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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해인사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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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대 - 종화┃해인사 승가대학 3학년 2013년 01월 371호

해인사에서 맞는 다섯 번째 동안거다. 그런데 해인사의 계절은 매년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이번 겨울도 역시 다르지 않으면서도 낯선 계절이다.
지난 동안거 준비 방학 때도 변함없이 방황이라 해야 될지 만행이라 해야 될지 모를 길을 나섰다. 이 곳 저 곳 볼일도 보고 기웃거리기도 하며 도반스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치악산 상원사를 찾았다. 지금까지 강원도를 몇 차례나 가봤지만 치악산을 한 번 가보지 못했었다. 그것도 시절인연이 닿아야 하는지 강원 1학년 때부터 가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난 방학 때야 비로소 말빚을 갚게 되었다.

그런데 상원사…
‘왜 내가 이제야 이곳에 왔을까’하는 안타까움 밖에 나오질 않았다. 높고, 깊고, 험한 산길… 올라가는 날부터 등짐을 지고 올라갔던 힘든 길이었지만, 3일간의 상원사는 내 가슴을 흔들어 놓고 머리를 깨는 몇 안 되는 훌륭한 도량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점에서 그렇게 감응됐는지 묻는다면 솔직히 할 말이 없다. 그냥 한 번 가보면 안다는 것 밖에.) 그리고 주지스님(도반의 은사스님)의 말씀은 현재 나의 안일함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현실에 안주하는 순간 중노릇은 끝이다.”
“정말 간절하게 정진해봐. 밤낮을 가리지 말고…”
“니가 한만큼 답을 얻을 것이다.”
“답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다.”
“기도를 해도 좋고, 참선을 해도 좋고, 절을 해도 된다. 무엇을 하든 정말 간절하게 나를 들여다보는 공부를 해라….”
“그리고 얻으려고 하지마라.”
출가자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말씀이다. 하지만 상원사스님께서 하신 말씀은 진정 살아있었다. 적어도 그 순간 나에게는...
3일 동안 나는 바보가 되어 있었다. (아니 치악산을 내려온 이후에도 나는 바보가 되어 버린 것 같다.) 나는 그 동안 무엇을 했던가, 그리고 얼마나 간절하게 애를 썼던가, 출가했답시고 공부한답시고 폼만 잡고 죄업만 더 짖지는 않았을까... 나 자신에 대해 총체적으로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스님께서 처음 보는 나에게 그렇게 간절하게, 안타까운 듯 말씀하시면서도, ‘수행이 쉽지는 않지만 네놈은 해낼 수 있을 것이다.’라는 듯, 나에게 힘을 넣어 주시듯이 절절하게 말씀하셨다.
“공부하라.” ‘공부하라’는 말씀만큼 뜨거운 가르침이 없는 것 같다.

상원사에서 달구어진 가슴을 금어지고 서울을 갔다. 얼마 전 군법사로 임관한 도반스님을 만나기로 했다. 군법사를 몰랐다. 그렇게 생활하는 지... 이렇게 표현하면 그 도반 스님이 싫어할지 모르지만, 그 날 난 놀라움을 숨기고, 안타까움을 숨기고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도반스님을 대했다. 처소라고 해도 온기도 없는 추운 방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곳의 정말 열악한 환경에서, 처소 바로 앞에는 그럴듯한 교회를 마주하고서도 포교를 하고자 하는 열정으로 가득 찬, 아니 포교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방황하고 있는 젊은 청년들을 위해 뭐든 하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한 수행자를 보았다. 결코 현실에 안주하지 않을 그런 수행자를... 그리고 한국불교의 밝은 미래를 보았다.
그리고 그런 스님이 내 도반이다.

도반스님을 뒤로 하고 해인사로 오는 길은 나의 승가생활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길이 되었다. 옛 어른 스님들의 이름으로 큰 해인사, 나는 그 해인사라는 거대한 지붕아래 초심도, 간절함도, 열정도 모두 희미해 져 있는 것은 아닌지….
11월 28일, 2012년 임진년 동안거, 역시 다르지 않으면서도 낯선 겨울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낯설게 시작한 겨울, 낯설게 마무리 하고 싶다. 늘 아쉬움이 남았던 예전의 안거와 같지 않은….

p.s. 위 군법사스님의 군포교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작은 정성으로 젊은 청년들의 가슴에 심어준 불심(佛心)은 한국불교의 미래가 될 것이고, 그 청년들은 대한민국의 희망이 될 것입니다.

신한 371-04-674295 이석찬 (이 계좌는 위 군법사스님의 계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