히 산을 지키고 있다고 하시면서 유독 그곳 소나무가 곧은 이유를 부처님과 큰스님의 일화로 설명해주셨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꼬맹이 시절, 소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우와, 하고 놀란 기억만 머릿속에 맴돌 뿐. 절을 멀리하니 소중한 말씀들도 다 달아났나 보다.
아무래도 해인사를 자주 찾아야 할까보다. 그러면 어느 순간 문득, 오늘 절 마당을 들어설 때처럼 물음표의 고리가 일직선의 느낌표로 쭉 펴질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