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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서 본 교육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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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스님의 세계 만행 - 원제스님 2013년 04월 374호

앙코르와트는 캄보디아를 대표하는 관광지입니다. 캄보디아 관광수입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동시에 국가 총 수입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앙코르와트가 위치한 씨엠립에서 제가 꼭 가고픈 곳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한국의 로터스월드라는 재단에서 설립한 캄보디아 아동센터였습니다. 이곳은 가정 형편으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59명의 캄보디아 학생들이 공동으로 기숙 생활하는 곳입니다. 마침 아동센터에는 저와 함께 같이 비구계를 수지한 지우스님께서 원장으로 소임을 보시고 계셨던 터라 많은 편의와 도움을 받으며 지낼 수 있었습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난 뒤에 커피를 마시며 지우스님으로부터 아동센터의 역할이나 캄보디아의 교육 현황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캄보디아의 교육 상황은 열악하기 그지없습니다. 깜퐁스푸라는 지역의 시골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학생들이 공부하는 데 필요한 책상이나 책들의 상태도 부실했고 많은 학생들을 수용하기에 학교의 수도 적어서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누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보다 저를 놀라게 한 것은 캄보디아 공립학교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가르치고자하는 열의나 뜻이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선생님들의 급여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한 달에 채 100달러도 되지 않는 월급으로 학생들을 가르쳐봤자 집안의 형편에 도움이 안되는 터라 많은 선생이 정식 교과 수업에는 수업을 제대로 하지 않고 나중에 따로 과외 수업을 통해서 부족한 급여를 채운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의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사라진 촌지가 캄보디아에는 번연하게 남아서 선생님들이 학생이나 부모님들에게 노골적으로 촌지를 요구하는 상황 때문에서라도 캄보디아에서 선생님들의 존경의 대상이 되지 않는 듯 보였습니다. 수십 년 전 한국 사회에서 시골학교의 선생님이 가정방문이라도 할라치면 학생의 부모님들이 씨암탉이라도 잡아서 선생님께 식사를 대접하려고 했던 제 개인의 기억을 되돌리면 캄보디아에서 선생님은 위상은 정반대로 턱없이 낮은 수준입니다.
이러한 실정 때문에 아동센터에서는 초등학교 학생들의 경우 부족한 교육을 별도의 수업을 받아야만 했고 중고등학생의 경우 씨엠립 시내의 사립학교로 다니고 있었습니다. 비싼 수업료를 내야 하는 사립학교지만 공립학교에서 부실하게 해주는 교육을 그나마 제대로 해주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습니다. 아동센터에서는 학생들의 학습열의를 향상시키기 위해 시험 성적이 오른 학생들에게는 개개인의 통장에 몇 달러씩의 장학금도 넣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교를 다니며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의 경우는 대학교까지 진학을 시키고 있었습니다. 물론 모든 학생들이 다 그렇게 학습에 열의가 있는 것은 아니어서 아동센터에서는 대학을 가지 않는 학생들을 위해서 미용기술을 습득케 하는 과정을 거치게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아동센터의 조직적이고 장기적인 활동과 대비해 개인적으로 교육 복지를 실현하려는 친구 하나를 캄퐁스푸에서 만났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파고다 소년이라고 소개한 피세스였습니다. 스물 다섯 살의 그는 어렸을 적부터 절에서 생활하고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러다 한 독일 여성의 도움을 받아서 대학교까지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는 한때 여행가이드로 일을 하다가 지금엔 자신이 자란 참파텝 파고다로 돌아와 절에 있는 사미 스님들과 마을에 사는 어린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면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또한 자신이 초등학교 다닐 때 보던 책 그대로가 헌책으로 변모해 있는 상황을 본 뒤에 학교의 도서관을 새롭게 단장하려는 계획을 실행 중이었습니다. 그가 스님들이나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또 도서관을 새롭게 만들려는 것은 자신이 받은 교육의 혜택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자 하는 뜻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단체의 형태로서 조직적인 활동을 통해서가 아닌, 순수하게 개인의 역량으로 하는 교육 활동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가난한 학생들과 스님들의 교육을 위해서 필요한 물품이나 자금의 조달에 있어서나 교육의 방향과 지속성 등과 같은 짜임새 있는 안목은 부족해보였습니다. 후에 들어보니 캄보디아 내에는 피세스와 같이 상급 교육을 받은 뒤에 이를 회향하는 차원에서 교육의 기회를 받지 못한 캄보디아인들을 위해 스스로 선생을 자처해 무상으로 교육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사실상 캄보디아 내에는 아동센터와 같은 수많은 NGO가 현지인들의 교육과 문화, 복지, 위생 등등의 영역에서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가 프놈펜에서 만난 여러 외국인들 전부가 사실상 NGO 단체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며 지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NGO의 경우 그들의 활동 영역에 따라 캄보디아의 실정을 파악하고 활동 계획을 수립하느라 많은 시간을 할당해 놓았습니다. 그들은 적잖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될지언정 좀더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계획을 수립하고 이행해 가고 있었습니다. 피세스와 같이 교육을 받은 자국민이 그들 스스로의 발원에 따라서 개인적인 교육활동을 펼치는 것이 자못 고무적이기는 했지만 시스템을 기본으로 해서 오랜 기간에 걸쳐 효율적으로 교육의 성과를 이루어가는 캄보디아 아동센터와 같은 NGO들을 보면서 조직 활동의 미덕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말로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합니다. 한국에서의 교육열은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열렬하지만 캄보디아에서의 교육열은 생활의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 듯 보였습니다. 학교를 가야 할 아이들에게 앙코르와트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물건을 팔라고 보내는 부모들이나 아이들을 모아놓고 그들에게 노래와 춤을 가르쳐 외국인들에게 보여주고 교육비 명목으로 기부금을 받아챙기는 몇몇 못난 현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캄보디아의 미래를 위해서는 많은 것들에 있어서 변화와 발전이 이루어져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외부로부터 지원받는 좀 더 많은 공책과 더 좋은 책상이 한시적인 효과를 거둘 수는 있겠지만 그들 스스로의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자각과 이를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앞으로의 세대를 위해 더욱 절실해보였습니다. 한 사람의 피세스가 아닌, 수많은 피세스가 모여서 뜻을 같이 하여 국가 전체적 차원에서 교육의 틀을 변화시키고 교육에 대한 인식을 향상시켜 자력으로 캄보디아 국민들 스스로를 가르치게 되는 때가 진정한 교육의 시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원제圓帝 스님은 2006년 해인사로 출가 후 선원에서 정진하였으며 2011년 해인사 퇴설당에서
은사스님을 모시며 수행하던 중 2012년 가을, 유라시카(Europe, Asia, Africa) 만행을 기획하여 2012년 9월부터 세계 만행 중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