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라톤(기원전 427-347)은 아테네에서 이름 높은 가문(친Poseidon과 외Solon)의 막내로 태어나 미래를 보장 받은 듯 했다. 그러나 아테네를 포함한 당시의 고대 그리스는 밖으로는 오랜 페르시아와의 전쟁(Greco-Persian Wars, 기원전 492-448)과 안으로는 그리스의 헤게모니를 두고 아테네 동맹과 스파르타 연합이 벌인 펠로폰네소스 전쟁(Peloponnesian Wars, 기원전 431-404)으로 피폐할 대로 피폐해진 상태였다. 페르시아 전쟁은 물론이거니와 펠로폰네소스 전쟁도 그리스에 속한 어떤 도시국가도 중립을 지킬 수 없이 한 쪽에 가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당시로서는 가히 세계전쟁이었다 할 수 있다. 아테네는 결국 그동안 누렸던 고대 그리스 내부의 헤게모니를 잃고 패전국의 쓰디쓴 식민통치를 맛보아야 했다. 특히, 플라톤은 스파르타의 식민치하에서 가족과 친척 그리고 지인들의 격동하는 정치적 부침浮沈을 어린 나이에 목격하게 되고, 예컨대, 외삼촌이 식민치하의 독재 집정관으로 발탁되기도 하고 또 모함에 몰려 사형에 처해지기도 하고, 정치적 엘리트 집안이었던 탓으로 형들과 친척들이 감옥을 드나드는 비정한 현실을 어릴 적부터 견디며 지켜보아야 했다.
한편, 무려 27년에 걸친 장기전으로 아테네는 엄청난 인명과 재화를 잃었을 뿐 아니라, 시민들의 삶의 방식도 바꾸어 놓게 되었다. 그 동안 믿어 의심치 않았던 시민들의 일상은 패전과 식민통치로 상식과 합리를 잃어버리고, 계급갈등은 물론이거니와 살아남기 위한 “실존주의적” 처세술인 소피스트리sophistry(특히 변론술rhetoric)가 대유행이 되었다. 즉, 사회는 정치적 격변과 무질서 속에서 많은 아테네 시민들로 하여금 프로타고라스(기원전 485-414)식式 사고와 행동으로 지식과 문화의 상대주의, 물질만능의 상업주의, 그리고 우민선동愚民煽動의 정치술수를 받아들여 이성적 판단과 도덕적 질서를 잃어가고 있었다. 주지하듯이, 프로타고라스는 당대의 가장 인기 많고 뛰어난 논변학자debater로서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자신의 상대주의적 인식론을 모든 사회현상과 사물의 본질파악에 응용하고 있었다. 우리들의 믿음, 판단, 문화 그리고 도덕은 모두 약속agreement이자 관습convention일 뿐이며, 따라서 필연적이라기보다 상대적일 뿐이며, 결국 우리 모두는 각자 자신의 주관적인 감각과 믿음 외엔 어떠한 확신도 가질 수 없는 것이 자연과 인간의식의 현실이며 근원이라는 것이다.
프로타고라스의 주장은 비록 존재론적 주장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해석학적으로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화엄유식華嚴唯識과 크게 다르지 않다하겠다. 신라승 원효는 젊은 시절(661년) 의상과 함께 현장이 인도에서 새로 들여온 신유식新唯識을 배우기 위해 당唐으로 유학길에 올랐다가 하룻밤 피곤한 노정路程에서 잠결에 마신 물이 해골에 괸 빗물이었음을 알고, 사물 자체는 불구부정不垢不淨이며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에 달렸음을 깨달아 ‘삼계유심三界唯心 만법유식萬法唯識 심외무법心外無法 호용별구胡用別求)’의 오도송을 남겼다. 원효는 물론 그 길로 유학을 기꺼이 포기하고 돌아왔다. ‘신유식’의 정수를 이미 얻었기 때문이다. 진리는 밖에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고 되돌아 온 것이다. 이는 프로타고라스의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명제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결론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프로타고라스의 ‘일체유심조’는 극도로 혼란하고 위험한 당시의 시대정신을 대변한 실존주의적 성찰이었다.
20세기 전반에 펼쳐진 1, 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겪은 현대의 불행했던 민중들과 펠로폰네소스 ‘세계대전’의 희생자였던 고대 아테네 시민들에게 실존주의는 단순한 철학사상이나 이념이 아니라 그들이 직접 체득한 생존방식으로서의 인식론이자 세계관이었던 것이다. 세계전쟁이 휘몰고 온 삶의 일상성의 상실, 사회정의의 무용성, 인간본성의 비합리성, 그리고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하루하루의 생존을 위한 투쟁, 그 ‘상실喪失’의 시대에 시대정신이 어찌 ‘실존’이 아닐 수 있었겠는가! 실존주의는 우리가 발을 딛고 선 이 세상에는 더 이상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인간본성으로서의 합리성이나 선의지 혹은 보편적 질서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실존적 현존재로부터의 매순간 고뇌가 담긴 결단의 행보行步만이 자신을 세상의 무관심과 소외로부터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 현실체득의 철학이다. 체득을 통해 부르짖기를―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그 아무데도 기댈 곳이 없는 ‘불안하게 던져진’(하이데거) 그리고 ‘스스로 존재방식을 선택하도록 운명 지어진’(사르트르) 나, 타자와는 결코 대치될 수 없는 독립적 주체로서 자신의 건강한 실존만이 스스로의 구원이 되며 세상을 향한 잣대를 만들어내는 유일한 근거이자 의지처인 것이다. 세상은 너와 내가 공유하는 객관적 그 무엇이 아니라 오직 ‘나’에 의해서만 재해석 될 수 있는 아주 구체적이고 사적인 것이다. 그렇게, 세상은 누구에게나 실존적으로 일체유심조의 세계인 것이다.
프로타고라스의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명제가 단순히 입신양명을 위한 궤변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앞에서 보았듯이 철학적으로 상당히 의미있는 관념론적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고, 또 한편으로는 만물의 척도가 제우스와 같은 올림푸스Olympus의 신들이 아니라 바로 지상의 우리들 인간이라는 ‘인간해방’ 선언이 담긴 정치사회학적 언명이라 할 수 있겠다. 신이 아니라 인간이 만물의 척도이며, 따라서 인간의 시각과 판단에 의해 세상이 이해되고 운영되어야하며, 또 따라서 결국에는 인간이 역사의 주관자이며 최종 심판자로 등장할 수밖에 없는 운명적 존재임을 자신의 명제 속에 은유隱喩하고 있는 것이다. 불행히도, 바로 그 점에서 프로타고라스는 아테네 시민들의 미움을 받고 무신론자로 낙인찍혀 ‘신에 대한 불경죄’로 기소되지만, 소크라테스와는 달리, 아테네 시민들의 정의감을 믿지 못한 채 국외 도피의 길에 오른다. 아마, 고대 아테네는 신의 존재와 도움 없는 인간해방과 자유를 만끽할만한 준비가 ‘아직은’ 없었던 것 같다. 덧붙여,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 얼마나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두려워하여 무엇인가에(신이든, 권력이든, 지식이든) 매달리려고 하는지 역사는 반복적으로 증명해 온 터이다. 니체의 ‘신은 죽었다’는 용기와 그러고도 무사했던 현대가 프로타고라스는 부러울 것이다.
다시 플라톤으로 돌아오면, 플라톤은 스승 소크라테스와 소크라테스가 한때나마 흠모한 프로타고라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대화편《프로타고라스》를 펴냈다. 그만큼 프로타고라스 철학에 관심이 컸지만 다른 대화편들을 통해 대부분 비판적 입장에 선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며 밀접히 상관되어 있다. 첫째는 프로타고라스 식의 ‘상대주의’는 자기모순에 빠진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대화편《테아테투스Theaetetus》에 따르면, 상대주의를 용인하게 되면 스스로에게든 상대방에게든 대화의 합리성이 유지될 수 없는데 그 까닭은 상대주의는 스스로 옹호하는 주장의 정당성이 상대주의적 순환오류에 빠져 자기 논박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객관성이 결여된 모든 상대주의는 회의주의懷疑主義와 유아론唯我論에 빠지게 되어 스스로의 함정에 갇히게 된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프로타고라스 상대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단순한 ‘믿음doxa’과 증명된 ‘인식episteme’ 사이에는 차이가 있음을 직시하고 상대주의와의 화해를 시도했다. (Episteme와 doxa의 구별도 후에 문제되기는 마찬가지였다.)
더욱 중요하게, 플라톤의 프로타고라스 비판의 두 번째 이유는 플라톤이 당시에 염두에 둔 ‘사회개혁’과 깊게 관련이 있다. 지식과 문화 상대주의적 변론술을 최상의 정치적 덕목으로 삼아 프로타고라스에게 수업을 받은 아테네의 세력가들이 수도 없이 많았고, 그들 모두 이미 혼란한 아테네를 더욱 깊은 수렁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도저히 정의正義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권모술수와 부조리가 난무하는 사회를 혐오하고 걱정하는 가운데, 플라톤은 상대주의가 그 원흉이라 선언하였다. 아테네가 옛날의 경제적 번영과 사회적 질서를 되찾으려면 반드시 사회가 정화되고 개혁되어야 한다고 확신하였다. 플라톤에 따르면, 1)사회개혁은 사회정의를 이룰 수 있을 때만 가능하고, 2)사회정의는 반드시 누구나 옳다고 인정하는 확고한 기준(절대적 지식)에 의해서 가능하고, 따라서 상대주의는 물리쳐야할 반사회적 이념이며, 3)절대적 지식은 영원불변한 대상―the World of Ideas or Forms―에 근거하며, 4)그러한 절대지식의 습득(예컨대 geometry를 포함한 ‘Academy’ 교육)이 곧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지름길로서 사회개혁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플라톤의 magnum opus《공화국 the Republic》은 장장20년에 걸쳐 집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