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건축의 장엄의식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불교문화산책 - 최태선 1999년 03월 205호
지난 호까지는 탑에 대한 지진구와 사리장엄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번 호에서는 건물(당)을 건축할 때 행해지는 장엄의식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일반적으로 고대 사원을 비롯한 건물터를 견학할 때 과연 당시의 건물 규모는 어떠했을까, 초석은 다듬은 것을 사용하였을까, 아니면 자연석을 이용하였을까, 건물의 외형은 어떠하였을까, 지붕에 사용된 기와는 어떠한 것 들이었을까 등 건물 외형에 일차적인 궁금증을 던지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일반인 아니라, 국내의 건물터를 조사하는 연구자들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의문이며, 실제 조사자들은 사원의 건물지를 조사할 때 오랜 기간 동안 한 장소에서 중복되어 증,개축되었던 건물지의 흔적 앞에서 몇 번의 중수가 있었을까를 밝히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건물을 만들 때 행하여진 의식이나, 그 흔적에 대해서는 간과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번 호에서 다루고자 하는 내용은 자칫 소홀히 다루어 질 수 있는 건물축조 때의 의례(의식)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시원 건물을 축조함에 있어서도 탑의 축조와 장엄처럼 일정한 의식-진단의식鎭壇儀式 또는 지진의식地鎭儀式-이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러한 의식에 사용된 공양물과 공양구가 건물터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이러한 건물기단을 만드는 의식은 경전상에서도 다루고 있는데, 다라니집경陀羅尼集經과 능엄경에서 그 의식을 설명하고 있다. 불설다라니집경 권12에서는 작단이라는 단어가 많이 보이는데, 여기서의 작단은 건물의 기단을 만드는 방법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중요의식에 대한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같다.
-於道場處四方換之 下以白粉點之爲記 阿閣梨先從東北角至西南角 挽繩定之 離柱四指下點馬記 次從東南角至西北角 挽繩定之 離柱四指下點寫記 正當中央繩相交處 又下點意 各當點處穿一小孔探-碩許 其中擬埋七寶五穀 其七寶者 一金 二銀 三眞珠 四珊瑚 五琥珀 六水精 七琉璃 是名七寶 其五穀者 一大麥 二小麥 三稻穀 四小豆 五胡麻 是名五穀 其寶等碎五穀相和 以絹片襄 用五色線五指許 此寶物等一下以後永不得出 從此而起金귀界地七寶合成 諸佛居上演說大乘轉法輪處一

곧, 다라니집경에서는 단을 축조하여 당堂을 건립하는데는 먼저 땅에 새끼를 쳐서 경계를 정하고, 동북각과 서남각의 모서리에 점을 찍어 표시하고 다시 동남각과 서북각의 모서리에 점을 찍어 표시하고 이 두 줄이 만나는 중앙에 역시 점을 찍어 표시한다. 그리고 이들 네 모퉁이 및 중앙에 소공을 뚫는다.
그 다음에 그 구덩이에 칠보(금, 은, 진주, 산호, 호박, 수정 , 유리)와 오곡(대맥, 소맥, 도곡, 소두, 호마胡麻)을 명주에 싸서 오색으로 끝을 묶어 구덩이에 매납한다. 매납할 때 오색 끈은 오지 쯤의 길이를 밖으로 낸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능엄경 권7에서는…만일 말세의 사람으로서 도량을 건립하려거든 먼저 설산에서 향초를 먹은 대력백우大力白牛를 구한다. 맑은 물만 먹은 백우의 분뇨는 매우 미세하므로 그것을 전단목과 혼합하여 지면에 바른다. 만일 백우가 아니면 그 분뇨가 더러워서 땅에 바를 수 없으므로 특별히 평원에서 오척 이상까지 지표를 파버리고 그 이하의 황토를 구하여 상전단, 침수향, 감송 등 10종의 향을 섞어 황토와 합하여 진흙을 만들어 터에 발라야 한다. 이후 방원으로 장육의 팔각단을 단심에는 금, 은, 동, 목으로 만든 연호l를 놓고 연화 속에 발(鉢)을 놓고 발 중에는 정수를 뜨고 그 속에 꽃잎을 놓고…로 설명하고 있다.
이들의 내용을 종합하면 먼저 기단토를 만들고자 할 때에는 어떠한 재료이든지 건물의 무게를 지탱하여야 하므로 부식토를 제거하고 점토와 소의 분뇨-이는 인도의 예이겠으나, 실제 아프리카에서는 소의 분뇨를 뭉쳐 가옥의 벽체에 발라 방습과 외부 온도를 막는다-와 항목을 혼합하여 다지는(판축) 것을 중요시하고 있다. 또한 쇄 분뇨가 없을 때에는 오 척 이상의 부식토를 걷어내고 순수 기반층 흙을 재료로 하여 각종 향을 혼합하여 건물 기단토로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만든 기단의 네 모서리와 건물의 중앙(수미단)에 끈(줄자 역할)을 이용하여 정확하게 위치를 선정하여 진단 혹은 지진제의 공양물을 봉안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들 두 경전 내용 중, 다라니집경에서는 구체적인 진단 행위에 대한 방법을 설명하고 있고, 능엄경에서는 단을 만드는 데 있어 의식적인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곧, 신성한 땅의 기운을 이용하여 건물기단을 만들어야 나쁜 기운이 없어진다는 의식(좋은 흙으로 기단토를 구축하는)을 설명하고 있다.
여하튼 이러한 건물을 만드는 방법과 의식까지 경전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경이할 만한 일이며, 이러한 작법에 관한 글어 있음에도 시원 유척을 연구하는 전공자들 중에 이를 깊이 연구하는 자가 많지 않은 현실은 개선되어야 할 점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지진 또는 진단의 의례는 고고학적으로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까? 아직 국내에서는 건물지의 진단의식 및 공양물에 대한 내용이 보고된 예는 적다. 또는 실제유물을 수습하고서도 그 해석에 있어 지진이나 진단의례의 산물로 비정해 놓은 보고서도 드물다. 일본의 경우는 국내에 비해 고대 사원들에 있어 진단 및 지진의례에 대한조사 연구가 활발한 편이다. 일본 건물기단의 지진 및 진단구의 조사 예로는 흥복사 중금당과 동대사 금당의 출토유물이 유명하며, 이들은 고대시원 지진구의 대표 예로서 소개되고 있다. 이들 출토유물은 대부분 칠보에 해당하는 금, 은, 수정, 유리제품 및 화폐 등이나, 이 중 홍복사 중금당에서 출토된 용기에는 곡물로 추정되는 이물질이 보고된 바 있어 흥미롭다. 또한 사원유적이 아닌 일반 건물지(大宰府遺跡 門址)에서도 기단부에 구멍을 파고 수정을 매납했던 것으로 보고되고 있고, 사원중 금당지가 아닌 동대사의 중문지에서도 기단모서리에 구멍을 파고 호를 매납한 예가 보고되어 있다. 일본학자들은 이러한 자료와 경전들을 통해 기단이 완성된 뒤에 기단을 파고 지진공양물을 매납하는 형태와 출토상태를 통하여 지진, 진단 공양물을 기단조성 중에 봉입하는 형태 등 두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이에 의거하여 우리나라의 조사 예를 간략히 살펴보자.
기단축조 중에 봉안하는 형태에 대해서는 첫 호에서 언급하였듯이 국내에서도 황룡사 등 주로 탑의 기단부를 중심으로 비교적 많은 출토 예가 보고되고 정리되고 있다. 그러나, 건물기단 축조시 행하여진 지진제의 공양물의 보고 예는 많지 않다. 98년 말에 양산의 한 사찰에서 대웅전 기단 보수·개축 중 출토된 유물들을 보지는 못하였으나, 정황으로 보아 지진구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되어 진다. 필자가 조사했던 사원지의 경우 대구 북지장사 대웅전지와 인각사 서편추정문지에서 지진 및 진단구로 판단되는 예가 있다. 이들 두 건물지의 기단토는 건물지 주변의 기반토가 아닌 점토와 숯을 이용하여 다진 편축토임은 물론이다. 북지장사 대웅전터의 경우는 조사 전 중장비에 의해 심하게 교란되어 기단을 파고 매납한 공양구는 확인하지 못하였으나, 기단토에서 은제 가락지와 백자완이 출토된 바 있다. 또한, 인각사 서편문지의 경우 동남쪽 적심석과 인접한 모서리에 구덩이를 파고 고려시대의 소형 호를 2점 매납한 것이 확인된 바 있다. 이 문지의 경우는 일본 동대사 중문지의 예와 함께 불상을 모신 대웅전이 아닌 출입문지에서 확인되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곧, 사원의 경우 주요건물뿐 아니라 출입시설인 문지에까지 이러한 경전상의 작법이 지켜지고 있다는 데서 고대인들의 기단축조에 대한 의식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사실들에서 고대 건축물-고대사원 포함-을 축조함에 있어 한국과 일본 동 동양에서는 지진, 진단의식이 공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연구자들에게도 건물지를 조사함에 외형상의 복원뿐 아니라 이러한 의식형태에 대해서도 좀더 세밀하게 조사·연구하여 복원하려는 시각이 요망된다.
이러한 자료를 많이 축적해서 사원의 건물에 대한 진단의식뿐 아니라 관아지의 기단에 대한 진단의례는 어떠했는지, 또한 억불정책을 펼친 조선시대의 건물지에서는 어떠한 형태의 진단의례가 있었는지 등의 의문에도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