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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와 함께 한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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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스님의 세계 만행 - 원제스님 2013년 01월 371호

인연이라는 말을 이따금씩 떠올린다. 불청객처럼 느닷없이 찾아온 소나기에 된통으로 비를 맞고 난 뒤 이래저래 착잡한 기분이었다가 홀연히 눈앞으로 거대한 쌍무지개를 조우한 적이 있다. 그것은 어느 마을의입구와 호수의 가장자리를 기둥 삼아 잿빛 허공을 광대하게 감싸며 눈앞으로 펼쳐진 쌍무지개였다. 그렇게 압도적인 마법과도 같은 장관을 목도한 뒤에 돌연한 소나기 때문에 가라앉았던 마음이 어느 순간 환희감으로 뒤바뀐 것이었다.
과학이란 틀로 보면 무지개는 공중의 수증기와 빛의 반사와 굴절이라는 조건이 조합되어 일어난 하나의 자연 현상이다. 하지만 여간해선 감동을 받지 않는 내 마음을 환하게 움직인 것을 보면 무지개는 단순히 수증기와 빛이라는 조건 관계의 인연보다는 좀더 오묘하고 신기한 인연으로만 느껴진다. 이런 자연 현상도 인연의 일부려니와 절집에서 비근하게 쓰이는 시절인연이라는 말은 정세나 상황에 따른 인연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친숙하게 많이 쓰이는 인연의 경우는 바로 사람이 아니겠는가. 도대체 무슨 인연이길래 그를 만난 것일까, 하고 나올 리 없는 답이란 걸 알면서도 계속 궁금했던 이가 바로 피에르다.
피에르는 미국 아리조나에 혼자 사는 환갑이 넘은 노장이다. 시월 말이었음에도 패딩을 입지 않으면 온 몸이 싸늘해지는 윈난의 북부 도시 샹그릴라. 그곳의 한국인 숙소인 자희랑 호스텔의 난로에서 불을 쬐다가 피에르를 만났다. 해외 여행이 일반화된 요즘에 이역만리 떨어진 먼 타지에서 아시아의 한 도시를 찾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쳐도, 중국인이 아닌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소에 어떻게 찾아왔는지 아직도 모를 일이었다. 같이 난로불을 쬐며 앉아 있으려니 그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본래 일면식이 없는 사람과 그리 오래 대화를 하는 편은 아니지만 피에르는 내가 한국에서 온 스님인 것을 알고 난 뒤에 적극적으로 나의 만행에 대해 그리고 나에 대해서 알고 싶어했다. 이야기를 세 시간이나 이어갈 정도로 그와의 대화는 참 흥미로웠고 나 또한 그에 대한 관심을 키워가게 되었다.
이번 만행에서의 주요 목적 중의 하나는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불교도, 혹은 불교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이 생각하는 불교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그들의 삶을 알아보고 또 나의 경험을 들려주면서 같이 삶을 공유하자는 게 아니었던가. 이렇게 타지에
서 불교에 관심있는 이국인들을 만나는 것은 나에게도 고무적이고 인상적인 일이었다. 그와의 오랜 대화를 이어가며 알게 된 바 우리 사이에 공통점도 더러 있었다. 기본적으로 같은 불교도였고 선수행을 하고 있으며 또한 카우치서핑 멤버였고 둘 다 커피를 무척이
나 좋아했다. 피에르가 세 번 한 결혼이 유독 심한 차이점이었다고나 할까.
피에르와 함께 샹그릴라에 위치한 윈난성 최대의 티베트 절인 송찬린스에 들렀다. 어느 지역을 들르던 내가 제일 먼저 찾아가는 곳은 바로 절이다. 그 지방으로의 만행을 부처님께 고하는 가장 적당한 장소가 당연히 절이기도 하려니와 백팔배를 좀더 형식을 갖추
어서 수행할 수 있는 성소가 절이기 때문이었다. 송찬린스에 불자인 피에르와 함께 가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나는 스님들에게 차 한잔이라도 받아볼까 하는 기대로
스님들이 모인 장소로 약간의 실례를 무릅쓰고 들어갔다. 그런데그곳은 공양간이었고 때마침 스님들은 사시 공양을 하던 참이었다. 중국말이나 티베트말을 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스님들에게 그냥 간단한 단어와 사진으로만 나를 소개했다. 스님들은 피에
르와 나에게 따뜻한 수유차와 단출한 식사로 대접해 주었다. 송찬린스 참배를 마친 뒤에 우리는 숙소 근처로 돌아와 흰닭이 산다고 하여 이름지어진 백계사도 들러서 같이 참배를 했다.
피에르와 함께 한 가장 큰 일정은 바로 메리설산 순례였다. 메리설산은 티베트 불교의 4대 성산 중의 하
나이고 또한 인간의 접근을 허용치 않은 산이기도 했다. 중국과 일본 원정대가 이 산의 주봉을 공략하려 등반에 나섰지만 눈사태로 모두가 몰사한 뒤부터는 중국 정부에서 입산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말을 여러 번들은 바 있었다. 메리설산에는 유명한 성소가 세 곳이
있는데 빙호氷湖와 신폭神瀑 그리고 신호神湖였다. 이곳에 가려면 그 전초기지 역할을 하는 위뻥마을에 가야만 했다. 시땅마을에서 위뻥마을까지는 상당부분이 오르막 산길로 대략 5시간 걸리는 거리였다. 노장인 탓에 오랜 시간 걷기를 힘겨워했던 피에르를 위해 나는 본래 잘 쉬지 않는 산행 습관을 제쳐두고 그와 함께 걸음을 맞췄다.
‘하늘 위에 천당이 있다면 하늘 아래에는 위뻥마을이 있다’는 돌에 새겨진 글귀가 자연스레 수긍이 될 정도로 위뻥마을은 평화롭고 목가적인 마을이었다. 세상과 고립된 지상 낙원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이 될 정도로 참 인상적이었다. 따뜻한 빛을 스며내는 오후의 햇살이나 겨울이 오기 전에 한껏 농도를 높이는 가을 단풍 덕분에 마을을 둘러싼 산세나 성소를 찾아가는 길들이 한결같이 아름다웠다. 위뻥마을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다시 샹그릴라로 돌아가는 길에 들른 니농마을은 하산길이라 수월하기도 했지만 위뻥마을과는 달리 마른 먼지가 바람에 거세게 휘날리는 황량한 대협곡으로 이어진 길이어서 감탄을 자아냈다. 지난 카일라스 순례가 설산을 오르며 추위와 고통에 육체적으로 힘겨웠던 과정이었음에 반해 메리설산 순례는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순탄한
여행길과 같았다.
그렇게 열흘을 넘도록 같이 머물면서 알게 된 피에르는 친절하고 부드러우며 위트가 넘치는 노장이었
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동양의 선수행에 부쩍 관심을 가지게 되어 남은 생을 여행과 수행을 하면서 지낼 계획들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사는 미국에 활성화된 수행 센터에서 명상의 체계가 제대로 갖추어진 것인지를 모르겠다며 주저하고 있었다. 수행은 선지식의 말씀에 의지해 지속적인 지도를 받으며 수행해 가는 것이 중요하고 다른 도반들과 함께 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앞으로 2년 뒤에 미국대륙을 횡단하는 일정에 아리조나의 사막 가운데 있는 그의
집에 들르겠다는 약속이 샹그릴라에서의 우리 인연을 또다시 이어줄 끈이 될 것이란 기대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