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불교미술과의 만남, 그리고 나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유마의 방 - 김창균 2012년 11월 369호

나는 고등학교 때 미술대학을 지망하던 한 학생이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일찌감치 초등학교시절부터 장차 나는 미술대학에 가서 서양화를 공부하여 미술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내가 오늘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불교미술을 공부하게 되고 문화재인으로 살아가게 된 계기는 바로 어린 시절 나에게 그림공부를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 때문이었다. 대학 진학에 실패하고 난 후 실의에 빠져있기를 거듭한 이후 입시 준비에 한창이던 어느 날 선생님께서 나에게 동국대학교에 진학하여 불교미술을 공부하면 앞으로 희망이 있을 터이니 진로를 바꾸어보라고 권장하셨다. 그 순간 나는 불교미술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저렇듯 오랜 나의 꿈을 무시해버리시는 것일까 하고 무척 서운했었다. 어렸을 적부터 그토록 한 길만 생각하고 열심히 해왔는데 나는 진정 그림 그리는데 소질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면서 밤을 지새우기를 여러 차례 하였으며, 미술공부에 점점 흥미를 잃어가기까지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큰 혼란기이었으면서도 일생일대의 전환점이었다고 하겠다. 마음 앓이를 심하게 한 끝에 비장한 마음으로 선생님을 찾아가 나에게는 정말 서양화가로서의 소질이 없는지, 도대체 왜 하필이면 잘 알지도 못하는 불교미술을 권하시는지에 대해 여쭈어 보았다. 그러자 선생님께서 한참을 말없이 계시다 공부하는 시간은 결코 길지 않은데 시간과 소질이 아까워 불교미술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보라는 의미였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리하여 많은 생각 끝에 한편으로는 막연하기도 하였으나 불교미술이 무엇인지 알아보기로 마음먹고 잎사귀 다 떨어진 앙상한 나무들로 삭막하기만 하던 동국대학교를 향해 발길을 옮겼다.
드디어 입학 면접을 보는데 교수님 한 분께서 네가 불교미술이 무엇인지는 알고 이 학교에 지원했느냐고 힐책을 하시어, 입시요강이나 입시잡지에 아무런 내용을 보지 못했던 터라 그러면 학교측에서는 불교미술에 대해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홍보를 해본 적이 있는지 되 따져 물었다. 그 상황을 목격한 주변에서들 떨어지려고 작정했느냐고 걱정을 태산 같이 하여 나는 이제 군 입대나 하여야겠구나 하고 넋을 놓은 채 고향으로 돌아 왔다. 그래도 합격자 발표 날을 맞아 행여나 하고 학교측에 연락을 취하였더니 수험번호 25번 김창균이 맞느냐? 합격하였으니 입학 전에 한 번 보았으면 좋겠다고 하여 정신을 차린 뒤 뻥 뚫린 가슴 부여안고 상경하였다. 입학식을 치루고 난 어느 날 불교에 대해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본관 교정에 올라 부처님 상에 고맙다고 넙죽 절을 올리고 나서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현관에 석물들이 진열되어 있던 한 건물을 찾았다. 바로 나와 불교미술과의 본격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던 박물관이었던 것이다. 그저 호기심에 찬 막연한 생각으로 지금은 작고하신 관장님을 찾아뵙고 서양화를 하려다 불교미술을 공부하러 왔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너무나도 반갑게 맞아주신 뒤 이 책 저 책 읽어보라고 권해주셨다. 천방지축 불교미술이 무엇인지, 정말로 해 볼만 하고 재미있는 공부인지, 어디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여쭙고 헤어질 때 󰡒아무 때나 좋으니 틈나는 대로 자주 찾아오게󰡓라고 하신 그 말씀이 끝내 나를 불교미술에 빠지게 하였으며, 오늘의 내가 있게 해준 큰 가르침이 되었다.
내가 학교에 다니던 70년대 중반은 요즘과 달리 교통이 매우 불편했던 시절로 사찰답사 한 번 떠날라치면 완행열차 타고 어느 지점까지 몇 시간 달린 뒤 두세 시간씩 걷기를 일삼았고, 사진기 하나 필름 한 통 제대로 된 것이 없던 시절이라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방학이 되면 전국의 사찰을 발이 부르트게 찾아다녔다. 오전에 강의가 끝나는 주말이면 선․후배, 동료들과 함께 무작정 가까운 서울․경기지역의 절을 찾아 스님께 인사드린 뒤 때 쓰듯 허락을 받아내 밤을 꼬박 세워 조사하고 베껴오느라 정신없었다. 오늘날에는 꿈에라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인 것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으로 무모하고 철없는 행동이었지만 마치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그렇게 새로운 세계를 만나 어릴 적 선생님의 말씀에 감사할 겨를도 없이 좌충우돌 자료를 모았던 것이 지금까지 내가 불교미술에 몸담고 공부할 수 있게 해준 큰 원인이 되었다고 해도 결코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오로지 열정 하나만 가지고 어떻게 하면 현대인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불교미술을 만들어 내고, 그에 대한 이론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토론하며 여러 일들을 겪는 동안 어느덧 한 해 두 해 많은 세월이 흘러 한 참을 지나와버렸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보라고 불교미술과의 만남을 주선해주셨던 선생님의 말씀은 늘 마음 한 구석에 여전하다. 그래서 그런지 불교에서 가장 많이 말해오고 있으며 언제 어디서나 쉽게 들어왔던 󰡐인연󰡑이라는 단어는 무엇과의 만남으로부터 비롯된다고 생각되어 늘 마음에 와 닿는다. 나를 따라 불교미술을 공부하는 제자들에게도 불교미술과의 만남은 결코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 여겨 허투루 생각하지 말고, 시간 나는 대로 절을 찾아 의미를 되새기며 쉼 없이 공부할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그렇듯 불교미술과의 큰 만남 이후 불교미술에 대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알게 되고 이제는 누가 물어오더라도 세상에 나서 대답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요즘 들어, 가끔 나는 그 때 만약에 선생님의 권고를 거부하고 내 고집만 내세웠더라면 지금쯤 나는 무엇이 되어 있으며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만약 불교미술을 만나지 못하고 알지 못했더라면 어쩌면 나는 하루하루 세상 사는데 급급하여 생각 머무른데 없이 그럭저럭 지내오지는 않았을까? 과연 불교미술과의 만남이 없었더라도 나는 과연 세상에서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되어 있을까? 를 생각해보며 큰 숨 내쉬어 볼 때가 있다.
《보적경》의 말씀 가운데
󰡒마음은 환상과 같아 허망한 분별에 의해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마음은 바람과도 같아 붙잡을 수 없으며 모양도 보이지 않는다.
마음은 흐르는 강물과 같아 멈추지 않고 거품은 이내 사라진다.
마음은 불꽃과 같아 인因과 연緣에 닿으면 타오른다.
마음은 번개와 같아 잠시도 머무르지 않고 순간에 소멸한다.
마음은 허공과 같아 뜻밖의 연기로 더렵혀진다.
마음은 원숭이와 같아 잠시도 그대로 있지 못하고 시시각각 움직인다.
마음은 그림 그리는 사람과 같아 온갖 모양을 나타낸다󰡓고 했듯이
우리 오늘 변화무상한 한 생각 한 마음 한데 모으고, 만남의 인연 소중히 여길 줄 안다면 비록 하루를 살더라도 부끄러움 없고 후회 없을 것임을…

---
김창균 님은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교수이며 동국대학교 불교미술문화재조형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전)문화재청 상임 문화재전문위원이었으며 현재 서울특별시 문화재위원,
대전광역시 문화재위원, 경상남도 문화재위원, 대한불교조계종 성보위원,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