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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나’의 경계에 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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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어 - 정인경┃철학박사 2012년 11월 369호

시험을 통과하는 유일한 길은 그 시험에 도전하는 일이다.
다른 길은 있을 수 없다. - 당당한 검은 백조 -

1. 여행을 가고 싶다.

비오는 월요일 아침인데도 고속도로에는 관광버스가 줄지어 달리고 있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부럽다. 세상의 시계는 가을인데, 회색 겨울이 오기 전 찬란한 빛과 황홀한 색이 펼쳐져 있는 계절인데도 일터로 가고 있는 내가 안쓰러웠다. ‘그래 나도 떠나야지. 아주 멀리 오랫동안 떠나야지.’하고 다짐을 한다. 하지만 이번 가을도, 어쩜 내년 가을도 힘들 것이다.
여행이란 뭘까? 왜 사람들은 떠나고 싶어 하고, 그래서 떠났다가, 결국은 왜 돌아올까? 어디엔들 이곳과 그리 다른 삶이 있을까 싶어도, 이곳의 삶이 범접하지 못한 장소와 시간이 있기 마련이다. 그곳에 가면, 우리는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동시에 “지난한 삶을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를 깨닫는다.
나도 한번은 그런 시간과 장소에 있었다.

2. 쾰른 대성당에서 ‘나’의 경계에 서 보다.

쾰른 대성당은 나의 첫 번째 외국 여행에서의 첫 볼거리였다.
쾰른 대성당을 마주했을 때, 건물이 아니라 검은 산 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천년의 종소리를 머금은 건축물은 “자연 그대로의 계시”와도 같았다. 인간인 우리가 그것을 지은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를 움직여 그 자신을 존재케 한 것처럼 느껴졌다. 성당 앞에서 나는 한참을 나무처럼 서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욕망의 잔가지들이 내 몸을 뒤틀리게 할 수 없었다.
옆에 서 있었던 친구가 바닥에 누워서 성당을 볼까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성당을 잘림 없이 보려면 그렇게 하라고 여행안내 책에서 읽었다고 했다. 그 때 이미 나는 평소의 내가 아니었다. 창피하다는 것이 못할 이유는 아니었다. 사람들에게 폐를 끼친다는 것이 안할 이유도 아니었다. 바닥이 더럽다는 것이 피할 이유도 아니었다. 시장보다도 더 붐비는 광장 한복판에 벌러덩 누웠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심지어 몇몇 여행자들도 우리 옆에 같이 누워 감탄사를 연발했다. 내가 내 친구의 손을 잡은 것처럼 내 옆에 누운 여행자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이 상처받은 새처럼 움찔했다. 성당 끝 장엄한 하늘을 보던 눈을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손이 이내 부드럽게 변해 내 손을 살포시 쥐어 주었다. 그도 옆 사람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 주었을 것이다. 그에게 손을 준 어떤 이도 그처럼 했을 것이다. 넓고 크고 깊게 비어있는 광장에서 우리는 작은 새들처럼 순진하고 열려진 가슴을 가졌다. 그 가슴으로 삶에 대한 사랑이 들어 왔다.
내 마음 속에 사랑이 들어오자 새로운 인생을 향해 나아갈 힘이 솟아났다. 그리고 나에게 증명하고 싶었다, 내가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고소공포증을 가졌다. 쾰른성당 꼭대기까지 올라 갈 수 없는 나를 위해 친구는 차라리 제일 낮은 데서 몸을 최대한으로 낮추어 주었던 것이다. 조금이라도 아래가 보이는 높은 곳에서 나는 딱딱하게 굳어 버린다. 손발은 마비된 듯이 움직여 지지 않는데 심장은 미친 듯이 뛴다. 어지럽고 식은땀이 나고 죽을 것 같다. 심지어 초등학교 때 단체 기합으로 책상 위에 올라가 서 있어야하는 벌을 받았지만, 책상도 못 올라가고 울어서 혼자 바닥에 무릎 꿇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그리 문제될 것은 없었다. 학교는 5층 이하였고, 우리 집도 2층이었다. 밑이 보이는 높은 곳에만 올라가지 않으면 되었다. 창가는 절대 금물이었다. 건물이나 비행기에서 안쪽이나 복도 쪽에 앉아 밀폐된 공간에 갇혀 있는 느낌을 가지면 괜찮았다. 나에게 높은 곳은 꿈의 장소였다. ‘높은 곳에 오르면 하늘은 얼마만큼 깊을까?’, ‘높은 곳에 서면 바람은 어떻게 흩어질까?’, ‘높은 곳에 있으면 푸른 빛 달은 얼마나 낮게 뜰까?’…. 이 모든 것을 전혀 알 수 없었고 그저 꿈만 꾸게 되어버린 것이 묘한 상실감과 더불어 깊은 동경이 되었다.
그런데 지상에서 행복하기를 바라기 위해서는 내 눈 앞에 서 있는 저 높은 성당을 올라가야 할 것 같았다. 동경은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촛불과도 같은 용기를 갖게 했다. 이 불을 일으키느냐, 사그라지게 하느냐는 전적으로 내 의지의 문제였다. 한참동안 성당 입구에서 망설였다. 도대체 내가 왜 성당 끝까지 오르려하는지를 물었다.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그래야만 했다. 드디어 안으로 들어왔을 때, 오래된 건물 특유의 바다 냄새와도 같은 비린내가 났다. 나는 삶을 걸고 한 계단 한 계단 하늘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 발 한 발 죽음이라는 심연을 향해 떨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반쯤 올랐을 때, 친구의 손을 놓았다. 나를 위해 함께 더러운 바닥에 누웠던 그 손을 놓았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그래야만 했다. 갓난아이가 계단을 오를 때처럼 한 계단에 먼저 한발을 놓고 나머지 한발을 그 계단에 올려놓으면서 걸었다. 나는 모든 순간을 존중해야했다. 모든 감각과 정념을 발바닥에 집중해서 몸을 성당에 밀착시켜야했다. ‘순간’을 놓친다면 심연으로의 삶의 실종이 있을 뿐이었다. 막바지 지점에서 포기해야 할 사태가 생겼다. 내 앞에 남아 있는 계단은 보수 중인 돌계단 위에 임시로 만든 나무 계단이었다. 그런데 이 계단은 계단과 계단사이를 막아 놓지 않아서 아래가 보였다. 친구는 위에 가 봤자 볼 것 없다면서 같이 내려가자고 했다. 나는 끝까지 올라가기 전까지는 내려갈 수 없었다. 그 때 나는 실제 내 인생보다 더 큰 인생을 걸고 싶었던 것 같다. 아니면 그냥 목숨을 걸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올라가야만 했다. 그래서 그때 나는 아무도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맨 처음에는 얼굴을 벽 쪽으로 돌리고 양손으로 벽을 집어 가면서 한발 한발 나무 계단을 올랐다. 이미 겉옷까지 식은땀에 젖었다. 몸에 전율과 경련이 왔다. 무릎은 풀려서 다리가 후들거렸다. 숨이 거칠게 몰아 닥쳤다. 나는 나를 이 지경까지 세워 본적은 없었다. 발작이라는 것을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두려움보다는 성당의 끝에 가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다. 높은 곳에 대한 두려움이 꿈의 장소에 가고 싶은 열정을 다 잡아 먹을 수는 없었다. 한 가닥 남은 열정은 나를 두 손과 두 발로 기게 했다. 그래도 나는 창피하지 않았다. 내 친구가 앞에서 길을 열어 주었다. 누군가가 옆에서 내 기는 속도에 맞추어서 걸어 주었다.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외로운 짐승처럼 올라가고 있었지만, 내 뒤에서 나를 격려하며 와 주고 있는 사람들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기고, 기고 또 기었다.
200 개를 조금 넘는 계단이 가장 먼 모험의 험난한 여정이었다. 눈에 빛이 들어오자 친구가 나를 안아 세워 주었다. 성당의 제일 높은 곳까지 올라 온 것이었다. 친구의 어깨에서 나는 그때까지 살면서 한 번도 울어본 적이 없는 맑고 투명한 눈물을 조용히 흘렸다. 나를 격려해 주며 올라온 처음 본 친구들도 나를 안아 주었다. 쾰른 대성당 제일 높은 곳에서 다시는 높은 곳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때 그 곳에 서 있는 우리를 우주에서 보았다면, 바다에서 하늘을 향해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들이었을 것이다. 기적이 없는 곳에서 믿음을 갖는 나무들이었을 것이다.

3. 여행자는 삶의 순례자이다.

진정한 여행자는 삶의 순례자여야 한다. 여행지는 안락과 쾌락을 주는 곳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마을에도 즐거움과 편안함이 넘친다. 나는 내 의지가 닿은 그 시간과 장소에서 삶의 근원적인 물음을 듣기를 원한다. 그래서 여행을 떠난다. 마치 성지를 향해 떠난 순례자가 신의 소리를 듣고 싶어 하듯이. 순례자는 성지를 떠나 ‘삶’으로 다시 돌아와 신의 소리를 실제의 것으로 만드는 해답을 찾아야한다. 삶이 살아져도 여전히 풀지 못한 문제에 대한 해답은 ‘삶’안에 파묻혀 있기 때문에 나는 돌아와야 한다. 나는 여행에서 ‘삶’안에 걸어 들어갈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 그리고 여행에서 얻은 물음을 실제의 것으로 만드는 해답을 찾기를 원한다.

나는 삶의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진정한 여행자이고 싶다. 삶의 순례자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