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황산 선사禪師 (캐나다 밴쿠버 달마사)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호계삼소 - 정영 2012년 12월 370호

발을 들이면 모든 것들이 짙어지는, 손을 내밀면 인연마저도 깊어지는 가을이다. 캐나다 밴쿠버 달마사에 계신 황산스님은 가을이면 늘 한국에 들어오신다. 은사 스님이신 제선스님의 추모제가 있기에. 올해는 제선스님 탄신 백 주년을 맞아 손이 갈 일이 많다. 그것을 하나하나 짚다보면 그립지 않으실까 싶은데 스님은 그저 고개를 떨구신다.
\"스님을 뵐 면목이 없지요. 생을 무상으로 끝내신 게 아니라 그 자취로써 후대 수행자들에게 수행인이 가야할 길과 회향처를 여법하게 제시해 주셨어요. 무언의 대 설법을 하고 가신 것이지요. 상좌로써 그걸 추종하지 못하는 것이 죄송하고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제선스님은 도봉산 천축사에서 6년간 무문관 수행을 하신 후 홀연히 사라지셨다. 그 후로 황산스님은 은사 스님의 거처를 찾아 헤매었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 그러고 나서 제선스님의 나이가 90세가 되던 해엔, 돌아가셨다고 생각하고 스님의 생일을 기해 추모제를 모셔 지금까지 매해 이어오고 있다. 스님이 문득 방 안에 걸린 흑백 사진을 올려다보신다. 은사 스님이시다.
\"우리 스님을 처음 뵈었을 때 그 위엄이 굉장했어요. 한 말씀의 무게가 천만근을 넘었어요. 스님 모시면서도 처음 3년간은 문턱을 넘어 한방에 들어가질 못 했어요. 눈 한번 깜빡하시면 광채가 났지요. 저 사진은 무문관에 들어가실 때 찍은 거예요.\"
그 이후로 스님은 은사 스님을 뵙지 못 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스님은 나직이 은사 스님을 추억하신다. 본래 상좌를 잘 안 두시는 분이라서 몇 안 되는 상좌 중에서 황산스님이 막내 상좌였단다. 그 막내 상좌가 늘 선방에만 앉아 있고 해제하고 찾아와 총기 있게 선방에서 조주 스님들이 하신 말씀을 전해드리니, 그 모습을 참 어여삐 여기셨다.
\"현상적으로 이 자리에서 뵈옵지는 못하지만 근본 자리에선 항상 그 사상을 따르니 여여하게 모시고 있는 것이지요. 떨어져 있어도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열반하셨어도 열반해 계신 게 아니니 늘 즐거운 마음으로 접하고 있습니다.\"
햇살이 좋은 가을 오후, 일흔이 넘은 막내 상좌는 그저 거분한 마음으로 은사 스님의 사진을 바라보는 것이다. 스님은 제선스님이 무문관에 들어가시기 전에 남해 금산의 보리암에서 모시고 살았단다. 보리암엔 법당 하나와 작은 요사채 하나뿐이던 시절이다. 그 시절을 잠시 회상하신다.
\"좌선대에 있는 작은 토굴에서 스님을 모시고 살았지요. 그때 금산 곳곳 토굴에 큰 스님들이 많이 사셨어요. 그분들이 공양시간에만 보리암 큰 방에 모이셨지요.\"
겨울을 지내고 어느 해 봄, 은사 스님과 등산을 하였다. 수백 괴암이 솟아오른 곳이 있어 그곳에 어렵게 올랐다. 은사 스님께선 그곳에 토굴을 짓자고 하셨다. 그렇게 해서 지금 부소대라고 부르는 그곳에 토굴을 짓고 법왕대라고 이름지으셨다. 그 때 제선스님이 남기신 게송을 황산스님이 오늘날 읊어주신다.

普光山色劫外靑 보광산색겁외청/ 보광산 산색이 만겁으로 푸르고
一眞獨路法王臺 일진독로법왕대/ 한줄기 진리가 법왕대에 홀로 드리우니
絶塵聖境人不到 절진성경인불도/ 세속이 끊어진 성스러운 경지에 사람이 미치지 못하는데
衲兒杖頭放光明 납아장두방광명/ 먹물 옷 입고 주장자 짚은 내가 방광을 발하네

참다운 불사는 절을 짓는 것이 아니고 수행인을 키우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제선스님은 사제인 정영스님과 뜻을 같이 해 서울 도봉산 천축사에 무문관을 지으셨다. 그리고 그 무문관으로 들어가셨다. 한국 조계종 정화 이후 최초의 무문관이었다.
\"이와 사가 둘이 아닌 실력을 갖춰야 한다는 게 은사 스님의 지론이었어요. 그 일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세상에 출현하지 않겠다 하시고 무문관에 들어가셨습니다.\"
황산스님은 무문관에서 나와 자취 없이 홀연히 사라지신 은사 스님의 남은 발길을 쫓기라도 하듯 또 다른 게송들을 읊어주신다. 그것은 물 흐르듯이 대자연에서 지금 여기 스님의 가슴 골로 흘러온다.
스님은 올 가을 제선스님의 탄신 백주년 추모제를 맞아 책을 발간한다. 스님이 남기신 게송을 비롯한 말씀들을 묶는데 이것이 허물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러워하신다. 그러나 이것이 이 시대의 나약한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하신단다. 부처님께서 우리의 근본도리를 제시하신 것처럼 말이다.
황산스님은 살면서 내내 가슴에 품고 사는 말 하나를 꺼내놓으신다. 스님이 젊은 시절에 부산 범어사에서 3년 결사를 할 때였다. 무문관이란 이름은 안 붙였으나 묵언을 하며 대문 밖에 나가지 않고 살았는데, 육단심으로 애를 쓰다 보니 그만 병이 나버렸다. 열이 나서 위장으로 치밀어 오르니 배겨낼 수가 없었다. 그때 동산스님께서 스님에게 말씀하셨다.
\"선용기심善用其心하라고 하셨어요. 아주 평범한 말씀이지요. 그런데 그때 나한테는 그 말 외에 그 어떤 말도 불필요했어요.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체증이 다 내려가는 것만 같았어요. 그 이후로 그 네 글자가 내 평생의 좌우명이 되었지요. 어느 곳에서든 내 마음 한 생각을 바꿔서 착한 생각, 일념 무심으로 돌려놓으면 다 가라앉습니다.\"
스님은 출가 후 줄곧 제방의 수좌로 계셨다. 그러던 1983년 해인사 선원에서 정진을 하다가 그해에 해인사 총무 소임을 보게 되었다. 그러고는 진주 의곡사 주지로 부임 받아 살 때는 참 많은 일을 했다. \'감로심장회\'라는 법인단체를 설립해서 심장 수술을 해주는 의료 활동을 했는데, 그것이 규모가 커져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복지사업은 천주교나 기독교에서만 하고 있었어요. 불교에선 없는 일이었지요. 그런데 시작을 해보니 마치 불자들이 오래도록 바랐던 일인 것처럼 기적 같은 일들이 있어났어요.\"
진주의 한 아이의 심장병을 고쳐주기 위해 시작된 일이 스님의 첫 걸음으로 인해 불처럼 일어나기 시작했다. 무명의 불자가 거금을 보내오기도 했고, 방송에 소개가 되니 많은 헌금이 들어왔다. 그렇게 해서 몇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수백 명에게 생명을 주고 있으니 감동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스님은 그 후 대구에 불광사를 창건하시고 그곳에서 5년간 머물다가 홀연히 캐나다 밴쿠버로 자리를 옮기셨다. 미국에 있는 도반 스님들 초청으로 미국에 몇 차례 여행을 가게 됐다. 그러다가 밴쿠버에 이민을 가 있는 인연이 있는 처사가 있어 그곳에 잠시 들르게 됐는데, 교민들이 그곳에 절이 없으니 스님이 와주셨으면 하고 부탁을 했다. 인연 따라 그렇게 살게 되면 살겠지 했는데, 그곳에 달마사라는 절을 개원한지 벌써 15년이 지났다. 포교당이라기보다 교민들의 사랑방 같은 곳이란다.
\"한국에서 밥 세끼 먹으나 밴쿠버에서 밥 세 끼 먹으나 내겐 아무 차이가 없어요. 내가 해야 할 일을 해나가는 것이니.\"
밴쿠버는 자연이 아름답고 맑은 곳이라는데,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는데 그곳에 절이 있고 또 그곳에 스님이 계시니 참으로 편안할 것만 같다. 그러자 스님이 한 마디 하신다.
\"또 거기 살다보면 다른 곳이 그리워질 때가 있지.\"
스님은 그곳에서 또 다른 보람을 느끼신단다. 우리나라에선 한 가정에서 여자들만 절을 찾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민을 온 이들은 가족 단위로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여자들이 절에 오면 식구들이 모두 따라온단다.
\"불교의 교리를 전혀 모르던 이들이 와서 불교 공부를 시작하니 참다운 불자로 진입하게 되는 거예요. 첫 걸음부터 잘 내딛는 것이지요. 그것이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새로운 보람이에요.\"
스님은 일요일마다 법회도 하고 불명도 지어주고 참선도 시키면서 불자의 기본 자세를 갖추게 해주신다. 서양에서 포교를 하는 것에 있어 가장 장애인 것은 언어란다. 밴쿠버에 달라이 라마 스님이 오셔서 수많은 인파가 모인 적이 있는데, 그곳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백인이었단다. 영어를 잘 하는 젊은 스님들로 인해 상통만 된다면 불교가 널리 펼쳐질 곳이라고 생각하신다.
\"서구인들이 일찌감치 물질적인 면에서 동양을 앞서고, 이 지구상에서 편안함을 먼저 추구했지요. 그런데 그 물질이란 것은 시공간적으로 한계가 있어요. 한시적이고 유한한 것이지요. 그에 비해 동양의 정신세계는 무한해요. 그들이 이것에 매료되는 것이지요.\"
서양 문물에 젖은 우리 젊은이들은 화려해지는 것을 동경하고 그럴수록 더 앞 선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그 행복은 한시적이란 말씀이다. 그 젊은이들에게 무한한 불교의 최상의 도리를 가르쳐 줄 수만 있다면 놀라워 할 것이라고, 호감을 갖고 접근할 것이라고 스님은 말씀하신다. 서양의 물질문명에서 발을 채 빼지 못하는 내게 스님이 말씀하신다.
\"선용기심善用其心하세요. 요새 헐떡거리며 살아가는 우리 중생계에 치료법으로 그 이상의 것이 없어요. 그 이상의 길이 없어요.\"
어느 새 찻잔에 가을저녁의 어둠이 스며든다. 스님이 훌쩍 그 어둠을 몸속에 털어 넣으신다. 어느새 사라지고 마는 어둠, 그 자리에 스님은 여여히 앉아 계시다. 그리고 그 곁엔 홀연히 걸음을 옮기신 은사 스님도 앉아 계시다. 앞서고 뒤따르며 같은 길을 가시는 두 분의 걸음이 이 가을 저녁 참 여여하시다. 문득 창밖을 보며 말씀하신다.
\"내가 따르고 배워야 할 스님의 말씀은 한이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