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판전의 토수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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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이야기 - 성안┃팔만대장경 보존국장
2013년 05월 375호
사래 끝이나 처마 모서리에 돌출된 서까래인 추녀 끝에 끼워져 사용되는 기와를 토수吐首라고 한다. 주로 궁전이나 관아 건물, 사찰에 사용되었던 토수는 고려 후기부터 출현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정면에는 용의 모양이 나타나 있고 뒷면은 서까래 끝에 씌워질 수 있도록 구멍이 나있다. 토수라는 용어는 육전조례 공전 와서 총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려 초기에 청동에 도금한‘금동용두토수’가 보물 제781호로 지정되어서 현재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되어 있다. 우리나라 토수는 모습도 재미있지만 조각 솜씨가 매우 뛰어나 예술 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해인사 장경판전에 있는 토수의 네모난 뒷부분은 나무의 각재角材를 끼우기 위해 속이 비어있다. 앞쪽은 용머리 모양으로, 용을 형상화해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려는 의미와 함께 불에 취약한 목조 건물을 화재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뜻을 담고 있다. 눈을 부릅뜨고 굳게 다문 입 가장자리로는 상서로운 기운이 뻗어 나온다. 특히 입 뒤쪽에 별모양으로 활짝 펼쳐진 지느러미를 큼직하게 장식해 물의 신임을 강조했다. 사찰의 건축물들은 많은 나무를 사용하여서 화재에 취약하다. 그래서인지 많은 불로부터 건물을 지켜려는 다양한 방법들이 고안하게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많은 사찰의 법당에는 풍경이 걸려 있다. 이 풍경에 있는 물고기는 화재로부터 안전하게 법당을 지켜주는 수호신장을 의미한다. 예전에는 법당을 제외한 스님들의 주거 공간인 요사체에 물수(水)자를 거꾸로 써서 기둥에 많이 붙여 놓았다. 이것도 역시 화재로부터 안전하게 건물을 지키려는 우리의 바램인 것이다. 해인사에는 팔만대장경을 모신 장경판전이 지어진 이후에 아홉번이나 큰 불이 나서 대적광전을 포함한 많은 전각들이 화재로 새로이 지어졌다. 언제 시작되었는지 모르지만 해인사에서는 해마다 음력 5월 5일 단오날이면 남산 상봉, 마애불, 대적광전과 사중 곳곳에 소금을 묻는 행사를 하여왔다. 모든 물은 서로 모여 실개천에서 강을 통하여 마지막으로 바다에 도달하게 된다. 그 바다에 모인 물들을 압축시키면 마지막으로 남는 것이 소금이 된다. 그래서 소금은 바다 그 자체를 상징적으로 의미하게 된다. 이와같이 소금을 묻는 행사를 하여서인지 고려시대에 봉안된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이 임진왜란과 육이오 남북전쟁에서도 안전하게 후손들에게 전해질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