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농구스타 데니스 로드맨이 지난 2월말 <HBO 방송>의 <바이스>라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북한 평양을 방문,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할렘 글로브트로터스>의 농구 경기를 구경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이들이 농구를 관람한 곳은 평양의 ‘류경 체육관’ 이고, 정식명칭은 ‘류경 정주영 체육관’이다.
정주영 씨는 모두가 주지하다시피 현대 그룹의 총수였으며, 소떼를 끌고 북한을 방문했었다. 류경 체육관은 그의 뜻을 기려 10년 전인 2003년, 평양에 세워진 건물이다. 류경은 평양의 옛 이름이며, 보통강 구역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니까 신기하게도 사회주의 국가의 수도 평양 한복판에 남쪽 자본가의 이름 석 자가 버젓이 걸려있는 셈이다. 이 체육관에서는 농구 및 권투경기가 열렸으며, 나는 2005년 10월 바로 그 권투경기 당시 류경 체육관을 방문했었다. 로드맨도 내가 갔던 곳에 방문한 것이다.
바로 그 류경 체육관 촬영 시 있었던 일이다. 그곳에서는 당시 한국의 평화 프로모션 후원으로 세계여자복싱선수권대회(WBCF)가 열렸으며, 그 전 해 중국 심양에서 열렸던 같은 경기에서 북한의 김광옥 선수가 프로로 데뷔한 지 1년 만에 열린 챔피언 방어전을 치렀다. 나는 심양 경기도 취재했었던 인연으로 평양에 가게 된 것이었다!
나와 로이터 사진기자, 한국권투협회 관계자 등 남측 일행들은 약 이틀간 평양관광을 한 뒤 드디어 류경정주영체육관에 도착했다. 그날따라 평양의 날씨는 맑아서 푸른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던 체육관의 전경이 생각난다. 원형 콘크리트 건물인 체육관 정문에는 북한 특유의 삐뚤어진 한글 흘림체로 “류경 정주영 체육관”이라고 쓰여 있었다. 감회가 새롭기도 했고 감격스럽기도 했다.
우리 일행은 정문으로 당당히 들어가 체육관 내부로 향했다. 경기장 내부 한가운데에는 사각 링이 설치돼 있었고, 위에는 조명이 밝게 비추어져 있었다. 경기장 한쪽 면에는 관중들이 미리 와 앉아있었는 데, 그날 주최 측 집계로 1만2천여 명이라고 했다. 그 중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미인부대들도 와, 나무로 된 도구를 손에 끼어 박수를 치기도 하는 등 열띤 응원전을 펼치기도 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경기 시작 전 갑자기 주최 측에서 우리 쪽으로 오더니 나와 로이터 기자가 취재허가를 받지 못했다며 촬영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 사진을 찍으려고 그 먼(?) 거리를 왔는데, 시합 직전에 사진을 못 찍는다니?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 난국을 어떻게 해쳐나간단 말인가?
나는 당황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몇 달 전 키르기스스탄에서 한국인 교민에게서 들었던 한 마디가 생각났다. 바로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였다. 실제로 그 말을 로이터 기자에게 하고 “기다려 보자”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를 안내했던 김일성대학 출신의 여자 안내원이 ‘끗발’이 좀 있었나보다. 그녀가 “내가 알아서 하겠다. 잠시만 기다려라”고 하더니 누군가에게 우리의 사정을 이야기했고, 5분 정도 후 그 주최 측 남자 담당자가 다시 우리에게 와 “촬영을 해도 된다”고 알려주는 것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바로 구세주였던 것이다. 나와 로이터 기자는 그때 챔피언 방어전 촬영을 무사히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 때 그 여자 안내원이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면 취재는 불가능했다.
이처럼 북한 및 다른 구소련 국가에서는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그 원리를 안다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