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말의 돈황(敦煌)은 추웠다. 아침 저녁으로는 날이 제법 차가워서 두툼한 점퍼를 입었는데도 한낮이 될 때까지 추위가 가시지않을 정도였다. 오아시스의 미루나무들은 노란 단풍으로 금빛의 향연인데, 낮이 되면 햇볕은 걸릴 것도 없는 파란 하늘로부터 직각으로 내려쬐는 것이 마치 봄날 같았다. 전에 두 차례 와본 봄과 여름, 돈황의 계절과는 아주 달라서 가을의 이곳은 다분히 사람의 마음을 고요한 곳으로 내려앉게 하는 황량함이 있다.
항해술의 발달과 함께 사막 교역로는 역할을 바닷길에 내주고 오랜 세월 모래바람 속에 묻혀있었다. 이후 실크로드가 세인世人의 관심사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말부터 시작된 서양 열강들의 고고학 탐험 열풍 덕이었다. 이들은 인도 북부지역(현 파키스탄)에서 시작하여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는 험한 길에서 보석같은 불교유적지들을 찾아내었다(이들의 공과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만 여기서는 생략한다).
실크로드라고 불리는 이 길 위에는 오아시스를 따라가며 불교유적 특히 석굴사원들이 많다. 옛날 실크와 도자기가 금金이었던 시절 캬라반들이 오아시스에 정차할 때마다 이들 사원에 들려 여행의 안녕과 사업의 발전과 같은 것을 기원하였을 터였다. 그 석굴사원이 사막의 보석일 수 있는 이유는 석굴 내부에 펼쳐진 화려하고 장엄한 벽화와 불상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돈황 막고굴(燉煌莫古屈)은 그 중에서도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약 366년부터 시작하여 후로 근 천년동안 막고굴의 여러 사원들이 조성되었으니 그 엄청난 수의 사원은 차치하고라도 천년 동안의 불교미술 다양한 변화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일이다.
계절 때문일까 사막길 여러 불교석굴사원에 대한 감상이 이번에는 달랐다. 전에는 실크로드를 오갔던 캬라반들의 기원처로서의 역할에 주목하였었다면 오히려 이번엔 남다른 적적함과 고요함으로 말미암아 수행에 아주 적합한 곳이라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이 지역 출신의 많은 스님들이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초기 경전의 번역을 맡아서 하였고, 특별히 관불觀佛과 관련된 경전이 이곳에서 번역, 수집되었다는 것을 근거로 주변지역의 관불수행의 유행을 이야기 하기도 한다. 그에 따라 이 지역 석굴사원은 수행처로서의 기능을 더 많이 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관불삼매 수행에 매진하는 스님들에 대하여 무척 존경심을 표현해야했다. 그래서 그런지 막고굴을 포함하여 돈황지역 석굴사원에는 승려수행상이 많이 눈에 띄인다. 특히 북위北魏~ 북주北周시대 굴이 그렇다. 539년에 조성된 돈황 285굴에는 정면 중앙에 미륵불을 본존으로 좌우에 승려수행상이 있다. 감실을 판 내부에 모신 수행자의 머리 위에서는 비천이 날고, 수행자는 머리까지 덮는 두건을 가사로 두르고 문양이 있는 깔개가 등 뒤에 삼각형으로 그려져 있다. 이 깔개는 미륵보살의 상징과 같은 것이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미륵보살의 수행자적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존 우측에 고요하고 담담한 얼굴로 삼매에 들어 있는 승려상이 온전하게 남아 있다. 뒤쪽에 있는 두 명의 스님들은 각각 한 손에 꽃을 들고 있는데 이 꽃들은 마치 시든 듯 그려있어 세상의 모든 것은 무상無常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이자 장치이다. 이 때의 수행은 부처님의 32상을 관하며, 또한 부처님의 마음을 관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부처님의 마음은 붉은 연꽃으로 화하여 온 세상을 환히 밝히는 것이니 어두운 동굴의 더없는 광명이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