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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에 갇힌 부처를 보다_2013년 해인아트프로젝트(9월 27일부터 45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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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박상희 2013년 05월 375호
와불로 태어날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소리길 자연석
소리에 소리가 없다는 말이 가능할까?
가능했다.
역설적이게도 소리길에서 내게는 그랬다.
제비꽃잎의 푸른 띠 같은 하늘아래 가야산 봉우리, 그 밑으로 수 천 수 만년을 흘러 귀부인의 비단치마 주름처럼 깊게 패인 홍류동 계곡, 초봄의 아침 햇살에 일광욕을 하듯 벌거벗은 바위들. 백년 이백년을 참선하듯 자리를 지켜 온 선승(禪僧)같은 소나무들로 인해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가 내 귀엔 들리지 않았다.
조각을 하는 내게 청각보다는 시각적 자극이 강해서 일까? 소리길을 걷는 내내 나의 귀는 닫혔고 동공은 더욱 커졌다.
소리길의 숲이 거느린 짙은 녹색의 어둠 속을 유리 파편이듯 찢고 들어오는 투명한 햇빛과 연분홍의 진달래 풍경은 마치 무성영화처럼 침묵의 소리로서 먼저 내게 다가왔다.
그렇게 한참을 숲속의 영화를 보듯 걸은 후에 나의 귀는 차츰 열리며. 그때서야 물의 이야기, 새들의 수다와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걷기에 적당한 평지와 오르막의 행복한 산책을 하는 내게 하나의 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높이 약 1미터에 7-8미터 길이의 화강암이었다.
왼쪽이 머리처럼 둥그렇게 돌출되어 있고 오른쪽으로 길게 뻗어있는 형태가 마치 부처님이 누워계신 모양의 자연석이 아닌가!
나는 그 자리에서 처처불상(處處佛像) “세상 곳곳에 부처 없는 곳이 없으며 이곳 또한 바로 법당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자마자,
이곳에 와불(瓦佛)를 조성하면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2013 해인아트프로젝트의 기획팀으로부터 마애불과 같은 부처님의 형상을 현대미술 작가 입장에서의 작품을 제작해 달라는 의뢰를 받고 해인사의 소리길을 답사하는 중이었다.
사진을 찍었다.
그런 후에 해인사의 호법국장이자 해인아트프로젝트의 사무국장 일을 맡고 있는 향록스님과 학암스님, 원창스님을 만났다.
그분들은 “주지스님께서 미리 봐두신 바위가 있는 데 함께 보러가자.”고 했다.
다시 소리길을 내려가서 원창스님이 가리키는 바위를 보니 아까 내가 올라가며 보았던 와불 형상의 그 바위가 아니던가!
그 순간, 세상 모든 것에는 불성(佛性)이 있으며 ‘필연은 우연의 외투를 입고 찾아온다.’하던데 “아마 이 바위는 이미 와불로 예정이 되어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렇다면 천년의 세월을 여기에서 온전히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와불로서 세상과 대중에게 나타날 때를 기다렸던 것일까?
그때까지도 바위에는 부처님의 법의(法衣)인양 수많은 세월동안 이끼와 떨어진 낙엽으로 덮여있었다. 한참 동안 그 앞에서 숙고하는 내게 문득 의문이 생겼다.
소리길에 예술의 이름으로 인공의 작품을 설치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을 훼손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곳에 자신의 작품을 영원히 남긴다는 것은 작가로서 영광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의 아름다움을 깨트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와 욕망이 충돌하였다.
왜냐하면 해인사의 소리길은 연극무대의 세트장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살아있는 예술의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천년의 숲길을 걸으며 앞으로의 천년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고민을 하게 되는 것, 어쩌면 예술가로서의 숙명은 아닐까?
그 때 신라의 고도, 경주 남산의 부처들이 생각났다.
20여 년 전에 운주사에 이어 경주 남산의 부처들을 찾은 그때, 화강암 자연석에 새겨진 마애불과 입체의 부처들을 보면서 자연이 훼손됐다는 느낌을 받았었던가?
아니, 오히려 그것은 파괴가 아닌 또 다른 자연의 표현이었고 숭배이자 경탄이었다.
그렇게 천년을 넘어 신라인, 그 시대 민중들의 마음이 부처를 통한 소박한 염원의 상징이었음을 그때의 돌부처들은 증거하고 있었다.

이런 생각에 이르자 나는 다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삼국시대와 고려 등, 지난 시대의 불상을 답습하기보다 이 시대의 미의식이 담긴 와불, 즉 찾아가는 대웅전의 부처님만이 아니라 산책길에 만나는 친숙한 부처님을 형상화하고자 했다, 걷다가 힘들 땐 기도하며 쉼터가 되어주기도 하는 그런 부처님, 바위가 아파하지 않고 부처님이 편안하게 누워 계신 모습을 만나기 위해 나는 그 앞에서 오랜 시간을 견뎌야 했다.
와불의 모습이 자애로워야 그를 보는 중생도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이고, 바위를 조각하는 내 속에 있는 부처의 형상을 강요하기보다 바위에 이미 내재돼 있을 부처의 형상을 최대한 끌어내어 숨을 쉬게 해줘야 했다.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는 “나는 돌 속에 갇힌 인간의 모습을 보고 그를 해방시켜주었을 뿐이다.” 라고 하지 않았던가!
부처를 누르고 있는 불필요한 덩어리와 무게를 줄이고 중생들의 버거운 마음을 환하게 비춰줄 대자대비의 표정을 주어야 한다. 그러자면 내가 우선 부처가 되고 바위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내가 과연 부처가 되고 바위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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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 님은 조각가이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와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강의를 했다.
국내는 물론 프랑스와 러시아 등에서 12번의 개인전과 140여 차례의 그룹전 및 아트페어에 참가하였으며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동아미술상, 중앙미술대전 우수상 등 국내주요 미술공모에서 수상하였다. 다가오는 2013년 9월 해인아트프로젝트 전시회에 전시작가로 참여하여 해인사 소리길 자연석에 마애불을 조성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