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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컴퓨터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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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로 본 세상 - 정은진/프리랜서 포토저널리스트 2013년 04월 374호

요즘 북한의 소위 ‘사이버 전사’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3월20일 국내 주요 방송사와 금융기관 전산망 장애 해킹 사건이 일어나자, 일각에서는 북한의 소행이 아닐까 하는 관측이 대두됐고, 자유북한방송은 아예 “이번 사태가 북한 해킹 전문가를 육성하는 일명 ‘조선인민군 지휘자동화대학’ 졸업생들의 성과인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컴퓨터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2005년도 가을. 국내 한 여행사를 통해 평양을 갔던 적이 있었다. 평양관광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틀에 맞춰져 있었으며, 일정 코스가 있었다. 만수대-만경대 소년궁전-묘향산-주체탑 등이 그것이었다. 그 중 만경대 소년궁전은 북한 전역의 영재학생들만 특별히 선정, 평양 한가운데에서 음악, 무용, 체조, 수영, 서예, 바둑, 컴퓨터, 자수 등을 집중교육 시키는 곳으로, 그 수준은 여러 동영상에서 봐왔듯이 어린아이들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완벽한 수준을 자랑했다.
그 당시 남측 관광단은 소년궁전 내 여러 시설을 돌아보고 공연도 관람했으며, 그 중 컴퓨터 교실에도 들러볼 기회가 있었다. 하얀 시멘트벽으로 된 컴퓨터실에는 30명 남짓한 학생들이 브라운관으로 된 두꺼운 컴퓨터 모니터에서 뭔가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모니터에 있는 파란색 화면에 눈이 갔다. 바로 도스였던 것이다!
지금 그때 찍은 사진을 유심히 보니 윈도우즈를 쓰던 학생도 있었지만 그 당시 도스화면이 먼저 눈에 들어왔던 나는 내심 ‘아니, 지금 도스를 쓰다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처음 도스를 접한 게 1989년도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에서 이었다(동창을 따라 들어간 적이 있었다). 그리고 93년도 미국유학을 갈 당시 ‘워드퍼펙트’라는 도스 프로그램으로 리포트 작성을 시작했고, 유학 1년 후 맥켄토시로 포토샵과 쿼크 익스프레스를 배우고 겨우 애플 응용시스템과 MS 윈도우즈에 입성했다. 신문사에 취직해서도 원고지로 기사를 작성하고 90년대 중반에는 (신문사 사정으로 인해) 흑백 모니터로 ‘도스’ 원고 작성을 했다. 그리고 2005년도, 평양 한복판에서 추억의 푸른 화면을 북한의 영재들이 쓰고 있는 것을 본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도스를 쓴다고 얕볼게 아니었다. 몇 주 후 세계여자권투선수권대회 취재를 위해 또다시 평양을 방문했을 때, 노동신문 기자들 중 가장 고참기자는 그 당시 최신 캐논 디지털 카메라를 쓰고 있었고, 그렇다면 그 사진 파일을 편집할 수 있는 컴퓨터나 운영체계는 도스 이후의 것이었다고 추론해 볼 수 있다. 또한 평양에서 당일 사진 전송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나와 함께 갔던 로이터 기자는 국제전화 모뎀으로나마 사진을 전송했다. 묘향산 관광지에는 ‘컴퓨터 사진’이라고 쓰인 디지털 사진 출력기가 있었다. 특권층이나 관광객만이라도 이런 문명의 혜택이 어느 정도 있었던 것이다.
21세기가 된 지금, 평양에서는 외국인들이 3G 인터넷망을 사용할 수 있어서 진 리 AP 지국장이 자신이 찍은 스냅 샷들을 ‘인스타그램’이라는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사진과 감상을 업데이트하고 있는 상황으로까지 발전했다. 리 지국장이 몇 주 전 텍사스의 SXSW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말한바 에 의하면, 북한에는 현재 내국인이 사용할 수 있는 국제 인터넷과 내부 인트라넷이 있으며, 외국인은 방어벽이 없는 브로드밴드 네트워크를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속도는 “빠르다 (fast)”고 표현했다.
얼마나 빠른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사진, 즉, 이미지 데이터가 아닌 문자, 텍스트 데이터나 핸드폰에서 촬영한 정도의 가벼운 이미지 파일 업로드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10년 전 이란에서 인터넷을 할 때 느리긴 했지만 이메일 정도는 가능했었다는 것을 미루어볼 때 북한의 외부 인터넷 접근성은 생각보다 많이 향상된 듯싶었다.
문제는 인터넷 속도가 아닌 해킹 기술인데, 자유북한방송의 주장에 의하면 “1986년 북한은 김정일의 특별지시로 평양시 형제산구역 제산리에 강력한 해킹 전문가들을 육성하기 위해 미림대학으도 불리는 조선인민군 지휘자동화 대학(제 144군부대)을 설립”했고, “일각에서는 북한의 해킹 전문가들이 정예요원과 보조요원까지 합쳐 3000명으로 내다보고 있지만 실제 해마다 120명씩 배출하는 미림대학을 제외하고도 여러 대학에서 해킹 전문가를 배출하고 있어 그 수를 훨씬 넘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이 누구의 소행인지는 시간이 흘러야 밝혀지겠지만, 해킹 같은 일은 솔직히 “밥 먹고 그 짓만 하는 덕후(일본의 마니아를 일컫는 ‘오타쿠’의 한글버전)수준”이어야 한다. 나라에서 발 벗고 나서서 밥만 먹고 해킹기술만 쌓게 한다면 그다지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