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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우와 직녀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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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어 - 정인경┃철학박사 2012년 10월 368호

소울메이트를 일부러 찾아다닐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만약 당신의 소울메이트가 당신의 삶을 통과하게 된다면,
짧은 순간이든 긴 시간이든 반드시 당신과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 로나 번, <수호천사>) -


1. 올 여름은 칠월칠석을 지나 만나다.

“선생님, 올해는 못 보나 했네. 잘 오셨어요.”
“오죽이나 폭염이었어요? 신촌 3층 아줌마 만나러 가야한다고 했는데, 얘들이 이 더위에 어딜 가냐고 말리고서는, 당최 데려다 줄 생각을 안 하는 거야. 예라, 관둬라하고 더위 가실 땔 기다려서 왔지요. 늙으니깐 마음대로 다닐 수가 있어야지. 그런데 이게 무슨 냄새에요? 뭐 태웠어요?”
“말도 마세요! 할아버지께서 불을 내셨잖아! 이젠 방화까지 하시니 저 등쌀에 살이 말라요. 벽이 앞을 막아 답답하다고 하셔서 멀쩡한 벽을 허물고 유리문을 해 드리고, 살림살이 다 버리고 새로 장만하라고 하셔서, 분부대로 따른 게 재작년인데, 벌써 변덕이 나신 거죠.”
아이들이 “3층 아줌마”라고 부르는, 칠월칠석에 딱 한번 보는 예전의 내 이웃이 유리문을 열고 커튼을 젖혔다. 6.25 때 불난 집을 본 이후로 불난 방은 처음 봤다. 제단 아래 부분은 물에 젖어 까맣게 그을려 있고, 윗부분은 거의 형체가 남아 있지 않았다. 제단 위만 탄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3층 아줌마가 모시는 할아버지는 하얀 눈썹이 움직여지나 싶게 천연덕스럽게 걸려있었다. 오른쪽 옆으로 공수를 내릴 때 쓰는 병풍도 그을음하나 없이 멀쩡했다. 방 안으로는 들어 갈수가 없어서 거실에서 할아버지께 인사를 올렸다.
“한 달 전부터 ‘제단이 낡았다. 바꿔라’하셨지만, 들은 척도 안했어요. 한두 푼이 들어야지요. 기도드릴 때는 말할 것도 없고, 낮에 좀 조용히 있고 싶어도 ‘제단이 낡았다’하고 계속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한 보름 전부터는 잠 잘 때도 ‘제단이 낡았다’하고 귀에다 속삭이는 거야. 와, 미치겠더라고. 남편 같으면 예지녁에 이혼했지. 왜 살아! 나흘 전 낮에도 계속 그러시기에 내가 통장을 거실 바닥에 내팽개치고는 “이러고는 못 살아요!”하고 찜질방으로 나가 버렸네. 2시간쯤 지났나? 수위 아저씨한테서 전화가 온 거예요. 우리 집 안방 쪽에서 검은 연기가 나와서 소방차 불렀다고. 빌라 바로 앞에 소방서가 있으니 아주 믿거라 하고 일을 낸 거죠. 제단 위만 살짝 태운 거예요. 소방서에서는 누전이라는데 아무도 전기를 쓰지 않는 빈집에서 웬 누전이요.”
“좀 참고 사시지. 요즘 경기도 안 좋은데…”
“근데, 굿이 잡혔어요.”

2. 예전 205호 선생님이 왔다 가다.

내가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할아버지 집에 와서 점도 보지 않고, 굿도 하지 않는 유일한 손님이다. 선생님은 예전에 아래층 이웃이었고, 지금은 일 년에 한번 칠월칠석에 칠성님이 아니라, 나를 만나러 오는 친구다. 워낙은 선생님의 남편 분 때문에 선생님과 친하게 되었고, 그 댁 자녀도 나를 “3층 아줌마”라고 부르며 이웃으로 받아들어 주었다.
할아버지를 모시고 이사를 들어오는 날, 이삿짐을 나르는 분들이 과연 이삿짐을 풀을 수 있을지를 걱정했다. 할아버지를 몰래 숨겨서 도둑이사를 할 수는 없었다. 할아버지의 그림을 앞으로 들고 한 계단 한 계단 지신밟기를 하면서 올라가야 했다. 수위가 기겁을 하면서 막았다. 내 이삿짐을 본 입주민들은 무당이 이사를 왔다면서 수군거렸다. 상호만 들고 조용히 계단을 오를 것이라고 해도 끝내 입주민들이 막았다. 할아버지는 짐짝처럼 옮겨졌다.
3일 쯤 지난 후, 입주자 대표라는 분이 현관문을 두드렸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오히려 기다리고 있었다. 문을 열자, 훤칠한 미남의 50대 후반 쯤의 남자가 서 있었다. ‘이런 남자는 무당에게 어떤 모진 말을 할까?’ 내가 불쌍해졌다. 그분을 안으로 청했다. 그 당시 할아버지는 현관에 서면 다 보이게끔 거실에 모셔져 계셨다. 그분은 들어오더니, 할아버지에게 큰 절부터 올리는 것이었다. 나를 통해 칠성님의 말을 받으러 오는 사람도 저렇게 구부리지는 않았다. 나를 통해 칠성님의 복을 빌러 오는 사람도 이렇게 엎드리지는 않았다. 그분은 내가 모시고 있는 할아버지를 존중해 주고 있었다. 그분은 할아버지를 섬기고 있는 나를 존중해 주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내가 나를 불쌍하게 여겼던 것이 그분에게 미안했다. 절을 마친 그분께 “감사합니다”하고 인사를 했다. 잘생긴 얼굴에 미소를 지으니 미풍이 이는 듯 했다. 그분은 내가 입주민으로 지켜야할 에티켓 같은 것을 당부했다. 내가 새벽에 징만 치지 않으면 이 빌라에서 이 분의 존중을 받으면서 살 것 같았다.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요즘이 어느 세상인데 무당이 징치고 꽹과리를 분다 말인가. 다만 사람들은 무당인 내가 옆집에 사는 것이 싫은 것이다.
이틀 후 나는 용기를 내서 205호 문을 두드렸다. 그날 선생님을 처음 봤다.
“이사 떡이에요. 떡집에서 방금 왔지요. 상에 올리지 않은 떡이에요.”
“괜찮아요. 상에 올린 떡이면 더 좋죠. 복을 빌고, 소원을 빈 음식인데요. 절에서 떡을 하면, 복떡이라고 금방 동이 나요. 들어오셔서 같이 차 한 잔해요.”
나는 그렇게 무당이 된 후 처음으로 여염집에 초대를 받았고, 여염한 사람과 사귀기 시작했다.

3. 예전 305호 아우님 네를 다녀가다.

3층 아우님과의 인연은 돌아간 남편이 맺어 준 인연이다. 아우님을 일 년에 딱 한번 만난다. 서로 전화도 하지 않는다. 칠월칠석이면 아우님의 집을 방문한다. 아우님이 칠성님을 모시고 있으니 한 해중 가장 기일이지 싶어서다. 아이들은 엄마랑 3층 아줌마가 견우와 직녀냐, 누가 견우고, 누가 직녀야 하면서 놀린다.
아우님은 칠월칠석이면 으레 오려니 해서 내가 좋아하는 찹쌀밥에 온갖 나물을 해 놓고 기다린다. 사실 그날은 점을 보려오는 손님을 안 받는 날이기도 하다.
“선생님이 오시면 할아버지께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세요. 간만에 아주 조용해지는 거지요. 사람들의 길흉화복을 말할 때, 병풍의 그림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말하는데, 병풍의 그림도 정말 하나도 움직이지 않아요. 선생님이 다녀가시는 반나절동안 저는 무당이 아니에요. 칠성님을 모신 저는 칠월칠석이 진짜 국경일이에요. 빨간 날이라고요. 그러니 노는 날은 친구와 신바람 나게 놀아야겠죠.”
“이제 내가 하도 늙어서 잉여로 살고 있나 보네. 그러니 그림도 움직이지 않고, 할아버지도 입을 다무셨나 보지. 그래도 이 늙은이 죽는 날까지 허튼 짓 하지 않게 눈을 뜨고 봐 주십사 부탁해 주시게. 아우님은 아시지 않는가? 내가 마음속에 움직이지 않는 그림을 가지기 까지 얼마나 많이 흔들렸는지를. 늙음이 온 만큼 고요가 왔다면 참 좋은 일이지 싶네.”
우리가 만나는 단 하루 반나절은 어쩌면 짧은 순간일 수도 있지만, 내 아우님은 아주 오랜만에 내가 가져다준 인간의 고요를 즐기고, 나는 사람들의 영혼을 어루만지는 아우님이 펼쳐놓은 성스런 배려를 즐긴다. 그래서 우리는 별로 이야기도 없다. 같이 밥을 먹고, 함께 차를 마시다보면 벌써 서너 시가 되어 내가 일어나려고 짐을 주섬주섬 챙긴다.
우리가 현관 앞에서 하는 예식은 항상 정해져 있다. 내가 신을 다 신고 잘 있으라는 눈빛을 보내면 아우님은 무당은 한 영혼 또는 한 사람과 헤어질 때는 공술을 주어야 하는데 오늘은 휴무일이니 대신 노래를 불러주겠다면서 부채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쓸어가며 복을 빌어준다.
“바람 타시고야 구름 타시고, 무지개 발로 서기지게 발로 하강하야, 인간을 살펴보시고, 언제든지 명을 주자 복을 주자, 있는 자손을 수명장수, 없는 자식도 불귀시고야……”
그럼 나는 아우님의 부채에 맞춰 둥실둥실 어깨춤을 춘다. 넓은 거실 놓아두고, 좁은 현관에서 아우님은 노래하고 형님은 춤을 춘다. 노래가 다 끝나면 나는 두 손을 모아 감사의 인사를 한다.
“아우님, 우리 내년에도 견우와 직녀처럼 칠월칠석에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