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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청년 스캇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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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스님의 세계 만행 - 원제스님 2012년 12월 370호

만행을 하면서 가지게 바램 중의 하나는 중국의 서민 가정에 머물며 그들의 삶을 지켜보고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그런 차원에서 카우치서핑이 어느 정도의 기회를 줄 수 있으리란 기대를 했지만, 실제 그런 경우를 찾기는 굉장히 힘들어보였다. 그러나 시안에서 카우치서핑 호스트가 되었던 스캇의 제안은 나의 이러한 생각을 꿰뚫어보기라도 한 것인 양 너무 반가웠다. 중국의 명절인 중추절 기간 동안 링추안(陵川)이라는 자신의 고향에 가는데 함께 가자는 제안이었다.
스캇은 현재 시안의 한 여행사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서른 살의 청년이다. 본래 중국 이름은 양처우이지만 외국인들과 만나는 카우치서핑에서는 스캇이란 영어이름을 쓰고 있었다. 카우치서핑도 서른 번 넘게 경험했을 정도로 상당한 전문가 수준이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인 링추안을 떠나 시안에서 10년 동안 살아왔다. 참 순진해 보이는 인상의 그는 요즘말로 훈남이었다. 카우치서핑의 서퍼들에게 친절함의 대명사로 도배되다시피한 스캇의 성품은 만나는 순간에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나의 일정에 맞춰서 버스표를 구매했고, 또 늦게 도착하는 나를 위해 대합실에서 두 시간 정도를 기다려주었다. 또 열흘 가까이 같이 있으면서 항상 나에게 먼저 양보를 하고 배려를 해준 것을 돌이켜보면 그는 참으로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란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스캇의 고향인 링추안은 샨시성의 작은 현인데 특별한 관광지가 없기 때문에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들에게 알려질 만한 곳이 아니었다. 스캇을 만났을 때, 그는 주롄산(九蓮山)을 넘어서 링추안으로 갈 것이라고 했다. 스님들의 천성 중의 하나인 산타기, 나도 좋아한다. 그렇다면 2년치의 짐을 모두 담은 나의 28킬로에 달하는 육중한 배낭은 어찌될 것인가. 스캇은 간단하게 말했다. 산이 별로 안 높아서 그냥 넘어가면 되요.
비교적 합리나 효율 따위의 미덕을 존중해가며 융통성있게 일을 처리하자는 나의 신조와는 다르게 스캇의 대답은 이렇게 간단 명료했고 앞으로 나에게 다가올 육체적 고난도 간단 명료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고집한 바대로 타이항 산맥의 한 줄기인 주롄산과 이를 둘러싼 협곡들은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무거운 가방을 짊어매고 높은 산을 올라야 하는 몇 시간동안의 육체적인 시련과, 그 과정에서 목도하게 되는 아름다운 대자연의 풍광들은 사뭇 대조적이기도 하지만 묘하게도 이런 극명한 대조가 그럴듯한 조합을 이루어내었다. 명징했던 고난의 시간이었던 만큼 그 순간에 보았던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경관들이 기억 속에 뚜렷하게 각인된다고난 할까. 아홉 개의 연꽃이 피어오르는 모습을 닮았다는 뜻에서의 주롄산과 협곡의 거대한 암벽을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직 사람의 힘과 연장으로 30년을 걸쳐 뚫어서 만든 도로가 있는 시야고(石窟), 샨시와 허난 지방의 경계를 이루는 타이항산의 왕망링 풍경구를 이틀간 구경한 다음 스캇과 나는 그의 고향인 링추안에 들어갔다.
중국에서 손님으로 한 집에 들어가면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고 사형스님에게 넌지시 이야기 들은 바가 있었다. 내가 시야고에서 지낸 사흘간의 경험이 실제로 그러했다. 일년에 두 번 정도 고향을 찾는 둘째 아들 스캇과 손님인 나를 위해서 스캇의 어머니는 늦은 시간임에도 저녁을 준비해 놓으셨다. 사실 우리는 시야고에서 저녁을 먹은 뒤였지만, 어머니가 준비한 옥수수죽의 정성과 맛에 두 그릇이나 먹었다. 링추안에 지내는 동안 스캇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우리들 식사를 마련해주셨다. 어머니가 병원의 약사로 일하러 가실 때에는 현재 운전기사를 그만둔 아버지가 음식을 만들어주셨다. 스캇과 부모님들은 나를 위해서 따로 방과 침대 하나를 내주셨다.
사실상 스캇도 그렇고 스캇의 부모님이나 한국에서 스님이 왔다가 구경을 온 이웃 친척들은 불교에 대해서 이렇다할만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편은 아니었다. 스캇의 부모님에게 나는 발심 출가해 수행하는 스님이 아니라 젊은 나이에 절에 들어가 사는 좀 안타까운 ‘경우’에 해당된다고 해야되는 편이 옳았다. 그들은 불교 자체에 대한 관심과 질문보다는 그저 내가 출가를 하게 된 경위나 절에서의 생활 등과 같은 단순한 신변적인 질문만 했을 뿐이었다. 그런 그에 나는 그들에게서 받은 호의대로 내가 대답할 수 있는 성심껏 그들에게 설명해주려 애를 썼다.
오랜만에 찾아온 스캇 덕분에 나는 스캇의 부모님과, 그리고 친척들과 함께 근처의 황웨이(黃圍)산으로 가벼운 나들이를 떠났다. 타이항 산맥의 작은 줄기이기도한 황웨이산은 흡사 작은 주롄산처럼 보였다. 나들이를 마치고 난 뒤에는 스캇 부모님이 소유한 옥수수밭에 가서 같이 옥수수를 땄다. 그런데 옥수수밭으로 가는 도중에 인상적인 건물을 하나 보았는데, 그것은 바로 스캇의 집이었다. 이제 막 기반을 잡아놓고 벽돌 두 층 정도 쌓아놓은 시작단계의 미완성 집이었지만 2년 뒤에는 완성될 예정의 집이었다. 스캇에겐 아직 여자친구도 없고 또 결혼에 관한 특별한 계획도 없다. 그럼에도 서른 둘의 나이에 자신만의 집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은 다분히 단순 비교상 차이는 있을 지언정 한국의 비슷한 또래의 상황과 비교해 대단해 보였다. 이제 막 올리기 시작한 집의 벽돌 기반은 언젠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의 삶을 새로이 시작하겠다는 그의 미래와 의지를 드러내는 것처럼 소박하지만, 한편으로는 참 견고해보였다.
링추안에서 스캇의 부모님에게 황송한 환대를 받고 나서 나는 다시 스캇과 함께 시안으로 향했다. 시안으로 가는 길에도 스캇의 부모님은 표도 미리 끊어주시곤 우리를 정류장까지 태워다 주셨다. 스캇은 아마도 내년 신년 연휴 때에는 고향집에 들르지 못할 것이었다. 본인의 결정으로 그간 일하던 직장을 그만두고 그는 6개월간 아시아 여행을 계획 중이었다. 그리고 십년간 살아온 제 2의 고향인 시안을 떠나 아마도 다른 곳에서 또다른 직장을 구하고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될 것이었다. 그와의 지중한 인연 덕분인지 그의 앞날이 어떻게 펼쳐질지 사뭇 궁금해진다. 어쩌면 그의 여행 기간동안 동남아시아의 어느 한 자락에서 서로 만나게 될 기회를 슬며시 기대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