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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크리스마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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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장선아┃한국화가 2012년 12월 370호

나 어렸을적, 우리들의 어렸을 적 시골 동네에는 의례 기다란 십자가의 뱃지를 단 건물들이 하나씩 있었다. 누구나가 한번씩은 그 곳이 무엇인지도 무엇을 말하는지도 모른채로 그 곳에 들락거린 곤 했을 것이다. 특히 연말이 다가오면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그 곳에서는 재미난 놀이와 발표를 하고 맛난것을 먹고 반짝거리는 이쁜 트리를 볼 수 있다는 유혹으로 어린 아이들을, 사람들을, 우리들을 이끌어들이곤 했던 것이다.
어느 크리스마스엔 잘 하지도 못하는 노래로 합창반에 들어 크리스마스 캐롤 발표를 준비하기도 했었고 어느 크리스마스엔 연극반에 들어 부족한 끼를 발산하며 동방박사의 역할을 하느라 낑낑거리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 가장 아팠던 그 기억은 내 학창시절의 기억을 어느 정도 기억상실증에 걸리게끔 그렇게 나를 오랜 시간 마음의 굴레에 묶어 놓았던 그런 기억이었다. 다른 좋은 크리스마스의 추억들을 송두리째 뺏아가 버리고 잃어버리게 만들만큼 그 시절의 그 기억은 내게 아픈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이 글을 씀으로서 그 기억들을 걸러 아픔을 상쇄시키고 더 나은 기억들과 버물어 나를 치유하고 그녀를 이제야 자유롭게 놓아주려 한다. 그러나 나는 감히 용서라는 말은 쓰지 않으려 한다.인간에게 있을 누구나의 허물들에 지금 생각하면 그 큼과 작음을 따져 무엇에 쓰겠는가?

다만 나의 소중한 친구였던 그녀가 내게 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인간의 기본적인 욕심에서 비롯된 행동들을 나는 내 안으로만 상기시키며 인간이기에 그럴 수 있었다는 거 그리고 나는 또한 인간이기에 그 친구를 계속 믿었고 나중에는 더 큰 실망의 허탈함속에 그 즈음의 기억들을 되 뇌이지 않게 되었다는 거만 여기에서 말하며 그 때의 나를 그 수렁에서 꺼낸다. 꺼낸다 해서 다 꺼낼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두고 두고 다시 꺼내 나 자신 속에도 모든 인간 속에도 내재되어 있는 인간의 물욕과 또 다른 욕심들의 끝이 없음과 허망함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일이다. 굳이 불교의 무소유를 논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끝 없는 욕망과 거기에서 비롯되는 고통의 바다에 대해서 다시 말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인간의 삶 순간순간이 작은 욕망과 크고 작은 갈망과 바람속에 이루어져 간다는 것을 우리들은 모두 묵인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 친구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잘 지내고 있을까?
내게 준 상처는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아니 그 아이에게도 그것은 아마 상처가 되었으리라 믿어 본다. 자신에 대한 실망과 자책이 있었을 것이고 그 시기를 뛰어 넘어 더 바람직한 삶을 만들어 살아가고 있으리라 믿어 보려 한다.

그리하여 진정 내게 크리스마스는 진짜 크리스마스는 그 한참 후의 명동성당에서의 일들도 아니고
그 아주 아주 오랜 후의 해인사에서의 일들이 되었다. 크리스마스는 성탄절이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우리 살아가는 인생에 있어서의 아주 가끔의 ‘기쁨들의 한 보따리’라는 의미도 있을 것이기에..

15년전쯤에 해인사와 이러저러한 소중한 인연들로 맺어진 이 후 내가 거닌 해인사에서의 발걸음들이 진심으로 내게는 크리스마스(기쁨들의 한 보따리)라 여긴다.
해인의 크리스마스는 알록달록 가을 해인의 담장들에도 있었고 봄의 화사함과 여름의 푸른 계곡물 사이에도 있었지만 가장 거대한 해인의 크리스마스는 어느 늦은 겨울과 초봄사이의 그 날이었다.

여러해 전의 그 날 역시 인천에 사는 나와 나의 어린 아들은 이른 아침부터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기차를 타고 다시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하루종일 걸려 해인사로 향했다.
십여년이 넘게 해인사를 다니고 또 다녔지만 오래전 늦가을 바람같은 눈발이 흩날렸던 거 말고는 소복한 진정한 눈을 보기는 힘들었는데 그 날! 그 마지막 버스에서 내려 해인사로 들어가려는 그 순간 하얀 눈이 햇살처럼 빛이 되어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봄에 가까운 시기여서 전혀 기대 못했는데..
투덜거리는 초등학생 아들을 데리고 오느라 먼 길 힘들었는데 어깨를 다독여주듯이 내 아들이 좋아하는 눈이 내가 좋아하는 하얀 눈이 내려주는 것이다.
그 순간부터 온통 해인의 숲은 가야산은 하얀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점점 눈은 쌓이고 쌓여서 우리들이 머문 이틀 밤 사이를 온통 하아얀 눈 세상으로 만들어 우리들을 감싸 안아 주었다. 그것이 진정 내게는 예기치 않은 가장 큰 기쁨의 덩어리인 크리스마스 였던 것이다.

내겐 부처님을 뵌 듯 행복한 날이었고 관세음보살이 내 마음 안에 들어온 듯한 날이었다. 나는 늘 하듯이 예불시간마다 참석하고 묵언으로 공양을 하고 108배를 하고 또 하여 마음을 비우고 비우며 속세에 찌든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기에 여념이 없다가, 설경을 찍고 작은 스케치를 하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고 나의 아들은 그 하얀 눈과의 놀이 속에 빠졌지만 그 여느때와는 다른 따스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때의 인연으로 해인은 내게 무렴지라는 법명도 안겨 주었다.

온통 해인의 숲을 하얀 눈으로 덮고 덮어서 버스도 오가지 못할 정도였던 그 이틀은 내가 천배를 다하고 아들이 눈놀이에 좀 싫증을 내고 이제 해인을 떠나야 할 때 즈음 마침 강한 햇살이 내리더니 살며시 그 눈길을 녹게 해 주었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자연과 버물어진 부처님과의 해인사의 순간들은 내게 부처님의 가피라는 말이 적절한 그 자체로 마음과 영혼의 치유의 시간들이 되었던 것이다. 십오년 전쯤의 오대산 적멸보궁에서의 며칠간의 강렬한 기도에 버금가는 소박하지만 귀하고 꿈 같은 일이었던 것이다.
누가 뭐래도 내게 샘솟듯 가슴 벅차오르는 기쁨 덩어리는 그 때 그 순간들이었다.내 생애의 최고의 선물인 나의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였으니 더욱 가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