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랜만에 왔네?”
“이번 주는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이 바빴어.”
때를 훨씬 지나서 인지, 가게에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숙’은 겉절이를 담그다가 시뻘건 손을 들어 나를 반겨주었다. 우리에게 강아지처럼 꼬리가 있으면 얼마나 반가워하는지를 서로에게 보여줄 수 있을 텐데 싶었다.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하자마자 커다란 접시에 겉절이를 한 움큼 담아 내주었다.
“학교 다닐 때 공부는 당최 소질이 없었는데, 내 손만 닿으면 모든 음식이 맛있어 지네. 이거 내가 먹어도 참 맛나. 맛 좀 봐. 교수님!”
“네, 사장님!”
2.
사실 그녀는 ‘숙’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단골 식당 주인을 ‘숙’이라고 부른다.
“혹시, 서울 00여중 나오시지 않았어요?”
“아닌데요. 전 수원 00여중 나왔는데요.”
“아, 그렇군요. 제 어릴 적 친구랑 너무 닮으셨어요.”
“어디 또 저처럼 시커멓고 뚱뚱한 아줌씨가 있나보네요. 견적 솔찮히 많이 나오겠네요.”
“ … ”
그랬다. 그 당시 우리는 숙을 숙이라고 부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우리는 그 얘를 ‘릴라’라고 불렀다. 숙은 고 씨였다.
3.
내 짝은 양궁 선수였다. 그 아이는 일주일에 한 번 교실에 들어왔다. 69번인 나는 수요일만 빼곤 늘 맨 뒷줄 끝에 혼자 있어야 했다. 짝의 책상이 보조 책상이 되었고, 옆에서 거치적거리는 사람이 없으니 오히려 공부시간에 집중하기 좋았다. 쉬는 시간에는 앞, 옆을 가리지 않고 교실을 누벼가며 떠들고 놀았으니 괜찮았다. 그래도 짝이 들어오는 수요일은 가장 즐거운 날이 되었다. 짝은 운동을 하는 아이여서 그런지 별로 가리는 것도 없었고, 붙임성도 있었다. 하지만 짝은 조회시간부터 잤다. 그러다가 쉬는 시간이면 귀신처럼 깨어나서 큰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작은 입술로 조신조신 이야기를 했다. 3교시부터는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조용히 내 손을 가져다가 손톱깎이로 손톱을 깎고, 줄로 예쁘게 가다듬어 주었다. 4교시 중간쯤엔 쪽지를 주었다. <점심시간에 우리 양궁부에 가서 라면 끊어 먹을래?> 그 때는 3월이었다. <라면? 정말? 좋아.>
4.
“야, 다른 얘를 데려오면 어떡해!”
아니, 사람 면전에서 무슨 이런 경우가 있나 싶었다. 더구나 나랑 짝이랑 지들 것까지 끊여 놓았는데. 생긴 데로 구는구나 싶었다.
“야, 너네끼리 먹어.”
“그게 아니라, 코치님한테 야단맞는다 말이야.”
그 이후, 나는 수요일마다 양궁부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코치님도 알았지만 아무 말도 안했다. 할머니가 수요일에는 맛있는 반찬을 엄청 많이 싸 주었기 때문이었다. 첫날 나를 박대했던 숙이랑 제일 친해졌다. 숙이는 내가 읽은 책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폭풍의 언덕>이나 <춘희>를 이야기 해주면 영화보다도 드라마보다도 재미있다고 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숙이는 중 1인데도 글을 잘 몰랐다. 그래서 숙이는 내 이야기를 무엇보다도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점심을 먹을 때, 항상 물었다.
“뭐 재미난 거 읽었어?”
“응, 비도 오는데 무서운 이야기 해 줄까? 에드거 앨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를 읽었는데…”
그 때는 몰랐지만 숙이와 나 사이에서 이 세상의 단 하나 뿐인 이야기가 생겨나고 있었다. 두 어린 영혼은 세상의 모든 이야기 속에서 각자의 삶에 대한 예감을 건져 올리고 있었다. 그 때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태어나고, 얼마만큼 사랑을 하고, 얼마나 많이 고통을 받고, 그래도 얼마나 높은 희망을 가질지를 이미 알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등에 각자의 이야기를 짊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삶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를 기다려준 두 눈동자 앞에서, 우리를 불러준 두 손 앞에서, 우리 마음속에 심어진 이야기가 수줍게 빛을 띠며 풀려날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잊을 수도 없고 잃을 수도 없는 생의 씨앗을 서로에게 얘기해 주고 있었다.
5.
9월이 되자, 짝의 책상이 치워졌다. 짝이 교실에도 들어오지 않고, 양궁부로 초대도 안했건만, 할머니는 어마어마하게 반찬을 싸 주었다. 반찬통을 들고 양궁부를 찾아갔다. 숙이가 없었다.
“릴라 아직 안 왔어?”
“릴라 학교 그만 뒀어. 너, 몰랐냐?”
“엉, 근데 왜?”
“걔네 엄마 술집 하잖아.”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인데! 나쁜 년들.”
6.
아는 척을 할 수가 없었다. 숙이가 자기를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내가 자기를 못 봤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못 본 척 했다.
우리가 같이 학교를 다닐 때, 고갱의 <타히티의 연인> 그림사진을 주면서 “릴라, 언제 그림 모델까지 했어?”라고 놀린 적이 있었다. 숙이는 그림 속 그 여자처럼 순수했고, 건강했다. 그땐 몰랐지만 원시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중 2 추석 무렵, 거리에서 마주친 숙이는 아이들이 술집 여자의 딸이라고 했던 숙이였다. 검은 피부위에서 번떡이던 사구려 분홍 블라우스, 건장한 몸에 찢어질 듯이 달라붙은 파랑색의 치마, 더 못 생겨보이게 한 짙은 화장보다도, 숙이 옆에서 거리에 침을 뱉고 있는 양아치 같은 남자가 숙이가 누구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남자는 숙이에게 자꾸 말을 걸었지만 숙이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숙이도 나처럼 땅만 보고 걸었다. 나는 속으로 물었다. ‘너네 엄마처럼 살거니? 안 그럴 수 있잖아?’ 묻고 또 물었다.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는데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이 보였다. 안 울려고 눈을 크게 뜨고 거울 속의 나를 바라봤다. 내가 운다면, 숙이가 더 불쌍해 질 것 같았다. 하지만 거울 속의 나는 벌써 울고 있었다. 나는 그날 알았다, “눈물은 영혼이 흘리는 피”라는 것을.
7.
‘숙’라는 별명을 붙인 영옥(가명)씨에게서 지금 네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본다. 너도 영옥 씨처럼 거친 손을 가졌을 것이다. 너도 영옥 씨처럼 큰 손을 가졌을 것이다. 너도 영옥 씨처럼 따뜻한 손을 가졌을 것이다.
우리가 함께 했던 날에 네가 어떤 이야기를 네 등에다 지운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네 마음 속 깊숙이 심어져 있었던 삶에 대한 사랑의 씨앗은 타히티의 검은 밤, 검은 별까지 자라났을 것이다. 그날 너를 모른 척 해주기를 부탁했던 두 눈동자는 내가 이 세상에서 본 가장 슬픈 눈동자였다. 아무나 슬플 수는 없다. 사랑은 슬퍼야 아름답고, 삶은 슬퍼야 훌륭하다.
숙아, 나도 내 이야기에서 배웠다, 슬픔에 아프지 않고 무릎을 꿇을 때, 우리의 삶의 씨앗이 우리의 소망 끝까지 자라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