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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나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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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 해인총림 방장 법전 스님 2013년 04월 374호
한평생 내가 주장한 깨달음에 대한 수행론은 돈오돈수였고 동정일여, 몽중일여, 숙면일여의 세 단계에 이르도록 공부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또한 결제대중들에게 계율을 철저히 지킬 것을 당부했고 이에 조금이라도 비켜가는 날엔 심하게 나무랐다.
눈이 한없이 내려 선방 마루 밑까지 차오른 동안거 결제 중의 어느 날이었다. 해우소로 가는 길만 내놓고 며칠 동안 정진하던 대중은 눈이 그치자, 아침부터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수도암에서부터 마을 입구인 수도리까지 눈을 치우고 난 대중은 속이 출출하자 마을 분식집에서 라면 한 그릇씩을 시켜 먹은 모양이다. 점심 공양을 하는 자리에 앉으니 탁한 냄새가 진동했다. 내가 대중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이게 무슨 냄새냐?”
대중은 숨을 죽였다.
“누가 라면 먹었나?”
20여 명의 선방 수좌들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옛 어른 말씀에, 눈이 내릴 때 세 종류의 수행자가 있다고 했다. 가장 우수한 사람은 선방에서 좌선을 하고 중간쯤 되는 사람은 먹을 갈아 붓을 들고 시를 지으며, 가장 못난 사람은 화롯가에 둘러앉아 먹고 떠든다고 했다. 이놈들아! 깊은 산중에 수도한다고 들어와서 가장 못난 사람이 되어서야 되겠느냐? 청정한 모습을 보여야 할 수행자들이 그런 탁한 음식을 먹고 역겨운 냄새를 피워서야 되겠느냐 말이다!”
그날 대중들에게 호통을 친 것은 라면 하나 먹은 것이 큰 문제라기보다는 한 귀퉁이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전체가 무너진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한 경책이었다. 수행자가 계율을 생명처럼 여겨 지키지 않으면 정진도 무너지게 된다.
“⟪장자⟫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두 사람이 소를 먹이러 갔다. 한 사람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둑을 두다가, 또 한 한 사람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보다가 소를 놓쳤다. 사람들은 누구의 허물이 덜한가를 놓고 분별하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는 똑같다. 공부하는 사람이 화두를 놓치면 어떤 일을 해도 용납되지 않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어쨌든 화두를 놓치지 마라.”
젊어서의 내 성격은 급하고 단순했다. 특히 수행에서 물러나는 기색이 보이거나 계율에 어긋나는 일 앞에선 그 자리에서 감정을 드러냈다. 한번은 결제 중에 한 수좌가 종무소에 있는 전화를 쓰고 있는 것을 보고는 망치로 전화통을 부수고 말았다.
“공부하는 놈이 뭐가 궁금해서 전화통을 붙들고 있단 말이냐?”
수도암 위의 정각에서 홀로 정진하고 있는 수좌에게는 이렇게 일렀다.
“설령, 수도암 후원에 불이 나도 내려오지 마라!”
선방에서 공부하고 있던 젊은 수좌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남 놀 때 놀고, 남 잘 때 자고, 먹을 것 다 찾아 먹으면서도 공부가 된다면 도인이 뭐 그리 귀하겠는가?”
부처조차 뛰어넘어야 하는 도의 길이 그리 쉬운 길이라면, 저 수많은 조사들이 무엇 때문에 몇 생을 두고 고행하면서 도의 길에 목숨을 바쳤겠는가.
그 시절, 수좌들이 공부에 대한 이런저런 질문을 하면 한마디로 일축했다.
“화두나 들어.”


불기 2557(2013)년 ≪누구 없는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