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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답게 사는 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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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 해인총림 방장 법전 스님 2013년 05월 375호
2010년 수좌회 스님들과 함께
1984년 가을, 불령산 수도암을 뒤로하고 가야산 해인총림으로 돌아왔다. 스물넷이던 1948년 가을, 그렇듯 해인총림에 가고 싶어 백양사를 떠나온 지 36년 만이었다. 6 ․ 25전쟁 때 잠깐 피난을 온 적이 있고, 1967년 해인총림이 개설되면서 선방 유나로 잠시 머문 적은 있었으나, 그것은 해인총림과의 인연이 무르익기 전이었다. 1984년 이후 오늘까지 머물고 있으니 해인총림과의 시절인연은 그 이후인 셈이다.
지금까지 25년여 동안 해인사에 머무르면서 수좌(1984~1994), 주지(1986~1994)를 거쳐 방장(1996~현재),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2000~2002)과 조계종 종정(2002~현재)으로 추대되었으니, 해인총림과의 인연은 실로 깊다 할 수 있다.
해인총림으로 돌아오자 나는 곧 수좌 소임을 맡으면서 동안거 결제에 들어 대중들과 함께 앉았다. 이때의 수좌는 총림의 선원에서 방장을 대신해 선을 지도할 수 있는 소임자를 말한다.
주지와 겸직하여 10여 년 동안 수좌 소임에 있으면서 후학들의 정진을 독려했다. 예순 살의 나이에 대중들과 함께 선방에는 앉았는데 그때만 해도 앉았다 하면 너덧 시간을 꼼짝하지 않았다. 곁에 있던 수좌들이 그러한 내 모습을 보고 신심이 나서 내 옆에 오래 있으면 당장 공부를 마칠 수 있을 것 같다고들 말했다.
수도암 선원을 짓고 불사를 하면서 몸을 혹사해 심한 견비통에다 다리도 불편했으나 대중들을 이끌고 정진하는 자리에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일평생 도에 대한 굳건한 신념과 내 스스로 설정해놓은 원칙에서 단 한 번도 물러서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총림의 선원에서 오랜만에 대중들과 함께 앉은 나는 오래 눕지 않고 적게 먹으며 맹렬하게 수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해인사에서는 한 해에 두 번 하안거와 동안거 결제 중 일주일 동안 용맹정진을 한다. 특별히 개인적인 사유가 없는 한 총림의 방장에서부터 학인들까지 모두 동참해 24시간 잠을 자지 않고 맹렬히 정진하는 것을 전통으로 한다. 참가한 대중들은 어간에서 하판까지 시간별로 장군죽비를 잡는다.
평소에는 벽을 보고 정좌했다가 용맹정진 때는 서로 마주보고 앉는데, 이때는 총림의 방장이라도 졸음을 견디지 못하면 학인의 장군죽비를 피하지 못한다. 수도암에서 돌아온 그해 동안거 용맹정진 중에 이 장군죽비를 맞지 않은 유일한 사람은 나뿐이었던 것으로 안다. 해 인사에 들어온 이후 지금까지 내가 조는 모습을 본 선방 대중은 지금까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선가에선 무엇보다 수마를 경계하게 하고 있다. 성철 노장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은 졸음 올 때의 눈꺼풀’이라고 했을 만큼 수좌들에게 졸음은 천적과 같다.
“용맹정진 한다고 하면서 졸고 있으면 어디 그게 용맹정진인가? 하면 입은 채로 잠깐 누었다 일어나면 된다. 옛 스님들은 목침을 둥글게 해서 베었다. 목침이 둥글면 자꾸 미끄러져서 오래 자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평소에 수좌들에게 내가 일갈했던 말이다.

불기 2557(2013)년 ≪누구 없는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