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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용운사 주지 돈조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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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정영 2013년 04월 374호
사천 용운사 주지 돈조스님

돈조스님은 오후 무렵 밭에 나가 계시다. 공부하는 시간 외엔 밭에서 쉼 없이 몸을 움직이신다. 이게 스님 일과의 전부다.
\"일을 하면 무엇이든 얻어지지요. 땅을 바라만 보고 있으면 뭐가 나옵니까?\"
쌀 한 톨을 심어서 자라난 벼 한 포기에선 백여 개의 쌀알이 거둬진다. 그것과 같이 우리의 나쁜 습은 그대로 두면 쌀알이 늘어나듯 이자가 붙어 자꾸만 나쁜 습이 쌓여간다. 그와 마찬가지로 공부를 하면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쌓여간다는 말씀을 이어놓으신다.
\"벼도 하물며 봄에 심어 가을에 추수하는데, 백년을 사는 우리 인간이 하루 공부해서 금방 수확하려는 건 어불성설이지요.\"
백일 기도 하고 일년 기도 해도 왜 이리 안 되냐고 하지 말란 말씀이다. 평생을 공부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스님은 능엄주 외의 다른 책은 손에 잡아본 적이 없다. 10년 훌쩍 넘도록 능엄주 기도만 했다. 살림을 살면서도 하루에 8시간씩 공부한다. 살아 있는 동안은 내내 그럴 것이라 하신다.
스님은 강원을 마치고 해제 결제 없이 3년 동안 통도사 선방에 있었다. 그러곤 해인사 선방에서 한철을 살고 나와 지리산의 토굴에 들어가 3년간 능엄주 기도만 하며 살았다. 일종식一種食을 하며 공부를 했다. 번뇌망상이 끊어진 상태에서는 일종식을 해도 배고픈 줄 몰랐다. 겨울철에 나무를 하고 물을 긷는데도 추운 줄도 모르고 되레 힘이 났다. 자연의 에너지가 움직거렸다. 잠을 자면서도 능엄주가 돌아가고 움직이면서도 능엄주가 돌아갔다. 공부하다가 잠시 눈을 돌려보면 열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 날이 새 있었다. 육신은 이곳에 있어도 마음은 인도에서 부처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러자 은사 스님이신 일타스님께선 죽는 날까지 능엄주만 보라고 하셨다.
\"은사 스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어요. 바보처럼 살 때 네 인생이 바로 사는 것이라고.\"
돈조스님은 주지로 살고 있으면서도 차도 가진 것도 없다. 출타 하는 일도 많지 않다. 그저 손에 능엄주 한권 들고 홀홀히 살아 있는 의식 속에서 몸을 움직일 뿐이다. 죽는 날까지 그러할 것이란다.
도반 스님들에게 함께 공부하자고 해도 아무도 나서는 이 없고 둘 있던 상좌도 다 가버렸다. 차도 없이 걸어 다니니 생활도 의식도 구식이라며 모두 떠났다. 억지로 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먼 곳의 수많은 신도들도 이 사천의 용운사에 찾아들었다. 21년 전에 돈조스님이 토굴처럼 살려고 지었으니, 유서 깊은 절도 유명한 절도 아닌데 사람들이 찾아드는 것이다.
\"내가 능엄주 기도한지 10년이 넘었으니 찾아오는 사람이 꽤 많아요. 능엄주 기도를 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은 놓치지 않고 가르쳐주지요. 능엄주 책도 참 많이 나눠줬어요.\"
그러다보니 하루 108번씩 능엄주 기도하는 신도들도 많다. 스님은 말씀하신다. 억지로 시키는 것은 결국 안 된다고. 그저 배우려는 사람에게 가르쳐주면 되는 것이라고. 그리고 스님의 모습을 보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따라오게 하면 되는 것이라고.
\"난 내 방식대로 살아요. 공부하란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것을 행으로 옮겨야 하는 것이죠. 말만 하며 한 생을 허비하면 되겠어요?\"

스님은 통도사 뒤 마을의 외딴집에 살았다. 그곳에서 태어나 자란 스님이 군대에 있을 때였다. 일타스님께서 군대에 방문하셨는데 그날 밤새 일타스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속가와의 인연에 대해 알게 되었다. 70년대, 큰 절도 먹고살기 어렵던 시절이에 일타스님께서는 돈조스님의 속가에서 밥을 많이 얻어먹었다고 하셨다. 속가 부모님과 오랜 인연이 있었던 것이다. 돈조스님은 제대를 하자마자 집에도 안 가고 해인사에서 일주일쯤 머물기로 했다. 쉬면서 이제부터 사회에 나가 무슨 일을 하며 살지 구상을 할 참이었다. 그런데 며칠 쉬며 어느 날 점심을 먹고 앉아 있자니 일타스님께서 내려오지도 않고 다른 스님께 돈조스님의 머리를 깎이라고 하셨단다. 그런데 딱히 머리를 깎기 싫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스님이 되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머리를 깎고선 일타스님이 살아오신 얘기를 들으며 그렇게 돈조스님의 행자생활은 시작됐다.
강원을 마치고 선방에서 나와 21년 전 이곳으로 온 것은, 은사 스님의 뜻이었다. 공부하기에 좋은 터이니 평생 여기에서 공부하라고 하셨다. 그렇게 해서 스님은 토굴을 오가며 이곳에서 끝없이 공부를 해왔다. 그러다보니 불사도 자연스레 이루어졌다. 차에서 만난 한 할머니가 몇 억을 시주해 주기도 하고 통도사에서 기도하며 만난 할머니가 늘 불전함에 돈을 넣고 가기도 하고 용운사 뒤의 천 평이 넘는 넓은 절터를 시주한 신도도 있다.
\"신도 걱정이나 살아갈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찰나의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가는 사람 붙잡아서 절에 오라고 하면 오나요.\"
성속을 막론하고 남녀를 막론하고 노소를 막론하고 하루 24시간을 얼마나 충실히 사느냐에 따라 그 사람을 얘기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스님이 승복을 입고 공부도 하지 않으면 세속의 글 모르는 농부보다도 못한 것이라 하신다. 모든 건 자업자득인 것이란다.
\"난 신도들을 도반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보다 공부를 더 많이 하면 스승이지요. 이 세상에 스승 아닌 것이 없다 했어요.\"
돈조스님은 내내 말씀하신다. 공부하라고. 지금에 만족하지 말라고. 내 자신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하고 내 자신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한 시간 공부한 사람과 두 시간 공부한 사람은 다르다고. 절 한번 한 사람과 삼천 배 한 사람은 다르다고. 기도는 앉아서만 하는 것이 아니니 걸으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자면서도 해야 한다고. 우선 어렵다, 안 된다는 고정관념부터 깨뜨리라 하신다.
\"씨앗을 하나를 심으면 그만큼 얻지요. 두 개를 심으면 그만큼 얻고. 아무 것도 안 심으면 못 얻고.\"

돈조스님은 군대에서 3년간 군법당에 있던 터라 나와서 포교를 잘해봐야지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게 마음 먹은 대로 되는 게 아니었다. 스님은 포교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불심을 심어주는 것도 좋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본보기가 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해인사의 그 많은 대중 중에서 한 사람이라도 도인이 나오면 다 살릴 수 있어요. 성철스님이 그러셨어요. 해인사의 기왓장을 팔더라도 스님들 공부시키겠다고.”
공부는 누가 하라고 억지로 시켜서 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원해 혼자서 해나가야 하는 것이니 결단력이 무너지면 그건 죽은 인생일 뿐이라 하신다. 그렇기에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것이 공부다. 허나 우린 늘 망각하면서 산다. 이 육신은 내 것이 아닌데 내 것 인냥 착각하고 천년만년 살 것처럼 착각한다. 그러니 대부분 지금 바로 행동하지 않는다.
“이번 생엔 좋은 집에서 좋은 차 타며 한 생을 보내고 다음 생에 공부해서 부처가 되겠다고 하면 안 되지요. 기회가 주어질 때 공부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백년이 지나도 할 수 없어요.”
지금 당장 최선을 다해서 공부하면 다음 생에도 할 수 있단다. 돈조스님은 이번 생에 부처가 되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저 오늘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오늘 최선을 다하면 내일에 대한 걱정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이들에게나 미래가 불안한 법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공부하며 마지막엔 산에 들어가 회향하고 싶단다. 그렇게 하다가 다음 생에도 또 그 다음 생에도 지금처럼 공부할 것이란다.
스님은 늘 생각하신다. 언어가 안 통하는 나라에 가서 한 생을 살아봤으면 좋겠다고. 거치적거릴 것 없는 곳에서 스님이 원하는 대로 공부만 하며 살고 싶기 때문이다. 다음 생에 또 승려로 태어난다면 스님은 꼭 언어가 안 통하는 곳에서 죽는 날까지 맘껏 공부만 하고 싶단다. 이것이야말로 스님이 늘 생각하는 삶이란다.
스님께 여쭙는다. 왜 상좌 스님들을 붙잡아 바른 길을 일러주지 않으셨습니까?
“담을 그릇이 없으면 무엇을 주어도 담기질 않아요.”
절에서 내려오며 봄꽃들을 만난다. 매화는 만개했다. 목련은 뾰족하다. 별꽃은 촘촘하다. 절을 찾아 올라가면서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다. 보고도 보지 못 했으니 내 소중한 이번 생에서 그 때는 죽은 시간이다. 난 대체 산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