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결제 때 문수는 세 곳을 돌면서 안거를 합니다. 이 말을 들은 가섭은 구순九旬의 금족禁足기간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따라서 대중공사를 통해 시비를 가리고자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대중을 운집시키기 위해 종을 치려고 종 망치를 잡으려고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때 백천만억 문수가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섭은 이에 아랑곳하지 하지 않고 다시 망치를 들고자 하였으나 그것은 마룻바닥에 붙어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가섭은 자신이 가진 온갖 신통력을 동원하여 들어 올리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종 망치는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는 무수한 문수 중에 어떤 문수를 대중공사에 회부하려고 하느냐?”
이에 가섭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문수는 궁궐과 학교 그리고 시장바닥에서 각각 한 달씩 안거를 했습니다. 그리하여 각각의 장소에서 오백명의 대중들로 하여금 모두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에서 물러남이 없는 최고의 올바른 도의 경지에 이르도록 만든 것입니다. 알고 보면 문수가 세 곳에서 안거를 마쳤다는 것은 무한한 금색세계를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중생들에게 드러내 보인 것입니다. 하지만 가섭조차도 그것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가섭의 진정한 뜻은 눈 어두운 중생을 대신하여 스스로 눈이 어두운 것처럼 방편으로 보인 자비심인 것입니다. 문수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이렇게 어리석은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선지식께서 보살의 마음으로 일부러 지어보인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어쨌거나 큰코끼리는 토끼가 다니는 샛길에서 놀지 않는 법입니다. 제비와 참새가 어찌 큰기러기의 뜻을 제대로 헤아릴 수가 있겠습니까? 눈 뜬이가 보면 온 세계가 문수이며 또 동시에 온 세계가 가섭입니다. 하지만 또 서로가 서로에 대하여 각각 엄연히 구별되는 도리가 함께 있는 법입니다. 결국 안목이 제대로 열리지 않으면 문수의 뜻도 가섭의 뜻도 제대로 알아차리기 어렵다고 할 것입니다.
이 광경을 보고 장령수탁長靈守卓 선사는 법상에서 주장자를 안고 대중을 위해 말했습니다.
“만약 내가 이 주장자를 들고 있으면 그대들은 보현의 문 안에 얽매인 몸을 벗어나는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어서 선사는 주장자를 내려놓으면서 말했습니다.
“만일 내가 주장자를 내려놓게 된다면 그대들은 문수의 문안에서 머리를 숙이고 들어갈 길을 찾도록 만들 것이다.”
그리고 한참동안 양구良久한 후에 또다시 말했습니다.
“만약 주장자를 들지도 않고 또 내려놓지도 않는다면 그대들로 하여금 비로자나 부처님의 세계 안에서
나오지도 않고 또 들어가지도 않으면서 큰 자재로움을 얻도록 할 것이다.”
모든 색色이 눈의 장애가 되지 않으니 문수의 문門 안에서 지혜의 기틀을 일으킵니다. 모든 소리가 귀의 장애가 되지 않으니 관음觀音의 문 안에서 훤히 통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모든 작용이 몸의 속박이 되지않고 모든 응용이 사실을 등지지 않으니 곧 보현의 문 안에서 자유롭게 나오고 자유롭게 들어갑니다.
진정한 납자는 비로자나부처님의 상투를 자를만한, 관세음보살의 팔을 끊을만한, 문수보살의 눈을 도려낼만한, 보현보살의 다리를 부러뜨릴만한, 유마거사의 자리를 부술만한, 가섭의 가사를 능히 불태울 수 있을 만한 커다란 기개를 절대로 잃지 말아야 합니다. 동시에 오직 화두만을 용맹스럽게 붙들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본인本仁 선사에게 어떤 납자가 물었습니다.
“문수와 보현 그리고 만법은 모두 같은 근원이라고 합니다. 문수와 보현은 절대로 묻지 않겠습니다.
그렇다면 같은 근원을 가진 법이란 도대체 어떤 것입니까?”
그러자 선사는 태연자약하게 대답했습니다.
“오히려 문수와 보현을 물어야 했느니라.”
제대로 알고 보면 모든 답은 문수와 보현 속에 있는 것입니다. 문수와 보현을 떠나서 문수와 보현을 찾는 것은 물을 떠나 파도를 구하려는 것과 다름이 없는 일입니다.
문수가 삼처三處에 나툰 것은 그대로가 삼처전심三處傳心입니다.
궁궐과 학교 그리고 시장은 별다른 것이 아니라 알고보면 바로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가르킨 것입니다. 오백개의 탐욕심과 오백개의 짜증내는 마음과 오백개의 어리석은 마음을 잘 다스리면서 제대로 안거를 한 것입니다. 백천만억의 문수를 나타낸 것은 모든 불보살을 안착시킨 것이며, 또 역대조사를 안착시킨 일이며, 일체중생을 안착토록 한 것입니다. 가섭이 망치를 들 수 없었던 것도 제대로 된 안목으로 살펴본다면 꽃을 다치지 않도록 하여 꿀을 더욱 많이 만들기 위한 방편이었던 것입니다.
동안거 결제입니다. 부처님 당시부터 오늘까지 2600여년 동안 결제는 이어져 왔습니다. 결제는 우리의 본분사입니다. 결제를 위하여 가람이 있고 결제를 위하여 공양이 있습니다. 결제를 위하여 가사장삼을 수하고 결제를 위하여 신발을 신습니다. 결제를 위하여 잠을 잤고 결제를 위하여 숨을 쉬고 있습니다. 본분납자가 공부를 떠난다고 하는 것은 물고기가 물에서 떠나는 일과 같을 것입니다.
일년 365일이 결제 아닌 날이 없겠습니다만 특별히 결제일을 정하여 일주문을 잠그고 정진에만 오롯히 전념토록 한 것은 말법시대 하근기를 위한 부처님과 역대조사의 대자비심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문수가 문 밖에 서있는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문수여! 어째서 문안으로 들어오지 않는가?”
이에 문수는 말했습니다.
“부처님! 저는 일법一法도 문 밖에 있는 것을 보지 못했거늘, 어찌 저를 문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십니까?”
삼처三處가 아니라 그 어떤 곳에서 수천수만의 문수가 나타난다고 할지라도 안목이 열리지 않으면 절대로 한 명의 문수조차 만날 수 없는 법입니다. 동안거 결제대중은 탐진치 삼독이 만들어낸 천오백가지 번뇌를 단박에 제거하여 자기 안의 문수지혜를 현현케 한다면 문수의 삼처三處가 문 밖의 일인지 문 안의 일인지 명명백백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입림부동단초入林不動單草요
입수불양일파入水不揚一波로다
숲속에 들어가도 풀잎 한 개 흔들지 않고
물에 들어가도 물결 한 줄기 일으키지 않는구나.
불기2556(2012)년 동안거 결제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