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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같은 것이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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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조덕순┃풀꽃 갤러리 2012년 12월 370호

새해인가 싶더니 벌써 12월이다.
12월에는 오랜 세월 나와 같이 풀꽃세상을 만들어 나간 꽃들과 함께 겨울의 긴 휴식을 맞이 할 준비를 한다. 뿌리가 꽉 찬 분盆은 뿌리를 손질 해 주고 가지가 무성한 분들은 가지치기를 해준다.

일년초의 꽃들은 씨만 받아 두고 여러해살이의 꽃들의 성장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분속의 뿌리를 잘 정리해주어 다음 해에는 또 다른 모습. 더욱 깊은 느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꽃과 함께 다가오는 날들을 준비한다.
수많은 분들을 하나하나 손질하다 보면 12월은 꽃이 주는 아름다움 보다는 꽃이 지고 난 빈 모습의 여유로움, 지난날의 이야기, 다시 꽃 피울 새로운 날들에 대한 설레임이 있어 좋다. 또한 분 위의 풍경이 사라진 빈 모습은 분 위의 세상이 아닌 분 밑의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어 가슴 따뜻해지는 날들이기도 하다.
함께 하는 많은 꽃들 중에 오색조팝 이라는 작은 꽃나무가 있다.
이른 봄 4월에는 아주 작은 4장의 하얀 홑잎 꽃들이 가느다란 가지에 매달려 청초하게 피어나고, 가을에는 자그마한 잎들이 진 주홍빛으로 물들어 그 꽃이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움을 우리들에게 깊게 전해준다.
양손바닥 정도의 둥근 분속에서 몇 해를 자라 온 오색조팝을 겨울이 오기 전에 분갈이를 했다. 분을 열어 보니 뿌리가 돌덩이처럼 굳어 있었다. 딱딱하게 굳은 흙과 뿌리를 조심스레 정리 해 주고 나니 크게만 보이던 뿌리가 한줌 밖에 되지 않았다.
뿌리를 둘로 나누어 길게 펼쳐 보았다.
펼쳐 만 놓아도 여유로워 보이는 오색조팝을 얕고 납작한 긴 네모 분에 두 나무로 나누어 자리를 잡아 심어놓고 그 중간에 납작하고 편안해 보이는 돌도 하나 곁들여 놓았다. 살짝 늘어진 가지하며 돌과 어우러진 모습이 작은 숲속에 와 있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지난 번 둥근 분 속의 모습하고는 전혀 다른 느낌의 여유로움이 분 전체에 가득하다.
아직도 진 주홍빛으로 물들어 있는 작은 나뭇잎들이 천상의 소리를 내며 살포시 내려앉고, 잎이 내려 앉은 그 가지 위에는 벌써 작은 새싹들이 움트고 있었다. 작은 나뭇가지 사이의 돌 위에는 또 다른 내가 편안히 앉아 떨어지는 나뭇잎들을 바라보며 그 순간을 온전히 느끼고 있었다.
내가 심어 놓고 내가 반해서 한참을 바라보다 소리 없이 웃고, 또 한참을 바라보다 소리 없이 웃고, 그런 나를 바라보며 또 소리 없이 웃는다.
작은 꽃 한 송이가 누군가의 손길에 따라 성장하고 변화 해 가는 모습들. 20년을 넘게 꽃과 살아 온 나의 모습 속에도 분명 함께 있으리라.
가만히 들여다보면 하나의 작은 분 속에 온 우주의 법칙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이제 이 꽃들은 자연이 주는 바람과 햇살을 받으며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즐거워 하면서 더욱 풍요롭게 피어 날 것이다.
아주 오래전에 \"떠나보내기\" 라는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그 글 중에, 될 수만 있다면 제대로 물들지 못하고 떨어져 내리는 나뭇잎이 아니기를…
될 수만 있다면 곱게 곱게 물들어서 떠나보낸 빈자리도 아름다운 모습이기를…
몸과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살다 보면 우리 모두의 삶이 곱게 물들어서 떠나 보낸 빈자리도 아름답게 되지 않을까.

12월에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거리를 누비고 구세군의 자선남비 종소리가 차가운 바람을 가르며 울려 퍼진다. 이 모든 것이 너와 나의 삶을 한번 되돌아보고 보다 나은 내일을 향해 다음세대 까지 이어질 울림이려니. 풀꽃…그리고…아소
세월의 흘러감 속에서 지금 내가 사랑하며 살아가는 작은 풍경이다.

평소 내가 존경하는 어느 분이 화엄경 십지품중에 아소지락我所志樂이라는 글귀가 있다고 했다. 꽃과 함께 하는 내 삶의 모습이 그와 같다고 말씀하셨다. 언제나 나의 꽃세계를 깊은 눈으로 보아 주시는 그 마음에 늘 감사한다.
아울러 알게, 모르게 주변에서 마음을 보태어 주시는 분들에게도 감사하고 싶다.

아소지락我所志樂 - 내가 뜻을 두고 즐거워 하는 바는
일체세간一切世間 - 일체세간에
무여등자無與等者 - 더불어 같은 것이 없는데
하황유승何況有陞 - 어찌 하물며 더 나은 것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