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학연구소 소장 허정 스님해가 저물어가는 늦은 오후, 사위가 어둑해지는데도 스님은 여전히 동분서주 바쁘시다. 만물에 어둠이 스며들어 한 움큼의 무게가 덧생기니 걸음이 한 보쯤 늦춰지는데 스님은 무엇에 그리 여념이 없으신가. 어둠이 짙어지는 동안 부처님의 제자들은 법당에서 나와 신발을 꿰어 신고 더 깊어진 자신을 보려고 한층 깊어진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순간들이 어찌 소중하지 않을까. 성큼 걸어오신 허정 스님께 여쭙는다.
전생에도 스님이었던 듯 하십니까? 후생에도 스님이면 좋으시겠습니까?
“전생에 안 되어 본 게 어디 있겠습니까. 후생에 안 되어 볼 게 뭐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물으셨다. 네가 짐승으로 태어나서 목이 잘려 죽을 때 흘린 피가 많겠느냐 저 바닷물이 더 많겠느냐. 현명한 제자가 답했다. 윤회하면서 흘린 피가 많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그래, 그렇다. 그러니 전생에 안 되어 본 것이나 후생에 안 되어 볼 것이 무엇이겠느냐는 말씀이다. 그러니 괜스레 전생과 현생을 끼워 맞추지 말라는 말씀이다.“전생에 무엇이었나 찾아보는 것은, 점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의 개념이에요. 전생에 무엇이었으니 지금 이렇게 사는 것이라고 한다면, 고정관념과 선입견 속에서 살게 되는 것이지요. 수많은 전생이 있는데 그 중에서 하나를 꺼내어 지금의 내 상황에 끼워 맞추는 추측의 인과일 뿐이에요.”
중요한 건 전생이나 과거가 어떠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그 전생과 과거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다. 우린 지금 이 순간의 마음으로 과거와 미래를 평가하고 의미를 규정하고 가치를 판단한다. 그러나 지금의 마음이라는 것은 쉽사리 변하는 것이어서, 이 순간의 마음으로 판단하면 전생은 전혀 엉뚱한 의미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부처님께서, 지금 여기에서 있는 그대로 깨어 있으라고,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있는 그대로 사유하라고 하셨어요. 과거는 지나갔을 뿐이고 미래는 오지 않은 것이니 마음을 현재에 두라고 하셨어요. 그것이 바로 번뇌를 끊는 칼입니다.”과거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도 미래를 갈망하며 사는 것도
모두 번뇌다. 마음은 대상에 따라 일어나는데 그 대상이 과거의 것이나 미래의 것이면 그것이 바로 번뇌인 것이다. 허나 그 대상이 지금 여기의 것이면 그것은 번뇌가 아니다. 허정 스님은 여러 스님들이 전생에 대해 말할 것이 아니라 이런 것들에 대해 더 깊이 강조해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스님께 여쭙는다. 여기까지 어찌 오셨습니까? 어떤 연유로 첫 걸음을 옮기셨습니까?“냇물 위의 나뭇잎처럼 흘러 흘러 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테지요.”무얼 꼭 해야겠다고 마음먹어 본 적 없다. 그저 발길 가는 데로 흘러왔다. 불교에 큰 뜻을 두고 첫 걸음을 떼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가 어린 스님을 괴롭혔기 때문이었다.
“우린 태어나서 살다가 죽습니다.‘태어나서 살다가’까지는 알겠는데‘죽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받아들여지지가 않았어요. 아무리 공부를 해도 그 답을 찾지 못해서 절에 가기 위해 부모님께 편지를 써놓고 집을 나왔지요.”외향적이지 못했던 허정 스님은 혼자서 철학서도 읽고 교회도 다녔지만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보니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져버렸다. 열여덟 살의 허정 스님은 불교 공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수덕사로 향했다.
“여든이 된 노스님이 계셨어요. 밤 12시가 넘도록 스님께 가서 질문을 계속 했어요. 저를 한 번도 쫓아내지 않고 얘기를 다 들어주셨어요. 그리고 무언가 명확하게 얘기를 해주시는데 내가 못 알아듣는 거예요.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렇게 수덕사에서 3년을 살고 났는데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계속 절에 머물다 보니 오늘까지 흘러 흘러왔다며 스님은 웃으신다. 출가를 해서는 봉암사 선방에서 두 철을 났는데, 눈물이 날 정도로 힘들었다. 입학금이 없어서 강원에 갈 생각도 없었는데 사형 스님이 공부엔 때가 있다며 입학금을 손에 쥐어주어서 강원에 갔다. 허나 다시 선방이 그리워서 강원에서 나와 10년간 선방에만 머물렀다. 그러고 났는데 깨닫는 것에 대한 희망이 없는 암담한 시절이 찾아왔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 소임없이 마냥 실상사에 머물렀다. 산책길에 도법 스님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끝에 화엄학림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곳의 토론식 수업은 스님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토론을 빙자해서 내가 내 속의 말을 하게끔 해주었어요. 축복 같은 시간이었죠. 요즘 사람들에게 어떤 말이든지 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면 고민은 자연스레 사라진다고 생각해요.”
스님은 말씀하신다. 애정결핍과 욕구불만은 온 인류가 가지고 있는 병이라고.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데 아무도 그것을 충족시켜주지 않는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봐주지 않는다. 말 한 마디로 상처를 받고 생김새로 판단을 하고 좋고 나쁨을 가리는 인간인 이상, 대화와 소통이 중요하다는 말씀이다.
“난 이것이 수행의 첫 단계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화두를 쥐어주고 깨달음을 얻으라니 얼마나 힘든 일이에요.
깨달음을 향해서 돌진하는 것보다, 한발이라도 내딛어서 상대방이 왜 저러한지 이해하고 위로하는 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 같아요.”잠시 눈 돌리고 있는 사이에 가족이 옆에서 눈물 흘리고 있는 세상이다. 친구의 손을 잡아주지 못 한 게 끝끝내 아쉬운 세상이다. 그러니 이 세상엔 서로를 향한, 그리고 내 스스로를 위한 얼마나 많은 위로들이 필요한가. 가을 저녁 홀로인 내 어깨에 소슬히 떨어지는 낙엽처럼 말이다.
스님은 화엄학림을 졸업하고 다시 냇물 위의 나뭇잎처럼 흘러 인도 뿌나 대학으로 갔다. 그곳에서 초기불교를 공부했다. 그러니 허정 스님은 선 공부를 하다가 화엄경을 공부하고 초기불교를 공부한 셈이다.
“불교를 바라보는 관점은 어떤 공부를 했느냐에 따라 달라요. 저는 결과적으로, 전문성은 부족해도 모든 불교를 다 공부한 셈이지요. 그러다보니 의문을 가졌던 많은 것들이 해결됐어요. 역사의 흐름 속에서 바라보면 그맥락이 이해가 되면서, 표현이 다를 뿐이지 그 뜻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쪽에만 치우치지 않은 공부를 했기에 스님은 불학연구소에서 일을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하신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자꾸만 스스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신단다.“스님들이 맥락을 잡아주고 회통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럴 만한 실력을 가진 스님이 없습니다.”그러나 스님에게 기준은 있다. 사상을 공부할 땐 필히 역사 공부를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불교 공부를 위해서는 부처님의 일대기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다.‘불교상용 의례집’을 발간하는 데에 있어서도 전통을 중요시한다면,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온 이후 1,600년의 전통이 아닌 부처님 시대 이후 2,600년의 전통이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스님은 말씀하신다. 현 시대에 불교를 공부하는 스님이나 불자라면 마땅히 혼란스러워야 할 것이라고.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의 율장 사이에서 혼란 스러워하지 않는다면 그 자체가 문제인 것이라고.“이 스님과 저 스님의 성향의 차이가 아니라 이 경전과 저 경전 사이의 문제인 것이죠. 율장의 문제라서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그것의 회통과 융합, 그리고 정체성을 찾아가는 노력들이 필요한 것입니다.”스님은 늘 산사에서 다람쥐들과 지내거나 낯선 여행길에서 낯모를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울살이를 하자니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신다. 그런 스님께 여쭙는다. 늘 이 도시를 떠나고 싶은 중생들은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의지가 강하지 못해 떠나지 못했다면 그렇게 또 떠밀려 가겠지요. 근데 죽을 것 같아도 안 죽어요. 다 살 만한 일이에요.”
스님은 서산 천장암 주지로 계시며 주말이면 그곳에서 또 일을 보신다. 스님이 처음에 주지 소임만 보실 때는 주지 소임이 제일 힘든 줄 알았단다. 그러나 불학연구소 일을 보자니 주지 소임은 일도 아니더란다. 모든 일이 그렇지 않겠느냐 하신다.
“세상 어디에도 완전한 만족은 없어요. 잘나면 잘나서 걱정 못나면 못나서 걱정이지요. 그러니 생각을 과거나 미래에 두지 말고 자기 숨만 먹으면 돼요.”
흘러 흘러 예까지 빈 몸으로 호젓이 걸어오신 스님께 원력을 여쭙는다.
“저는 깨달음을 버렸어요. 그저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려고 합니다.”
‘깨달음을 얻겠다’고 표현하면 그 길로 돌진하게 만든다. 목표가 생겼으니 그곳을 향해 가야만 한다. 성취해야 한다. 그러나‘탐진치를 버리겠다’고 하면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제 자리에서 몸과 마음을 관찰해서 탐욕을 버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것이‘얻는다’와‘버린다’의 차이라고 스님은 말씀하신다. 결국은 같은 이야기인데 이토록 표현이 다르고, 그럼으로써 삶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씀이다.
“잘 살아서 행복해졌으면 좋겠고, 이런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또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허정 스님은 인도 뿌나 대학을 마치고 넉 달 동안 성지 순례를 했다. 8대 성지와 잘 알려지지 않은 곳들을 다니며 그곳에서 부처님이 설하셨던 경전을 읽었다. 그러면서 성지를 제대로 알릴 수 있는 가이드북을 만들었으면 하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스님은 여전히 꿈꾼다. 부처님이 계셨던 곳으로 또 여행을 떠나고 그곳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 부처님의 말씀을 함께 나누기를. 그렇게 흘러 흘러 또 어디든 갈 수 있기를. 그래서 행복한 웃음을 나누고 누구든 더 행복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