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글을 처음 접할 때는 몰랐는데 불교佛敎에 입문을 하고서야 그 내용이 법문法文이란 것을 깨달았다. 1989년 초가을 한창 등산을 다니던 우리일행 7명은 전남지역을 순회하기 위하여 늦은 밤 호남선 열차를 타고 서울역을 출발했다. 주말과 국경일을 겸한 후일의 열차 안은 지리산 가는 등산객들로 대만원 남원을 지나 구래에 이르러서야 열차 안은 한가해졌다. 밤새 달린 열차는 새벽이 되어서 순천역에 도착 영업용 택시로 순천시내에 있는 죽도공원으로 가서 가로등 불빛의 도움을 받아 대나무 아래에서 아침을 지어먹고 공원 내를 산책하니 빽빽이 들어차 있는 대나무 숲 사이로 그 푸르른 싱그러움은 새벽을 열며 공원 내 가로등은 점점 희미해지며 찬란한 동녘 해는 어김없이 그날도 붉게 이글거리며 떠올랐다.
우리는 오전 8시10분 광양의 백운산을 향해 공원을 떠났다. 우리나라는 전국에 걸쳐 5개의 백운산이 있는데 전남 백운산은 광양군 옥룡면, 다암면, 진산면 3개의 면에 있으며 5개 산중 3번째로 높은 산이며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지리산과 남, 북으로 대치해 있으며 노령산맥의 마지막 여세를 몰아 솟구치면서 남해로 달려 나가 전남에서 지리산 다음 높은 산으로서 표고가 1,218m나 된다. 산 자체는 그리 큰 특징은 없으나 수목이 욱어지고 수량이 풍부하고 고로쇠가 유명하다.
우리 일행은 광양 시내를 거쳐 백운산 입구에 도착 선동이란 마을 어느 농가에다 배낭을 맡기고 산행을 시작했다. 산 아래에 있는 하백운암을 지나 산 위에 있는 상백운암 까지는 경사가 아주 가파른 오솔길이었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몸이 안 좋은 나는 내일 있을 산행을 대비해 암자에서 쉬기로 하고 일행은 또아리봉을 향해 출발했다.
암자라야 조그만 법당과 허술한 요사채 하나 암자 추병을 둘러보니 낙엽이 많았고 떨어진 도토리는 발목을 덮었고 불어오는 초가을의 산바람이 너무 추워서 요사채 쪽마루 양지녁에 앉으니 웬 젋은 남녀 한 쌍이 올라와 힘이 들었는지 내 옆에 않았다. 인기척이 나서인지 스님 한 분이 방에서 나오시면서 “어디서 오시였소? 정오가 되오는 것 같은데 대접 할 것은 아무것도 없고 쌀하고 뜬 쌈이지만 뜯어서 찬을 삼아 밥을 해서 드시오.”
나는 듣기만하고 젊은이들은 스님께 말씀드리기를 “점심은 말씀만 들어도 먹은바 진배없사오니 산에 와서 도를 닦는 법이나 일러 주십시오.”
스님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시는 듯 하시다 답 하시기를 “이렇게 산속에 와서 도를 닦는 것이 도의 길은 아니오. 도란 일상생활 속에서 항상 꾸준하게 닦는 것이요”하시면서 말씀해주신 위의 내용이 법문이란 것을 당시는 몰랐었다. 스님께선 서서히 쪽마루에서 일어나시며 계속 말씀하셨다. “이 암자는 높아서 찾아오는 신도도 없고 그나마 있는 쌀, 된장, 고추장도 아래 하백운암에서 나 먹으라고 올려 보내주는 것이요. 밤이면 법당 뒤 바위에서 석풍이 쏴~ 쏴~ 불어나와 나도 지금 있는 힘을 다해 견디고 있는 중이요. 많이 쉬다 가시구려”하시면서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로 어디론가 가버리셨다.
정상산행을 마치고 일행이 암자로 내려와 선동마을로 발길을 옮기는 도중 스님을 만났는데 그때의 나는 스님께 인사도 드릴 줄 모르는 불교라는 거리가 먼 위인이었다. 우리 일행은 마을 입구 정자나무 아래에서 맡겼던 배낭을 찾아 중식을 지어 먹고 고흥으로 출발 2박 3일에 걸쳐 서울-수천-죽도공원-광양-백운산-백운사-고흥-팔영산-능가사-옥동항-소록도-수문장항-장흥-찬관산-찬관사-영산포-진주-서울-전남지역 순회를 무사히 마쳤다.
그 후 15년이 지난 2004년 8월 우리산악회 하계휴양 때 다시 찾은 백운암은 많이 변해 있었다. 전각도 요사채도 늘었으며 길도 포장되어 있었고 적막하기만 했던 암자는 불자들도 등산객도 북적 북적 많았으며 하백운암도 백운사로 개칭하였고 선동마을도 몰라보게 옛날과는 달리 상반된 모습이었다.
건강회복차원에서 시작한 등산을 통해 큰 사찰부터 작은 암자까지 400곳이 넘게 두루두루 다니다보니 가야산을 내려오면 해인사가 속리산을 내려오면 법주사가 덕숭산을 내려오면 수덕사가 오대산을 내려오면 월정사가 모악산을 내려오면 금산사가 조계산을 내려오면 송광사가 우리나라 어디를 가나 유명한 산에는 유명한 사찰이 있음에 자연스럽게 불교와 가까워져 과연 불교란 무엇인가 관심을 가지면서 불교의 화려하면서도 정적한 그 어떤 숨은 매력에 매료되어 천주교에서 불교로 전향하기 까지는 10여년이 걸렸다.
공자께서 말씀하신 불혹(40)의 나이 끝자락에서 지천명(50)을 거쳐 이순(60), 희수(70)를 살아오기까지 범람도 법명도 모르는 그 스님의 아주 짧은 법문을 내 인생의 지표로 삼고 열심히 불법을 배우며 정진 해왔다. 지금이라면 스님과 좋은 대화도 하수 있으련만….
나는 고종명을 맞이하는 그 순간까지 스님의 말씀 아주 짧은 법문 같이 살아갈 것을 마음에 새기면서 그날을 생각해보며 이글로 그날의 그리움을 달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