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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산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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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스님의 세계 만행 - 원제스님 2012년 11월 369호

당신의 주위를 돌았습니다.

만행의 시작으로 당신을 만나기로 했고 그래서 중국에 왔습니다. 장체와 시가체, 사가를 지나 험난하고 메마른 고원을 가로지르며 버스에 며칠간 몸을 맡겼습니다. 다르첸에 도착하기 전에 멀리서 바라본 당신은 회색 구름에 몸을 감추고 희미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스님들도 당신의 그런 모습을 보고 차분한 환희심에 젖어들었습니다. 이제 당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을 저희를 쉬이 허락지 않으려 했던 것만 같습니다. 해발 4700미터의 고지에서 잠을 자다 두통이 밀려든 까닭이었습니다. 저는 미리 준비한 두통제를 두 알 먹었습니다. 그러나 효과가 없었습니다. 머리를 사정없이 옥죄는듯한 두통은 새벽의 기운이 어렴풋 솟아날 때까지 몇 시간 동안이나 계속되었습니다. 젊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고산병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과오였습니다. 새벽이 되어 가이드의 조언대로 미리 준비한 압축산소를 마시고 숙소를 나섰습니다. 산소 덕분에 두통의 절반 정도는 가신 듯 했습니다.
무작정 길을 나서 외부코라를 도는 것은 역시 수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두통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산소가 부족한 고산에서의 한걸음 한걸음이 마치 허공에서 5센치쯤 떠 있는 듯 느껴졌습니다. 그럼에도 저를 둘러싼 준엄한 풍광들은 무슨 꿈속에서 다른 세계를 목도하는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제 주위로 해서는 맑은 얼굴로 코라를 도는 티벳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 모두는 헐거워보이는 담요와 음식이 든 보따리를 몸에 매달고는 저를 쳐다보곤 힘찬 걸음으로 앞으로 나갔습니다. 몇몇의 티벳인들은 오체투지를 해가며 그들의 순례를 해나가고 있었습니다. 고산병에는 나이도 없고 체력도 없다는 말이 떠올려질 정도로 젊은 저에게도 첫날의 12킬로 일정은 힘들었습니다. 하물며 나이가 드신 다른 스님들은 어떻겠습니까. 그럼에도 대부분의 노스님들이 외려 저보다 기운차게 앞서 나가셔서 내심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밤 8시가 훌쩍 넘은 산은 그때껏 백야처럼 환했습니다.
한참 잠을 자고 난 뒤에 깨었습니다. 5200미터 고도에 있는 숙소에서의 더욱 심해진 두통때문이었습니다. 손목시계의 시간을 보곤 한참 어리둥절했습니다. 제가 잠에 든 것은 9시 가까이였는데, 시계는 10시 15분을 보여주고 있었기에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단지 한시간 남짓 잠을 잤던 것입니다. 어둠속에서 주섬주섬 두통약을 챙겨먹고 다시 잠을 청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도 잠은 찾아오질 않았습니다. 이전보다 더 심해진 두통은 전혀 가실 기미가 없어 보였습니다. 결국에 잠자기를 포기하고 밖에 나와 숙소 주변을 거닐었습니다. 그러다 당신을 마주보았습니다. 한밤중이었음에도 눈 때문이었는지 당신의 형상이 희끄무레하게 드러났습니다. 앉아서 잠을 자는 야크떼의 낮은 숨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밤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저도 조용하게 한참동안이나 당신을 바라보았습니다. 밀도깊은 침묵이 당신과 나 사이의 거리를 더욱 가깝게 만들었습니다.
다시 숙소 안으로 들어와 잠을 청하려 했지만 더욱 심해진 두통 때문에 도무지 잠은 찾아들질 않았습니다. 시간은 느리게 흘러갔고 숨쉬기마저 더욱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그건 고통이었습니다. 한밤을 뜬눈으로 보냈다는 표현이 제 일생에 생기게 되리란 건 생각지 못했지만, 실제 그랬습니다. 그냥 자리에서 이불을 등지고 앉아 새벽이 오기를 간절하게 기다렸습니다. 산소를 들이키면 적어도 이렇게 완연한 고통이 어느 정도는 줄어들 것이라 기대하면서 동이 트기를 그 오랜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새벽 6시가 되어 가이드를 깨웠습니다. 그러나 저의 간절한 염원과는 반대로 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산소가 떨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허탈한 웃음과 애꿎은 원망이 겹쳐서 일어났습니다. 그나마 상황을 곧잘 받아들이는 제 성격 덕분에, 그냥 가자, 순례 하다 죽으면 그것도 영광 아니겠어, 라고 말하며 비극적인 상황을 의도적으로 희화하며 무마해 버렸습니다.
빠른 포기에도 미덕은 있는 듯 합니다. 5600미터의 눈이 덮인 순례 코스 최고점까지 오르는 힘겨운 일정을 말의 힘을 빌렸고 그 때문에 너무나 손쉽게 마쳤습니다. 그 다음으로 이어진 내리막길은 더욱 쉽게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둘째 날의 20킬로 일정은 마치 한국의 여느 산을 트레킹하는 것처럼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고산병으로 두통이 다시 찾아올 것을 염려했던 것과 정반대로 둘째날에는 평온한 숙면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단 한번도 깨지 않고 6시간을 내리 잘 수 있었으니 새삼스레 숙면에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셋째날은 단지 다르첸의 숙소를 향해 돌아가는 평탄한 길 12킬로의 일정이었습니다. 모든 게 수월했습니다.
마지막 날의 인코라는 당신이 제일 잘 만날 수 있는 곳에 올라갔다 같은 길로 내려오는 비교적 단순한 여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고산에의 등반은 여전히 힘겹게 느껴졌습니다. 끝내 정상에 올랐을 때에도 당신은 우리들에게 온전한 모습을 보여주질 않았습니다. 당신 주위를 두터운 흰구름들이 호위하듯 에워싸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후에 우리가 떠나는 날 청명한 하늘을 배경으로 당신이 또렷하게 나타났을 때, 스님들이 얼마나 아쉬워했던가요. 어찌됐든 당신을 가까이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서서 멀리 한국에서 온 우리 스님들은 함께 예불을 올렸습니다. 예불을 집전하신 노스님께서는 저의 무사안전한 만행을 기원해주셨습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과연 언제쯤 당신을 다시 찾아뵐 수 있을지 저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티벳이라는 거친 땅을 통해서는 아닐 것 같습니다. 언젠가 제 마음자리가 무너질 날이 찾아오거든, 단 한순간도 자리를 떠난 적이 없었다는 무언의 말을 건네며 당신이 환하게 드러나리라 생각합니다. 간단히 인사드리겠습니다. 지금껏 그러셨듯 언제나 마음의 그 자리에서 여여하십시오. 꼭 다시 찾아뵙기를 다짐하겠습니다.
해동 비구 원제 두 손 모아 인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