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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금탑사 서림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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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정영 2013년 05월 375호

오랜 시간을 머금은 깊은 초록의 비자나무 숲길을 굽이굽이 오른다. 그 가파른 산새를 한참 오르니 그제야 절 지붕이 슬며시 보인다. 조심스레 마당에 들어서니 아무도 없는 듯 조용하나 어디 한 군데 사람 손길 가지 않은 곳 없이 단정하다. 단아한 바람이 머문 바 없이 지나간 듯 한 마당에 서 있자니 봄 오후가 여념 없이 스며든다.
간신히 인적을 찾아 서림 스님을 뵈러 왔다 하니 저 산 위를 손으로 가리킨다. 서림 스님은 금탑사에서도 가장 높은 집에 머물고 계셨다. 돌계단을 하나하나 오를 때마다 나무 하나 풀 하나 꽃 하나 참 아니 어우러진 듯 어우러져 어여쁘다. 그 손길의 마음 씀씀이에 가슴이 다 울컥하고 고맙다.
서림 스님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일을 하는 중이시다. 부엌엔 삶아서 한 김 오른 깨와 콩이 햇살에 널렸다. 스님을 뵙겠다고 찾아온 객에게 스님은 겨우 눈길 한번 주시더니 내쳐 일을 계속하신다. 언제 말이나 한번 걸어주실까 싶은데, 뒷문으로 나가보라 하신다. 쪽문을 열고 나가니 하늘도 보이지 않을 만큼 빼곡한 비자림이 신비롭기까지 하다. 발밑엔 동백꽃이 수없이 떨어져 붉은 땅을 이루니 천지가 온통 붉고 푸르다. 정신이 아뜩해지니 예가 어딘지 몰라 그저 말을 잃는다. 스님의 처소는 그 품에 안겨 있었다. 스님이 머무는 집의 이름은 청라림靑羅林이라 했다. 그 이름이 어찌 틀릴까 싶다. 다른 이름이 어찌 붙을까 싶다.
스님을 따라 방에 드니 어두컴컴하다. 황토로 지은 방안 곳곳에 스님의 살림들이 참 소박하게도 놓여 있다. 구석에 작은 나무판을 가지런히 대어 다기를 올려놓은 것이며 벽면에 적어놓은 한편의 시하며 모든 게 정감 어리다. 차차 어둠에 익숙해져 방안이 환해지니 이제야 스님의 얼굴이 보인다. 스님은 차를 우려내주시며 말도 꺼내기 전에 문득 물으신다.
“하나만 물읍시다. 나를 보면 어떻게 생겼소? 부처님 명령으로 극락이나 가려는 땡벌로 보이는가, 아니면 중생의 시비 따라서 춤을 추는 꽃밭의 나비로 보이는가?”
스님은 거의 폐사 직전의 금탑사에 들어와서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여러 채의 집을 불사했다. 그러는 동안 일을 꼭 저같이 맹꽁이처럼 해놓았다는 소리도 들었다. 금탑사 벌레까지도 꼭 저같이 집을 짓더란 소리도 들었다. 허나 스님은 그런 소리에 아랑곳없이 손끝이 잦아지도록 일을 했다. 그러니 냉정하기 이를 데 없이 쌀쌀맞다는 소리도 들었다. 허나 이젠 금탑사에 들면 누구든 평온하다고 말한다. 그렇게 한 마디로 참 어여쁘다고 말하기에 그 세월은 너무도 아팠다. 시주 받은 나무를 베어다가 일일이 손으로 껍질을 벗겨내 기둥으로 삼은 집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찌 평온하지 않겠는가. 방안의 어둠 속에서 눈이 더 밝아지니 이제야 알겠다. 금탑사의 단아함이 고스란히 서림 스님의 모습에 있다.
불사에 원력을 둔 적 없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집을 지으며 살았다.
“일을 일로 생각하면 그렇게 못 살았지요. 일과 공부를 둘로 생각하지 않았어요.”
스님이 20년 넘는 세월동안 일만 하며 산 것은 그것이 곧 공부였기에 가능했다. 서림 스님은 그것이 계정혜戒定慧 삼학 중에서도, 대상에 집중해 고요한 가운데 진리를 관찰하는 수행법인 정定에 해당되는 것이라 여겼다.
“내가 이 도량을 만든 것은 부처님을 위해서도 아니고 신도들 위해서도 아니고 극락에 가려고 한 것도 아닙니다. 그저 내 수행과정의 하나인 것이지요.”

살려고 왔던 사람은 다 떠나고 서림 스님이 지금까지 이 금탑사 도량을 일구며 살아 왔다. 본래는 집채가 여러 개였는데 허물어지면 허물어지는 대로 둔 절이라서 처음에 왔을 때는 것의 폐사였다. 부처님도 다 퇴색이 되어 빨간 부처님이라고 소문이 나 있었다. 게다가 터가 으슥하니 사람 왕래가 거의 없고 바구니처럼 움푹 들어간 자리라서 조금이라도 비가 내리면 절 가득 물이 찼다. 그러니 모두가 고개를 저으며 떠났다.
“기둥 썩는 게 다른 사람들 눈엔 다 보이는데 내 눈엔 안 보였던 것이지요.”
그렇게 혼자 남아 불사를 시작했다. 처음엔 남자도 못 하는 걸 여자가 와서 한다고 마을 사람들이 흉보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기어이 일을 하는 스님을 보고 할머니들이 제 집 일처럼 일손을 도왔다. 손 모아 기둥도 세우고 손수 지붕에 흙도 얹었다. 그렇게 개미역사로 도량의 모습을 갖춰나갔다. 스님은 그 선두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온몸으로 일을 했다. 비가 내려 흙이 쓸려 내려가고 축대가 무너지면 자다가도 달려 나가 그걸 손으로 막아냈다. 겨울이면 장정들과 축대 쌓을 나무를 베러 가서 하루 종일 거센 바람 속에 서 있다가 돌아와 쓰러지기도 했다. 그 모든 게 살려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었다. 처해 있으니 할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재작년 10월에 주지 소임을 상좌스님에게 물려주었더니 이젠 할 일 없이 참 편하단다. 요즈음 두 어 달이 일생에서 가장 행복하단다. 그런데도 스님의 손은 쉬는 적이 없다. 여태 몸이 골병들도록 일만 죽어라 한 손이 노닥거리기란 턱없는 소리다.
“누가 그러대요. 얘기를 나누면서도 내 손은 가만히 안 있다고. 누더기를 기워도 깁고, 소쿠리를 기워도 깁지요. 또 어떤 새중이 내게 묻더라고요. 스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있냐고. 그래서 나는 나무 하는 일이 제일 즐겁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이 지구에 나무하고 물만 있으면 난 살아남을 것 같다고 하대요.”
그것이 한 마디로 서림 스님이다. 나무와 물만 있으면 평생을 신이 나서 살 것 같은 사람. 그러니 금탑사의 집들이 다 그렇게 건강하다. 그러나 그렇게 건강한 집을 짓는 동안 스님은 잠도 뒤로 하고 남자들보다 더 일을 했으니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
“이젠 일을 조금만 해도 몸이 싫다고 그래요. 꾀를 부리려고 하지요. 나는 하고 싶은데 몸이 말을 안 들어요.”
어느새 68세가 된 서림 스님은 스스로를 노스님이라 칭하며 곱아드는 손을 펴신다. 스님은 재작년에 후원채를 짓고 병원에 입원했다. 당 수치가 하도 높아서 의사도 놀랄 지경이었다. 하도 일을 하느라 소화제도 안 먹고 살아온 스님에게 약물 중독이 아니냐는 소리까지 했다. 그런데 서림 스님은 병원에서 하룻밤을 자고 입은 채로 도망 나왔다. 생로병사는 누구도 어쩔 수 없는 것인데 병원에 더 머물다간 지레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이랑도 같이 살자 싶어서 바랑 하나 짊어지고 일 년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진즉부터 마음먹었던 만행이었다.
“난 길눈이 봉사만도 못 한 사람이에요. 혼자서는 아무 데도 못 가던 사람이 걸어서 전국을 돌아다녔으니 획기적인 일이었지요.”
금탑사에서 일만 하느라 외출도 거의 없던 스님이 길을 나섰다. 다니면서 도반들한테 옷 얻어 입었다. 객 문화가 사라져버린 절집에서 문전박대를 당해도, 오신채 넣은 음식을 입에도 못 대니 먹을 게 없어 배가 곯아도 금탑사에서보다 신간이 편했다. 그렇게 지리산, 설악산, 제주도 할 것 없이 혼자서 만행을 했다. 유럽까지 다녀왔으니 이제 어느 길도 두렵지 않다.

서림 스님은 두 권의 시집을 냈다. 벽에 적어 둔 시를 여쭈니 스님은 머리부터 매만지신다. 그러더니 이내 읽어주신다.

어느 것 한가진들 곱지 않을 꽃봄을 봄앓이 하는 나는
은하수보다 많이 피어나는 꽃님들을 바라볼 여가 없이 봄을 앓아라
떠는 손으로 마른 밤송이같이 엉성한 머리 깎고 기분 좋아
머리를 만지다가 언젠가부터 꺼진 땅처럼 골이 져 스펀지처럼 물렁물렁
이상타 이상도 하다 질펀한 생각들에 잠기다가
머리통 울퉁불퉁한 노스님 보면 道骨이라 환희심을 품었는데
老骨이었네 혼자 피식 웃고 마른 삭신 엉거주춤 바근바근 소리 난다
- 서림 스님, <道骨이 老骨>

얼마 전 호되게 감기 앓고 나서 쓴 시란다. 머리가 워낙에 반듯했는데 앓고 나서 머리를 만져보니 골이 져 있더란다. 조카 상좌한테 만져보라 했더니 스펀지 같다 하더란다. 스님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고는 생각했다. 땅도 큰 물이나 불이나 바람이 지나가면 골이 파이는데 사람 머리도 큰 병을 앓고 나면 당연히 파이지 않겠나 싶었다. 그렇게 마음을 돌려버리니 편안해지더란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어요. 난 시를 배운 적이 없어서 지적이고 멋진 글은 못 써요. 하지만 난 시를 머리로 쓴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마음으로 쓰지요.”
스님은 계속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하게 든단다. 요즈음은 세상 모든 것이 글 소재로 보인단다. 그래서 오그라든 손을 펴가며 시를 적는다. 산책을 할 때도 시상이 떠오르곤 해서 주머니에 연필과 종이를 넣어 다닌다면서 스님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시가 적힌 종이들을 꺼내 놓으신다. <꽃을 사귀는 산 늙은이><무궁무진><나의 바라밀> 등 여러 편의 시가 스님의 몸에서 어여삐도 웃으며 나온다. 스님도 빙긋 웃으며 말씀하신다.
“내게 이건 글쓰기가 아니에요. 이건 내 오락이에요. 누구에게나 오락이 한 가지씩은 있어야 하잖아요.”
스님은 요즈음처럼만 한 십년 세상에서 노닐다 갔으면 좋겠단다. 요즘처럼 평온하고 행복할 때가 없단다. 나무 한 짐 해서 방에 불 때고 사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치는 스님이니 그러할 밖에.
“우리 절에선 자기 방에 땔 나무는 자기가 하면서 살아요. 나도 이 집의 방 두 군데에 불을 때니 매일 나무 한 짐씩 하면서 살지요.”
나무 하는 게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스님은 그래서 오늘도 마냥 행복하다. 스님은 또 양동이를 들고 어딘가로 걸음을 옮기신다. 우리고 우려내어 종내에는 맑아진 찻물처럼 저만치 가시는 서림 스님의 뒷모습이 맑은 빛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