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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를 떠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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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무명행자 2012년 11월 369호

00 스님께
스님 안녕하세요. 행자 입니다.
직접 찾아뵙고 말씀 드렸어야 했는데, 이렇게 편지로 대신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직접 찾아뵈려니 도저히 스님께 면목이 서질 않아서요.
얼마 안되는 기간이지만 그동안 신경도 많이 써주시고 스님께서는 모르시겠지만 저에겐 스님의 존재가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배은망덕하게도 여길 떠나네요.
한 달 남짓 지내면서 그동안 생각은 정말 많이 했습니다. 처음 제가 여기 오자마자 다시 가겠다고 했을 때 스님께서는 ‘일주일만 더 해봐라. 그때도 가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다면 직접 데려다 주겠다’고 하셨죠. 아직 사회에 있는 미련을 다 두고 오지 못했다는 말씀과 함께요.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단 하루도 시회에서의 미련을 놓을 수 있었던 날이 없었습니다.
가족 생각은 물론이고 과거의 추억과 친구들 생각, 놀고 싶다,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저를 괴롭게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이곳에 익숙해지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괴로움만 더해가고 미련만 커졌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정말 냉철하게 생각을 했고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스님께 편지를 쓰는 중입니다.
이 정신상태 이 마음가짐으로는 끝까지 이 생활을 못해낼 것만 같았고 설령 행자 생활을 견디더라도 언젠가는 돌아갈 것만 같았습니다.
밖에 있을 땐 남들보다 운동도 잘하고 체력도 자신이 있었고 군대도 좀 더 험난한 곳을 다녀왔기 때문에 그동안 저는 정말 제가 최고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해인사라는 곳에도 뭣 모르고 그냥 덤벼들었고 저라면 쉽게 해내리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서 제 주제를 알게 됐고 정말 말 그대로 하심下心을 마음에 세기고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행자 생활을 하는 동안 스님들께서 저를 볼 때 마다 ‘00 스님이 은사스님이시냐.’ ‘00 스님이 사형이시냐.’ 항상 물으셨고 그때마다 제 마음은 너무나도 괴로웠습니다. 여기서는 00 스님도 00 스님도 많은 스님들께 존경 받는 스님들이신데 마음을 못 잡고 갈팡질팡하는 제 모습이 오버랩 되어 괜히 죄를 짓는 것 같았고 스님들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사실 지금 이렇게 중도 포기 하고 나가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중간에 나가버리면 스님의 입장도 뭐가 될까.’ 정말 많은 고민을 했고 오기와 자존심으로라도 버텨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오기와 자존심만으로 부처님의 제자가 된다는 건 생각보다 너무 어렵네요. 제 그릇이 이것 밖에 안되나 봅니다.
얼마 안되는 기간이지만 그동안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출가하겠다고 큰소리 치고 와놓고 고작 이것 밖에 못해? 나약하고 비겁하고 한심하고 쓸모없는 놈.’ 정말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지금도 사실 너무 괴롭습니다. 꾹 참고 하자니 도저히 마음이 잡히질 않고 그렇다고 나가자니 패배자가 되어 버리는 것만 같고… 하지만 한 번 놓아버린 마음의 끈을 다시 잡는다는 게 생각보다 어려워 결국 포기를 택했습니다.
아마 이건 두고두고 제 마음에서 가시가 되어 저를 괴롭히게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겁 없이 출가하겠다고 덤볐을 때부터 저는 이미 마음에 짐을 지기 시작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사실 제 마음을 잘 모르겠습니다.
떠나고 싶지만 여기가 너무 마음에 들고 얼마 안 되는 기간이지만 동고동락했던 다른 행자들, 아들처럼 대해주시던 보살님들, 그리고 모르는 게 있으면 친절하게 가르쳐 주셨던 스님들과 직원분들도 너무 좋은데 굳이 사회 생각이 계속 나고 이곳 생활에 집중이 안 된다는 이유로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제 마음을 잘 모르겠습니다.
왜 굳이 이 모든 좋은 것들을 두고 떠나려 하는지 떠나려 했으면서 왜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제가 잘 한 선택을 하는 건지 잘못된 선택을 하는 건지를 도통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떠나려 마을을 먹었고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제가 선택한 길에 대해 후회는 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스님, 저는 지금 바로 서울로 올라가서 일을 할 생각입니다. 당분간은 원오 스님도 부모님도 뵙지 않고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지낼 생각입니다.
이것은 괜한 오기를 부리는 게 아니고 부모님과 원오 스님을 뵐 용기가 없어서 일을 하면서 스스로의 길을 찾고 목표와 이상이 뚜렷해질 때 그 분들을 뵐 용기와 면목이 생길 때에 그 분들을 뵙기 위함입니다.
스님 염치없지만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그만둔 것을 은사 스님께는 비밀로 해주셨으면 합니다. 물론 제가 해인사에서 행자생활을 하는 척 하며 살아가겠다는 말이 아니라 제가 직접 편지로 제 마음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직접 제 마음을 담아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그러는 건데 스님께서 판단하시기에 그래도 스님이 말씀을 하셔야 할 것 같다면 저는 스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저보다는 스님께서 더 옳은 판단을 하실 테니까요
하지만 제가 직접 말씀 드리기 전에 은사 스님께서 먼저 아셔서 제게 연락을 하시면 저는 정말 은사 스님께 더욱 죄송스럽고 또 너무 괴로울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스님께 부탁드리는 겁니다. 뭐 판단은 스님께서 하시겠지만요.
스님 속마음 하소연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글이 길어 졌네요. 제가 괘씸하고 한심스럽고 바보 같더라도 부디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짧은 가간이었지만 이곳에 와서 정말 많은 걸 배웠고 많은 추억도 새기고 가는 것 같습니다. 끝은 좋지 못했지만 이 아픔을 거울삼아 사회에서 열심히 살아 보겠습니다. 스님께 다시 한 번 실망시켜드려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스님 그럼 저는 이만 줄이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부디 저를 잊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성불하십시오.


2010년 3월 20일
행자 올림


이 글은 해인사 행자실로 출가하였으나 마음을 이겨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간 행자가 남기고간 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