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규夏珪 <산수의 열두 풍경> 송(약 1225) 종이에 수묵, 28×230.8㎝,
Kansas city Nelson Atkins museum 소장
‘임술壬戌년 칠월 기망(旣望, 16일)’이라 했으니 소동파蘇東坡가 적벽에 배를 띄운 것이 딱 요즘같은 초가을이었다. 그래서인지 소동파의 적벽부는 이즈음 감상하기에 아주 적당하다. 물론 이 글이 가을의 정취보다는 무상無常한 대자연의 큰 흐름 속에 인생의 허무와 또 그것을 즐기는 법을 이야기 한 글이긴 하지만, 계절의 맛이란 것이 있듯이 인생의 성찰은 주로 가을에 이루어진다.
한참 전 스승께서 적벽부를 송頌하시고, 처음으로 내용과 뜻을 새겨들었던 때는 내가 아직 인생이 무엇인지 잘 모르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큰 우주와 자연에 마음을 두고 노래한 동파선생의 그 구절들이 마음에 와 닿아 그 후로 지금까지 20년간 틈만 나면 스승님께 적벽부를 청한다.
그 때는 “하루살이 같은 인생을 천지간에 잠시 기탁함이 저 푸른 바다의 좁쌀 하나만큼이나 작구나(寄蜉蝣於天地,渺滄海之一粟)”하는 구절에 마음을 두곤 했는데, 지금은 “그대는 아는 가 저 강물과 달을. 흘러가는 저 강물은 이와 같아서 일찍이 흘러가버린 것은 없지만, 차고 기우는 달은 저와 같아 끝내 없어지거나 차오르지 않는다. 변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천지가 일순간에 변치 아니할 수 없지만, 변한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만물와 우리 모두 다함이 없으니 무엇을 부러워하겠는가(客亦知夫水與月乎?逝者如斯,而未嘗往也;盈虛者如彼,而卒莫消長也.蓋將自其變者而觀之,則天地曾不能以一瞬;自其不變者而觀之,則物與我皆盡也,而又何羡乎)”하는 구절이 더 좋다.
지난 호에서 중국 송대에 이르러 사대부와 선사를 비롯한 지식인들의 학문, 사상적 교류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다. 종교로서의 도교는 좀 다른 문제이고, 그보다는 도가道家, 혹은 신선사상과 선불교 사이의 통하는 바를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이다. 문제는 당시 사대부들은 몸은 비록 세상 벼슬자리에 두고 있지만 마음만은 자연과 우주의 천진天眞을 좇으며, 그 자유로움속에 마음을 두고자 한 도가적 정서를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그들은 시, 서, 화(詩, 書, 畵)를 통해 도가적 감성으로 불교의 무상無常을 이야기 하였고, 불교적 이치 속에서 도가의 이상세계에 머물고자 하였다.
송대 이런 대표적인 문인이 바로 앞에서 이야기 한 동파 소식(蘇軾, 1036~1101)이고, 대표작인 적벽부赤壁賦에는 그런 대목대목이 마음을 붙든다. 세상에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결국은 모두 변하고 그렇기 때문에 모두 무궁하다는 논리이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은 불교 철학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세상의 사물은 긴 관점에서 보자면 그 형태가 모두 무상하여 변하지만, 개개가 지닌 본질과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적벽부에서 읊은 것처럼 동정호수의 수파水波와 백로白露, 물 위의 그림자는 모두 형태가 뚜렷이 없지만 사물의 법칙이나 본질(理)은 분명히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림에도 변하지 않는 법칙인 상리를 담아 낼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이것이 소식의 상리常理 이론이다. 모름지기 그림이란 것이 상형常形보다는 상리를 담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이理를 얻은 사람이야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理는 고인高人, 일사逸士가 아니면 구분해 낼 수 없다고 하였다. 이러한 소식의 논리를 따라가보면 자연스럽게 장소는 속세를 떠난 저 산수山水 깊고 맑은 곳이 되고, 자연의 이치를 깨우치는 것이 주업인 고승이나, 도사, 일사이어야만이 제대로 된 자연의 이치를 담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송대 지식인을 대표하는 소식의 이론은 이처럼 도, 불을 모두 담고 있었다. 세상의 진리가 결국 모두 한곳으로 통한다고는 하지만, 이때 고승과 지식인들의 사상과 그 발현 방법에 있어서는 교집합이 매우 많았던 것이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