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자의 서체는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로 크게 다섯 종류로 나뉜다. 전서篆書는 예서와 함께 진한시대까지 널리 사용된 서체로 고문古文, 대전大篆, 소전小篆등의 종류가 있다. 예서隸書는 진나라 때 성행했던 전서의 번잡함을 없애고 한나라 때 널리 유행했던 서체이다. 예서라는 명칭은 당시의 기준 서체였던 전서에 예속된 부차적인 서체라는 뜻이다. 해서楷書는 \'楷\'자가 \'본보기\'나 \'모범\'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듯이 표준으로 삼을 만한 서체라는 의미이다. 위진남북조시대에 그 기틀이 완성된 해서는 동진에는 유명한 왕희지가 있고, 당나라에는 구양순과 안진경이 있다. 행서行書는 규격체로 인해 비능률적인 해서의 단점과 지나친 간략화로 난해한 초서의 단점을 함께 보완하고자 생겨난 서체이다. 행서는 흔히 해서를 조금 흘려서 이어지듯 쓰는 서체라고 하며, 초서와 함께 전서나 예서에 비해 좀더 자유롭고 비정형이기 때문에 글씨의 예술적 영역을 넓히는 주된 역할을 하였다. 초서草書는 극도로 흘려 쓴 서체라는 의미이다. 표의문자의 단점인 서체의 복잡함과 난해함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극도로 흘려서 빠르고 간단하게 쓴 서체를 생각해 낸 것이다. 이 다섯 종류의 서체 가운데 팔만대장경에 사용되어진 서체는 해서체이다. 해서체 중에서 왕희지체나 안진경체보다 당시 고려시대에 유행한 구양순체를 사용 하였다. 해서체의 특징은 예서체의 글자가 다소 가로로 퍼진 형태이지만, 이를 보완하여 다소 세로로 퍼진 형태로 보다 부드러우면서도 글자가 명확하다. 해서체의 가치는 초서나 행서의 지나친 파격을 극복하고 점하나 획하나라도 정확하게 독립시켜 적었다. 팔만대장경판에 글자를 새길 원본인 판하본은 승통 수기스님 등이 초조대장경, 송나라 개보칙판대장경, 요나라 거란대장경, 그리고 국내 사원의 전래 경전 등을 꼼꼼히 대조하여 바로잡은 내용을 기본 텍스트로 삼아 만들었다. 많은 승려지식인과 문인지식인이 같은 글씨체가 될 때까지 충분한 연습을 한 뒤에야 판하본을 만들 수 있었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는 판하본의 사경에 동참하였던 사람들에 대한 일부 명단 기록이 다음과 같이 나온다. 이들의 신분은 승통, 시랑, 재상등 고려시대 품계상 상당한 고위직에 해당하였다. 종실승통 충의, 시랑 박효문, 재상 유공권, 재상 기흥수, 재상 문공유, 학사 장자목, 학사 홍권, 수좌 도휴, 산인 오생, 산인 요연 등으로서 이들은 모두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글씨가 뛰어났다고 하였다. 그래서 조선시대 유명한 명필인 추사 김정희는 팔만대장경의 글씨체를 보고 난 다음 “이는 사람이 쓴 것이 아니라 마치 신선이 내려와서 쓴 것 같다(非肉身之筆 乃仙人之筆)”라고 감탄하였다. 더욱이 오·탈자는 물론 내용상 오류를 찾기 힘들다는 서지학자들의 평가까지 뒤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