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대는 신라 말 대학자 고운 최치원 선생이 만년에 가야산에 은거하며 시서에 몰입하던 곳이다. 그가 이곳에서 가야금을 연주할 때는 많은 학이 날아와서 경청했다고 하며 지금 서 있는 전나무는 고운이 신선되어 등천하면서 지팡이를 거꾸로 꽂아둔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장경판전 가까이 있는 학사대는 가야산 대 계곡 능선의 중턱에 위치하여 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바람과 홍류동 계곡에서 올라오는 바람이 서로 만나는 지점이다. 가야산과 매화산, 해인사 본당과 13개 사내 암자들, 저 멀리 홍류동 골짜기까지 모든 전경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이 뛰어난 곳이다.
학사대에 올라서서 바라보면 눈앞에 병풍처럼 펼쳐진 비로봉과 가야산 매화산 능선들이 해인사를 멀리서부터 넓고 두텁게 감싸고, 그림처럼 광활하게 펼쳐진 수많은 계곡과 산맥들, 울창한 숲과 바람과 구름과 하늘이 하나 되어 해인사는 대자연의 연꽃 속에 앉아 있는 듯 아늑하고 장엄한 모습을 보이며 부처님 자비광명의 성운을 온 몸으로 느끼게 한다.
고운은 <신라가야산해인사선안주원벽기> 에서 해인사의 이런 모습을 구름처럼 솟아오르는 듯 노을이 퍼지는 듯, 가야산의 좋은 경지는 도를 성취하는 터전에 알맞게 되었다. 고 표현하고 있다.
천 년 전,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던 중국 당나라에 13세 소년의 몸으로 유학하여 천하에 그 문명을 떨친 고운의 뛰어난 학문은 고고한 옛 선비 정신과 나라사랑, 학문을 숭상하는 우리민족 정서의 상징이다. 고운이 풍류를 즐겼던 홍류동 계곡 농산정에는 목은 이색, 점필제 김종직, 매월당 김시습, 만해 한용운 등 당대의 양심적인 거유들이 다녀간 흔적이 남아있다. 부산 해운대도 고운의 호를 딴 지명이라고 한다. 얼마나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으면 전국 곳곳에 고운의 작은 흔적이라도 역사와 전설의 현장이 되고 있겠는가.
고운은 왜 이곳 학사대에서 등천하였을까. 망국의 통한을 안고 태자의 몸으로 마의를 걸치고 금강산 깊은 산골에 들어가서 생을 마치는 마의태자처럼 고운 역시 무너져 가는 국가사직을 되돌릴 수 없는 망국의 비애를 통감한 나머지 스스로 외로운 한조각 구름이라 하며 가야산에 은거했다.
신라 하대의 150여년은 왕의 재직기간이 평균 8년을 넘기지 못할 정도로 정권쟁탈과 도덕적 부패, 하극상이 극에 달한 혼란기였다. 고운은 개혁을 건의하며 국가쇄신을 기도했으나 기득권층의 벽에 부딪쳐 외직으로 밀려나고 만다. 고운이 왕건에게 보낸 글 중에 계림황엽鷄林黃葉 곡령청송鵠嶺靑松이란 구절이 있다. 경주는 이미 기울었고 개성은 푸른 솔이라 하여 왕건에게 다음 시대를 기대한다는 뜻이 담겨있는 말이다. 이 글로 신라왕의 노여움을 사게 되면서 이곳 가야산으로 피신해 들어온 것이다.
학사대의 전나무는 천년세월의 전설에 맞지 않게 지금도 왕성한 기력을 보이고 있다. 천하를 날려버릴 듯이 매년 몇 차례씩 연이어 불어 닥치는 거대한 태풍에 주변의 수 백 년생 나무들이 큰 가지가 부러지고 온 몸통이 흔들리며 몸부림 쳐도 학사대 거대한 전나무는 태산 같은 몸자세를 크게 흩트리지 않고 그저 잔가지들만 바람 따라 흔들리며 장중한 위엄을 잃지 않는다.
청정 수도도량 천년고찰 해인사 방문길에는 가야산의 16비경을 간직한 소리길과 아름다운 홍류동 계곡, 세계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과 장경판전, 각종 보물 등, 곳곳에 서려있는 전설과 역사의 숨결을 체험하면서, 부처님 참배하며 경건한 불심으로 마음을 맑게 하고, 이어 학사대에서 가야산 매화산 대자연을 가슴에 담으며 고운의 옛 가야금 소리를 상상해보는 것도 나그네의 감회를 더욱 넉넉하게 젖어 들게 하는 묘미가 되리라.
농산정에는 고운의 많은 발자취가 남아있지만 학사대에는 뛰어난 전망과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팡이전나무 전설만 전해지고 주변은 그저 황량하다. 학사대는 고향마을 동구 밖 정자나무를 연상케 하는 정겨움과 훈훈한 지덕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퇴옹당 성철 스님은 장경판전과 이곳 학사대를 자주 들르셨다고 한다. 또한 지력보호를 위해 삽질도 함부로 못하게 하셨다고 한다.
이런 중요한 역사 현장이 도랑에 쌓이는 낙엽과 관광객들이 버린 쓰레기 등으로 초라하게 보이기도 한다. 도랑을 메우고 주변 미관을 역사적 정서에 맞게 조성하여 도량과 선인들의 향기를 보전하는 조치가 요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