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상원사…
‘왜 내가 이제야 이곳에 왔을까’하는 안타까움 밖에 나오질 않았다. 높고, 깊고, 험한 산길… 올라가는 날부터 등짐을 지고 올라갔던 힘든 길이었지만, 3일간의 상원사는 내 가슴을 흔들어 놓고 머리를 깨는 몇 안 되는 훌륭한 도량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점에서 그렇게 감응됐는지 묻는다면 솔직히 할 말이 없다. 그냥 한 번 가보면 안다는 것 밖에.) 그리고 주지스님(도반의 은사스님)의 말씀은 현재 나의 안일함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현실에 안주하는 순간 중노릇은 끝이다.”
“정말 간절하게 정진해봐. 밤낮을 가리지 말고…”
“니가 한만큼 답을 얻을 것이다.”
“답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다.”
“기도를 해도 좋고, 참선을 해도 좋고, 절을 해도 된다. 무엇을 하든 정말 간절하게 나를 들여다보는 공부를 해라….”
“그리고 얻으려고 하지마라.”
출가자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말씀이다. 하지만 상원사스님께서 하신 말씀은 진정 살아있었다. 적어도 그 순간 나에게는...
3일 동안 나는 바보가 되어 있었다. (아니 치악산을 내려온 이후에도 나는 바보가 되어 버린 것 같다.) 나는 그 동안 무엇을 했던가, 그리고 얼마나 간절하게 애를 썼던가, 출가했답시고 공부한답시고 폼만 잡고 죄업만 더 짖지는 않았을까... 나 자신에 대해 총체적으로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스님께서 처음 보는 나에게 그렇게 간절하게, 안타까운 듯 말씀하시면서도, ‘수행이 쉽지는 않지만 네놈은 해낼 수 있을 것이다.’라는 듯, 나에게 힘을 넣어 주시듯이 절절하게 말씀하셨다.
“공부하라.” ‘공부하라’는 말씀만큼 뜨거운 가르침이 없는 것 같다.
상원사에서 달구어진 가슴을 금어지고 서울을 갔다. 얼마 전 군법사로 임관한 도반스님을 만나기로 했다. 군법사를 몰랐다. 그렇게 생활하는 지... 이렇게 표현하면 그 도반 스님이 싫어할지 모르지만, 그 날 난 놀라움을 숨기고, 안타까움을 숨기고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도반스님을 대했다. 처소라고 해도 온기도 없는 추운 방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곳의 정말 열악한 환경에서, 처소 바로 앞에는 그럴듯한 교회를 마주하고서도 포교를 하고자 하는 열정으로 가득 찬, 아니 포교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방황하고 있는 젊은 청년들을 위해 뭐든 하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한 수행자를 보았다. 결코 현실에 안주하지 않을 그런 수행자를... 그리고 한국불교의 밝은 미래를 보았다.
그리고 그런 스님이 내 도반이다.
도반스님을 뒤로 하고 해인사로 오는 길은 나의 승가생활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길이 되었다. 옛 어른 스님들의 이름으로 큰 해인사, 나는 그 해인사라는 거대한 지붕아래 초심도, 간절함도, 열정도 모두 희미해 져 있는 것은 아닌지….
11월 28일, 2012년 임진년 동안거, 역시 다르지 않으면서도 낯선 겨울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낯설게 시작한 겨울, 낯설게 마무리 하고 싶다. 늘 아쉬움이 남았던 예전의 안거와 같지 않은….
p.s. 위 군법사스님의 군포교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작은 정성으로 젊은 청년들의 가슴에 심어준 불심(佛心)은 한국불교의 미래가 될 것이고, 그 청년들은 대한민국의 희망이 될 것입니다.
신한 371-04-674295 이석찬 (이 계좌는 위 군법사스님의 계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