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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당신의 이야기- 옛날의 내가 지금의 나를 가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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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자홍┃중앙승가대학교 역경학과 2013년 06월 376호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약간만 소설 형식을 빌려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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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녹음 짙은 여름날, 방구석에 앉아서 나는 편지함을 뒤적이고 있었다. 물론 이 스마트시대에 진짜 아날로그 편지뭉치를 뒤적거리고 있을 리는 없고, 다만 컴퓨터를 켜고 ‘메일’ 서비스에 들어갔을 따름이었다. \'꽤 오래 관리를 안 했던 것 같은데…….\' 문득 ‘보관함’ 메뉴로 눈이 갔다. 따로 모아놓은 메일들이 있었다.

‘보관함-은사스님 편지’

은사스님과 주고받은 편지들이었다. 그것은 장장 4년에 걸친, 한국에서 인도로, 인도에서 한국으로 주고받은 메일들.

‘수암修巖에게…….’ - 은사스님이 당신 문하에 들어오기 전에 붙여주셨던 법명이다.

‘……장마철에 고생이 심하였다니! 인도 히말라야 지방은 더운 기운이 설산의 찬 기운을 만나 요량 없이 퍼부어대던 것 같았다. 이곳 송광사 지역은 올해 마른장마라서 벌써 물 걱정이 될 지경이지만, 그나마 장마도 끝나고 폭염주의보가 연일 내리고 있으니, 며칠 지나면 8월 8일 입추가 되고 8월 15일 경이면 더위가 한풀 꺾이게 될 것이다…….’

글 중에 장마란 말이 나왔다. 정확히 언제지? 기억이 영 정확하지 않아서 내가 보낸 메일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따로 힘들일 것도 없이, 그냥 \'답장\'에 첨부된 \'보낸 메일\'을 보았다.

\'스님께……. 한국은 장마철이 지났나요? 여기는 한창 우기여서, 하루에 2,3번씩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작년에 비해서는 훨씬 적게 내리는 것 같습니다…….\'

우기雨期였던 모양이다.

나는 인도에서 4년간 살았다. 인도라고 해도, 달라이라마가 주석하시는 곳으로 잘 알려진 북인도 다람살라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어느 절에만 주로 머물렀다. 내가 체류하던 초기에는 아직 사원의 불사가 별로 진행되어 있지 않았고, 요사채도 화장실이나 세면 시설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 한 상태였다. 덕분에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만만찮게 힘들었다. 더군다나 십대였으니.
이메일에 관해서라면, 당시 그 지역에서 이메일 한통 보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고, 내 경우에는 다람살라까지 장장 두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가야했다. 나는 대체로 한 달에 한 두 번씩 다람살라로 \'외출\'을 하곤 했는데, 이때마다 생필품도 사고 이따금 한국 음식도 먹고 하면서, 특히 PC카페에 가서 인터넷을 하고는 했다. 느린 인터넷으로 주론 한 일은, 인도에 오기 전에 인연을 맺었던, 훗날의 은사스님께 편지를 보내는 것이었다.
내가 보낸 편지-.

\'……우기가 처음 시작되면서, 저희 사원 스님들은 물론이고, 다람살라에 계시는 한국 분들까지도 모두 심하게 앓아누우셨습니다. 감기가 얼마나 심한지, 열이 펄펄 나고 몸살이 너무 심했습니다. 원래 몸이 허약한 저야 그렇다 쳐도 제 튼튼한 동생까지도 앓아누워 며칠을 고생했습니다. 스님은 건강하신가요?’

메일 속에서, 십대의 나는 무척 지쳐있었다. 새삼스럽게 기억이 났다. 기나긴 인도의 우기. 우산조차 변변찮아서 툭하면 비를 맞곤 했다. 걸핏하면 전기가 나가고, 춥고 축축했다. 몸과 마음에서 미열을 느꼈는데, 아마도 차갑게 식은 몸에 감기 바이러스가 제집처럼 드나드는 모양이었다. 유학생활, 타국에서 수년 동안 출가 생활을 하는 것은 내게 더 이상 무의미하게만 느껴졌다.
미성숙한 나는, 자꾸만 묻고 있었다.
나는 누구고, 여기는 또 어디인가.

“자홍! 어서 나와라! 풀 뽑자!”

불현듯, 나는 십대의 추억에서, 인도에서, 혹은 내 컴퓨터로부터 끌려나왔다. 은사스님이 문밖에서 나를 부르고 계셨다. 맞다. 현재 이십대가 된 나는 현재 한국불교의 승단에 소속된 학인으로, 중앙승가대학교에서 기본교육을 이수중이며, 그리고 지금은 잠시 방학이 되어서 은사스님이 주석하시는 암자에 내려와 있었다. 오늘은 아침부터 계속 운력을 했는데, 찜통더위에 풀과의 전쟁을 치룬 덕에 기운이 영 없었다. 내 몸과 마음은 십대 시절의 그때마냥 지쳐있는 것 같았다.
여전히 미성숙한 나는 마구 불평을 했다.
도대체 뭐가 달라졌단 말인가. 십대의 나와 지금의 나.
왜 매일 이런 고생만 해야 하는가. 도대체 여기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는 누구고 여기는 어디란 말인가.
“예! 나가요!”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나는 컴퓨터를 끄려고 마우스를 움직였다. 그런데 문득, 은사스님 부르시는 소리에 잠시 잊었던, 그 메일의 나머지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요즘은 매일매일 켄뽀(강사) 스님과 함께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공부를 하니까 앞으로 어떻게 공부를 해나가야 할 것이며, 어떤 일을 해야 할지도 차츰 희미하게 길이 잡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시련이 있고, 힘든 일이 있어도 반드시 여기서의 공부를 끝내야겠다는 다짐을 수도 없이 반복하고 있습니다…….’

나는 잠시 망연했다. 컴퓨터 종료음이 다 울리도록 나는 아직 방에 있었다.
우르릉 쾅!
쏴아.
그때, 천둥이 울리더니 막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