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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거에 든 겨울의 숲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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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해인 편집실 2012년 12월 370호

우리 종단은 올 한 해 유독 힘겨웠다. 큰 홍역을 앓았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터진 백양사 도박사건, 뒤이어 꼬리를 물고 제기된 종단 고위소임자의 룸살롱 출입이라는 부적절한 행위가 세간의 입방아에 올랐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들끓었고, ‘쇄신’을 내건 위원회가 만들어져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인도에서의 불교 쇠망은 허망했다. 울울했던 앞산의 숲이 나목 집합장 같은 풍경으로 바뀌는 것과 같은 것일까. 그것도 하룻밤의 비바람에 그럴 수 있는 것인가. 현실은 하룻밤 사이의 일이었다.

불교사에서는 불교가 인도에서 모습을 감춘 것은 12세기의 일이다. 정확히 1203년에 델리 왕조의 아이박이 비끄라마쉴라와 날란다 사원을 소멸시키면서 실질적으로 인도불교는 종언을 고한다고 보고 있다. 8세기 초부터 시작된 이슬람의 무자비한 살상과 파괴가 적지 않은 원인이었다. 카스트 제도를 부정한 불교의 입장이 힌두교에 기반한 인도 제국의 통치자들을 불편하게 했던 정치적인 이유도 작용했다. 그럼에도 거대한 물줄기를 형성했던 한 종교가 스러진 것은 외적인 원인보다 외압에 대응하지 못한 내적인 원인에 무게를 더 두어야 한다. 세상의 모든 길은 험난하기 때문이다. 즉, “불교가 인도사회에서 더 이상 사회적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조계종교육원 불학연구소 편, 세계불교사, 66~71쪽, 불광출판사]

왜 인도에서 불교의 마지막 모습이 떠오르는 것일까. 최근의 한 여론조사 결과가 시사하는 의미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가 지난달 11일부터 18일까지 전국 16개 시도(광역시급 이상)에서 만19세 이상 국민 1천명을 대상으로 \'한국의 사회·정치 및 종교에 관한 대국민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종교계의 부정선거 감시활동, 공약검증ㆍ정책제안 등 종교계의 정치 참여에 대해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여론조사라는 것이 시시때때로 변하는 시류의 한 지점인지라 크게 마음 쓸 거 없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반복되게 보여주는 여론조사 결과라는 점에서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국민의 인식이 아니라, 굳어진 ‘불교 보기’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종교계의 부정선거 감시활동은 60.2%가 부정적이라고 답했으며, 공약검증과 정책제안에 대해서는 66.3%가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긍정적 태도를 보인 응답자는 24.2%로 약3배 정도의 차이가 났다. 2011년 종교정당의 창당에 대한 질문에 51.5%가 부정적이었던 것과 같이 종교계의 정치 참여방식에 모두 부정적인 인식이 지배적이다.

이번 여론조사를 분석한 박수호 덕성여대 사회학과 겸임교수는 “이러한 결과는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어야 한다는 일반적인 인식에 근거해 종교의 정치참여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되어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종교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그 것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부정적으로 인식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btnnews, \'한국인 60% 종교계 정치 참여에 부정적\', 2012. 11. 16.]

이 같은 조사결과의 의미를 매우 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면, 많은 국민들이 종교의 사회적 역할 중 일부를 ‘유보’시킨 것이다. 이는 심각한 상황이다. 더욱이 이런 상황을 종교 내에서 만들었음에도 치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불교만 보더라도, 백양사 도박사건을 미적거리며 처리하더니 수행풍토를 새롭게 만드는 일은 여전히 과제로 남겨둔 채 공권정지 3년의 징계로 끝을 맺었다. 시작은 요란했으나, 끝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모양이다. 개신교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 선거 당시 금품 논란과 교회 세습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불교나 개신교나 이런 문제들이 일회성 현상이 아니라 고질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반종교적 행위가 교단 내에서 구조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옳고 그름을 가려 사건을 처리하지 않고, 내편 네 편의 논리가 문제를 푸는 데 작용하고 있으니 백년하청일 수밖에 없다. 큰 자정운동이 일어나지 않고는 개선되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는데, 개신교 내 개혁그룹에서 한국기독교총연합의 해체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이유인 것이다.

종교의 사회적 역할 유보는 사회적 자원의 손실이며, 종교의 신뢰도가 곤두박질치고 있다는 의미이다. 종교는 우리 사회에서 고유한 신앙활동 이외에도 종교의 가르침에 바탕해 정치사회경제문화 전반에 걸친 간섭을 통해 지향점을 제공하고 때로는 수정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하여 사회공동체의 건강성을 유지케 한다. 이는 종교만이 갖는 고유한 역할이다. 대체로 어느 사회체제이든 이론적으로나 운영상에 있어 불가피하게 부작용 낳는다. 특히 신자본주의에 이르러서는 무한 경쟁으로 인한 그늘을 짙게 드리운다. 우리 사회만 보더라도 그 문제의 심각성을 언급하는 것이 새삼스러울 정도다.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비정규직은 800만 명에 이른다. 2400만 경제활동인구 중 30%를 차지한다. 늘 실업의 불안감 속에 살아가야 하는 불안 사회다. 이러니 빈부격차는 당연한 귀결인데,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가운데 나타나는 빈부격차는 빈부의 차이만이 아니라 생각과 행동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우리 사회의 안전한 유지를 막다른 골목으로 내모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묻지마 범죄와 반인륜범죄의 빈발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속에서 종교는 사회체제가 감당하지 못하는 정신적 위안과 사회복지를 담당하지 않을 없으며, 상당 부분 기여하고 있다. 그런데 종교조차도 신자유주의 질서를 내면화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들린다. 우희종 서울대 교수는 ‘불교생명학 원리와 탈핵의 길’에서 “과학기술이 신자유주의와 만나면서 더욱 자본 종속적인 모습으로 변하고, 잉여가치 창출의 도구적 수단으로 전락한 상황”이라면서 “불교가 서구의 기계론적 과학문명과 생명을 잉여가치 창출 대상으로 바라보는 자본주의적 가치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게 되면, 불교적 생명존중과 생명윤리는 관념적 구호에 불과해진다”고 진단했다.

겨울 숲은 비록 푸른 생기를 잃고 잿빛을 드러냈지만 생명을 다 한 것이 아니다. 씨앗을 터트리고 낙엽을 떨군 숲은 안거에 들어갔다. 봄의 생명을 잉태한 것이다. 숲 가운데 군데군데 군락을 이룬 소나무는 여전히 푸르다. 불교의 역사에서 끊임없이 일어났던 결사는 새불교로 다시 태어나는 동력이었다. 인도에서 불교가 자취를 감췄지만 인도 불교는 다시 움트고 있으며, 인도에서 퍼져나간 불교는 동아시아를 넘어 아메리카와 유럽 대륙에서 새로운 정신의 빛을 비추고 있다.

2012년의 한국불교와 조계종. 겨울 안거에 든 것처럼 용맹정진의 시기이지 않으면 안 된다. 2013년은 이미 정해진 지도에 따라 걸어가는 시간이 아니다. 우리의 본래면목을 만들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