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끝은 고요했지만 1월의 시작은 마음을 들썩거리게 합니다.
전국에 폭설주의보가 내렸다는 기상정보를 들으며 짐을 꾸렸습니다. 대구 서부정류장을 출발한 해인사행버스는 정류장마다 사람을 내리고 태우느라 꾸물거렸지만 ‘노 프라 블럼’이었지요. 아무려면 어떤가요? 눈 내린 가야산에 저를 데려다 줄 것이 분명하니 말입니다. 그동안 자동차로 휭~하니 오르던 홍류동 계곡을 찬찬히 바라보니 새삼스러웠습니다.
아름다운 소리길은 눈 쌓여 적막하고 겨울 숲은 해탈한 수행자처럼 발자국 하나 없는 옥양목 같은 눈밭을 펼쳐 보였습니다.
지금이 동지섣달이니 산의 길도 마음의 길도 얼어붙기 쉬운 때입니다만 무엇이든 할 자유, 그리고 아무것도 안 할 자유를 가진 저는 말랑말랑하고 가볍습니다.
내 서정의 그곳 해인사
소설가 은희경은 최근작 <태연한 인생>에서 얼굴 가득 꽃망울이 터지듯 환하게 웃음 짓던 한 여인과 매혹적인 사랑을 시작한 남자를 두고 그들이 통과한 사랑의 서정시대를 이야기했습니다.
지난해 여름 소설 읽기를 끝내면서 딱히 사랑의 서정시대랄 수는 없어도 누구에게나 삶의 서정시대는 있겠다 싶었지요.
생애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빛나는 서정시대가 있기는 하지만 소설에서처럼 대부분 짧지요. 외려 어김없이 뒤따르는 고통과 상실의 시대를 넘어서야하기에 우리에게는 서정의 장소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장이지시인은 <서정의 장소>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것은 수구초심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껑더리된 늙은 여우가
짓무른 눈으로 가시밭길을 더듬어
난 곳을 찾아가는 것은
향수 그 이상의 마음입니다
............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몰라서
천지간에 살아보기로 한
태아의 기억으로 가서
이제 살아보았으니까
비록 모두의 답은 아니고 ‘나’만의 이야기겠지만
그 대답을 하러 가기 위해
여우는 발이 부르트게 걸었을 것입니다
.........
수구초심首丘初心은 여우가 죽을 때 제가 살던 굴이 있는 언덕 쪽으로 머리를 둔다는 뜻으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이르는 말이지요. 여기서는 고향이라 말하지만 삶에 있어 위로가 되는 서정의 장소가 어디 꼭 고향만일까요.
세상살이에 지쳐 무릎이 꺾이듯 주저앉고 싶을 때 찾아가는 자리, 그곳이 우리들 가슴에 품고 사는 서정의 장소일 수 있겠습니다.
발목이 시리도록 열심히 살다가 온 마음 내려놓고 추운 날 목도리같이 푸근히 감기는 어른들의 눈길이 아직 남아 있는 자리가 서정의 장소겠지요.
오랜 전통의 나이테를 품고 있는 해인사는 제게 치유의 공간이며 에너지의 보고입니다. 젊은 시절 저는 기운이 떨어지면 그때마다 해인사로 달려가곤 했답니다. 저녁예불을 알리는 범종소리는 제 가슴도 함께 울렸습니다.
해질 녘 산골짜기를 지나 도량을 휘감는 그 소리와 계향! 정향! 혜향!....으로 시작하는 학인스님들의 예불문은 어찌 그리 에너제틱(energetic)하던지요. 그 울림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지고 세상 좋다는 것 다 누리고 살아도 우리는 결국 저 늙은 여우처럼 맨몸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짓무른 눈으로 가시밭길을 헤쳐 첫 자리로 돌아가는 여우의 마음을 헤아리니 가슴이 뭉클뭉클해집니다. 당신도 제 맘 같다면 언제든 찾아가 내려놓을 서정의 장소를 마련해보시지요. 그곳이 저처럼 해인사라도 좋겠습니다.
오늘 해인사에 머무는 당신은 특별합니다
해인사를 걷는다는 것은 1200여년의 오랜 시간과 역사, 수많은 선지식과 그 뒤를 잇는 수행자의 도량에 발걸음을 들이는 것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지요.
해인사는 화엄경(대방광불화엄경)에 나오는 ‘해인삼매’구절에서 비롯되었음을 다시 한 번 새깁니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한없이 깊고 넓은 큰 바다에 비유해, 거친 파도, 곧 중생의 번뇌 망상이 비로소 멈출 때 우주의 갖가지 참된 모습이 바다에 도장이 찍히듯 그대로 물속에(海) 비치는(印)경지를 말한 것이라 했습니다.
당신이 불자로서의 신심이 아닌 지친 일상을 피해 휴식을 목적으로 해인사를 찾는다 해도 그것은 탁월한 선택을 한 셈입니다. 오래된 친구처럼 자주 만날 수 없어도 쉽게 익숙해지는 친숙한 공간이거든요.
저는 불자, 비 불자 가리지 않고 해인사와 인연 맺어주기를 좋아합니다. 제 아들이 초등학교 다닐 적에는 10여명의 아들친구와 그 엄마들이 함께 갔었는데 유월의 푸르른 가야산과 장경판전에서의 특별함을 지금도 기억하더군요.
또 한사람, 그녀는 카톨릭교도였습니다만 어스름 무렵 성철스님사리탑을 합장하고 돌면서 다음날 새벽예불 후에 사라탑에서의 아침을 맞이하고 싶다하여 그리한 적도 있지요. 이후 그녀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제게 해인사로의 여행을 조릅니다. 불전함에 보시하는 것은 이제 익숙해졌고 마애불참배까지 했답니다.
어디 이 뿐이겠습니까? 저는 큰 목소리로 이야기 합니다. 해인사는 해인사만의 해인사가 아니라 전 불자들의 해인사이며 온 국민의 해인사라구요.
그러니 해인사에서의 머무름은 단순히 잘 쉬었다가 아닌 또 다른 어떤 기운을 느꼈으면 하는 것이 제 마음인데 지나쳤나요.
산사에 눈이 푹푹 내립니다.
이 넉넉한 도량에 머무를 수 있는 당신은, 우리는, 저는 이미 특별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