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계牧溪, <관음도觀音圖>, 비단에 수묵, 172.4×98.8㎝, 일본 교토 다이도쿠지 소장.
지난 주 출장이 있어 일본 교토에 다녀왔다. 현재 참여하고 있는 과제의 하나로 일본에 있는 한국 불화들을 조사하기 위해서이다. 작년부터 시작해서 여러 점의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 불화들을 직접 보고, 사진도 찍어 기록하면서 내 눈과 머리는 한 번에 몰아서 전에 없는 호강을 누리고 있다.
그러다보면 과외의 소득도 있는데, 그것이 바로 여기에 있는 다이도쿠지(大德寺)에 소장되어 있는 관음보살도를 보게 된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여기에 연재하고 있는 그림은 나 역시 주로 도록을 이용하여 공부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요즘에는 도록이 워낙 좋긴 하지만 실제로 보았을 때의 느낌에는 절대 미치지 못한다. 백 개의 도판圖版이 실제 작품을 하나 보느니만 못한 것이다.
마침 다이도쿠지에서는 소장하고 있는 중요 보물들을 전시를 하고 있었다(그래서 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도록을 통해서만 보던 작품이었는데, 실제로 보니 감개무량이었다. 우리나라 고려시대 수월관음도도 3점이나 소장하고 그 중에 두 점을 전시해 놓고 있었다. 나에게 고려 수월관음도는 물론 중요한 작품이지만, 그럼에도 그보다 목계牧溪의 작품들에 더 마음과 눈이 머물렀다. 그 그림들을 실제로 보지도 않고 글을 팔아먹은 것이 아, 벌써 몇 해, 몇 번이던가. 목계의 대표작인 <학, 원숭이, 관음보살>과 함께 바로 이 <관음도>는 내가 머릿속에 그렸던 것 보다 훨씬 더 크고 섬세했다.
수묵만으로 큰 화면에 섬세하면서도 짜임새 있게 본질을 드러내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일체의 채색을 배제하고 먹으로만 그 형상을 그려내었다. 고요한 어느 산을 배경으로 정좌한 백의관음의 모습은 바다 위 보타낙가산에서 중생들의 온갖 발원을 듣고 계신 모습과는 다르다. 화려한 보좌 위 보살이 아닌 상구보리上求菩提를 추구하는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다. 화려한 관음보살을 이렇게 수묵으로 그린 것은 채색의 관음도를 통해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와 다른 메시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바위 위에 관음보살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한 것이 이제껏 알려진 자비의 화현의 모습이 아닌 것이다. 그림에 드러난 분위기는 고요하며 정갈하다. 보살은 연화의 화려한 보좌가 아닌 풀 섶을 깔고 앉았으며 손을 모아 가부좌한 자세에 시선은 단정하게 가다듬었다. 차가운 연못을 향하는 눈빛 표현만으로 보살의 수행을 이로써 완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그림이 만약 화려한 채색의 관음보살이었다면 아무리 보살이 풀방석에 앉았다 하더라도 보살의 수행자적 풍모는 절대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같은 도상의 관음보살도라도 그 재료와 기법의 차이만으로 전해지는 메시지는 사뭇 다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마치 보살의 평상시 갖춰야할 모습을 제시한 것처럼 보인다. 목계스님은 역시 보리를 구하고 도를 이루는 일이 우선이라고 하는 가르침을 그림으로써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림을 보고 있는 사이 밖으로 흩어진 마음을 그림으로 돌리고 다시 시선을 안으로 향하게 된다.
소동파(蘇軾)는 인물을 묘사함에 있어 그 정신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 가운데서 은밀히 살핀다’고 하였는데 그 이유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표정을 찾아 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실제로 이 그림을 보니 관음보살은 자연스럽고 단정한 눈빛을 통하여 보는 이의 마음을 차분하고 고요하게 공부의 마음이 들도록 하는 힘이 있다고 느꼈다. 이처럼 간혹 답사에서 만나는 의외의 소득은 늘 나를 즐겁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