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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의 숨은 주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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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로 본 세상 - 정은진/프리랜서 포토저널리스트 2012년 12월 370호

하템 무싸, 이브라힘 아부 무스타파, 아흐메드 자콧, 미즈디 모하메드... 이 이름들은 지난 11월18일부터 21일까지 팔레스타인 자치구의 ‘가자 지구 Gaza Strip\'에서 벌어진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습기간 동안 전 세계로 사진을 전송했던 외신 통신사 사진기자들의 이름들이다. 이 외신들이라고 함은 AP (Associated Press) 를 비롯하여, 로이터, AFP (Agence France-Presse) 등을 뜻하는 것으로, 회사는 미국이나 프랑스에 본부를 두고 있지만 사진기자들은 현지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이다. 항상 공습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가자지구에 살면서 그곳에서 목숨을 걸고 전 세계에 뉴스를 전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필자도 가자지구에 갔었던 2004년 봄, 이들 외신기자들과 조우한 적이 있었다. 전에 칼럼에도 썼었지만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친 이라크 데모현장에는 가자지역에 있던 거의 모든 기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취재를 했었다. 사진기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나는 무소속 프리랜서였지만 다른 현지인 사진기자들은 통신사와 아랍계 언론소속이었다. 어쨌든 데모 현장에서 주최 측인 ‘이슬라믹 지하드 (이슬람 성전)’ 민병대원들은 우리를 모두 데모현장 주위에 둥그렇게 모아 사진촬영을 하게했고, 그 와중에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크고 작은 몸싸움이 일어났었다.
그 중 여자사진기자는 나 한명 뿐이었는데, 뭘 믿고 그랬는지, 그 때 나름대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옆에 있는 남자 사진 기자를 밀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가 다리를 많이 다쳤던 사람이었다. 다리를 절룩이던 그를 다른 팔레스타인인들이 부축을 하면서 “진정해라. 이 사람은 최근 부상을 당한 사람이다”라고 말했고, 나는 뭔가에 홀린 듯 소리를 막 질러댔다. 어쨌든 우리는 힘들게 자리를 잡고 사진을 찍었으며, 나는 그 후 지갑을 도둑맞는 일이 생겼었다.
나중에 지갑을 찾고 가자지구에서 나를 도와주었던 의인 사퐛은 현지인 사진기자들이 있는 집으로 날 데리고 간 적이 있었다. 시멘트로 지어진 작은 집으로 들어가니 현란한 무늬의 붉은 카펫이 깔려있는 작은 방이 하나 있었고, 그 방에 10여명이 동그랗게 모여 앉아있었다. 모두 젊은 팔레스타인 남성들이었다. 그들은 “살라마리쿰 (안녕하세요)”이라며 나에게 인사를 했고, 나도 인사를 하면서 AP 사진기자 옆에 앉았다.
내가 자리에 앉자 나의 오른편에 낯익은 남성이 한명 앉아있었다. 그는 바로 그 전날 데모현장에서 내가 밀쳐냈던 그 사람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게티 이미지와 AFP 통신에서 일하던 모하메드 아베드였었으며, 옆에는 역시 AFP 사진기자로 일했던 그의 동생 마흐무드 이브라힘 함스가 앉아 있었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그가 게티 사진기자였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도 부끄러웠지만 그 사실을 알고 나서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사실이 더 부끄러웠다.
나는 그 자리에서 석고대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사람은 내가 얼마나 당돌하고 기가 찼었을까! 동양에서 온 웬 여자가 자기를 밀쳐내고 소리를 지르다니! 이슬람 문화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 애송이 기자의 오만함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내 기억으로는 그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오히려 여유를 보이면서 “이 사람이 당신이 밀었던 그 사람이다”라며 웃는 것이 아닌가! 나는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에게 싹싹 빌었다. 너무나도 죄송하고 잘못했노라고. 수치심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모하메드 형제는 나에게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나 미안한 일이었다. 부상을 당한 상태에서 데모대 취재를 나왔는데 애송이에게서, 그것도 동양여성으로부터 밀림을 당한 그 분께 너무나 죄송했다.
그 자리에 있던 외신 사진기자들은 결국 다른 얘기로 화제를 돌리고 농담으로 마무리 지었다. 나는 나중에 현장에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볼 기회가 계속 있었으며, 현장 상황에 따라 직접 인사를 하던가 눈인사를 하고는 했다.
가자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인들은 대부분 가자 밖을 나갈 수 없다. 이들 기자들도 현장 취재를 자신들의 숙명으로 여기며 이곳에서 생활을 하면서 사진을 찍고 있다. 역으로 다른 서방기자들도 쉽게 가자지구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이들 현지인들이야말로 전 세계에 가자의 실상을 알려주는 숨은 주역들인 것이다.
언젠가 자신들의 머리 위로 포탄이 떨어질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일하는 팔레스타인의 사진기자들! 이들 덕분에 대부분의 우리들은 가자지구에서 수천 킬로 떨어진 대한민국에서 가자의 실상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