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을 적잖이 했다. 사실 이번 세계만행의 시발점은 다름 아닌 수미산이었다. 영어로 카일라쉬 혹은 현지말로 킹리포체 이기도 한 수미산은 불교의 우주관에서 그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근원의 산이다. 비단 불교뿐만이 아니라 힌두교나 자이나교에서도 우주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산이라 다른 종교인들에게도 평생에 가지는 동경의 순례지다.
수미산을 이번 만행의 시작점으로 삼은 것은 우선 이러한 불교의 우주관에서 수미산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 있었다. 하지만 좀 더 직접적인 이유는 한 사형스님께서 수미산을 다녀오시고 난 뒤 손수 찍으신 사진을 거대한 액자로 본 뒤였다. 수미산을 목도한 순간 그것은 단순한 한 지형물로서의 설산이 아닌, 어떤 형언하기 힘든 거대한 인격과 조우하는 듯한 강한 인상을 주었다. 수미산이 마치 내 앞에서 나를 바라보며 무언의 말을 건네는 것만 같았다. 이 경험이 어쩌면 이번 수미산 순례의 가장 결정적인 동인인 듯하다.
그럼에도 수미산 순례를 망설였던 것은 기실 그 비싼 여행비 때문이었다. 십수 년 전에 티벳을 여행하는 데 제약이 적었던 시기에는 어떻게든 라싸에 도착만 한다면 비교적 자유롭게 티벳의 전 지역을 지프를 전세내고 다닐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에서의 형국은 전혀 그렇지 않다. 최근에만 해도 라싸에서의 스님들의 몇 차례 분신이 있었고, 그 밖의 다른 변방 지역에서도 중국 공산당 정부를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가 있어왔다. 그 때문인지 티벳은 정치·사회적으로 굉장히 민감한 이슈의 지역이 되었다. 외국에서 활동하며 티벳의 분리 독립을 활발히 주장하는 티벳의 영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와 이를 지지하는 서양의 세력들이 동조하는 이유로, 지금에 있어서 티벳을 자유롭게 여행하기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여수 엑스포 당시에 티벳의 고승을 초청해 법회를 한 이유로 여름내 한동안 여행객들의 티벳 입국이 불허되었다고 한다. 간신히 규제가 풀린 이번 여행에는 오직 여행사를 통해서만 순례길에 오를 수 있었다. 수미산과 구게 왕국을 통과하는 데에 총 5개의 퍼밋이 필요했다고 하니, 상황의 심각성이 그대로 드러났다.
청두로 향하는 에어차이나는 우연인지 인연인지 ‘108’번 게이트에서 출발했다. 청두 뒤늦게 도착해 단 하룻밤을 지낸 뒤에 라싸를 가는 아침 비행기 때문에 4시간만 자고 다시 새벽에 부리나케 일어나 공항에 도착해야 했다. 고된 일정 때문에 나는 라싸의 공가 공항에 도착했는지도 모르게 주변스님의 부름을 받고 잠에서 깨었다. 비행기에서 창밖을 보니 황량하게 헐벗은 산이 병풍처럼 공항 주위를 둘러쌌고 이와 대조적으로 푸른 하늘에는 작은 뭉게구름이 빼곡하게 메워져 있었다. 잠에서 덜 깬 멍한 정신에선지, 어쩌면 전혀 색다르게 접하게 된 이국적인 모양새 때문이었는지, 지난 일본에서와는 달리 이제야 올 것이 왔구나라는 실감을 했다. 라싸에서의 환영인사는 현지 가이드가 건네준 하얀색 실크 ‘하다’를 받으며 시작했다. 순수함과 신뢰를 상징하는 하얀 실크를 받으며 나누는 ‘타시델레’는 서로를 환영하고 축복하는 티벳 고유의 인사법이었다.
라싸에 도착한 첫날의 일정은 달라이 라마가 더위를 피해 여름을 지낸 별궁이었던 노부링카 참배였다. 노부링카는 라싸 내에서 지정된 유네스코 문화유적지 중의 하나였다. 중국 정부가 이 티벳 지역을 관할한 이후로 노부링카를 비롯한 티벳의 모든 지역은 중국의 모 작은 도시의 외관이 느껴지게끔 말끔하게 정비되었다. 문명에서 벗어난 오지의 한 가운데서 오체투지를 하는 티벳 순례인들의 행렬을 기대하기에는 도시가 상당히 현대화 되었고 정비되었다. 1989년도에 티벳에 들르셨다던 한 어른스님은 그 때와 정황과 비교하며 큰 격세지감을 느끼시며 너무 현대화되는 것을 우려하셨다.
늦여름이었지만 주인 없는 별궁을 단지 관람만 하는 데에서 무언가 공적감을 느꼈다. 단지 상상만으로 달라이 라마가 거닐고 지냈던 곳을 머릿속으로 그려볼 수밖에 없었다. 우리 일행은 이 노부링카만을 라싸에 도착한 날의 단 하나의 일정으로 삼았고 나머지는 고산적응을 위한 휴식시간으로 가졌다. 해발 고도 3500미터에 달하는 고산지역이기에 저지대에서 살다온 우리들이 고산병에 걸릴 공산이 큰 이유 때문이었다. 노부링카를 거닐 때만 해도 몸에 큰 이상을 느낄 수 없었지만 숙소로 돌아와 혼절하듯 두 시간정도 잔 뒤의 상황은 영 달랐다. 목 뒷덜미에 쉽게 가시지 않을 듯한 묵직한 두통이 찾아들었다. 후에 의사가 와 진단을 해보니, 보통의 사람 경우 혈액의 산소 함유량이 95에 달해야 하지만 79로 떨어진, 전형적인 고산병의 징후였다. 수미산 순례하는 스님들 중 가장 연식이 낮아선지 다른 노비구니 스님들은 55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심하신 분들은 구토도 하고 밥도 못 먹을 정도였으니 두통 수준의 나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라싸를 떠나는 13일간의 수미산 순례 일정을 소화해야 했기에 예방차원에서라도 고산병을 감내할 수 있을 주사와 약 처방을 받았다. 모진 질병 들 적에는 약풀 되어 치료하신다던 부처님은 가피 덕분인지 다음날 아침에는 거의 모든 스님들이 상당히 활기찬 얼굴로 다음 일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다음날 일정의 백미는 역시 포탈라궁과 조캉사원이었다. 티베트의 유명한 송첸캄포왕이 지은 이 궁전은 달라이 라마의 거처로 널리 알려졌고, 또한 1994년 유네스코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정교가 일치한 티베트에서 포탈라궁 하얀 백궁은 티베트의 정치를 관할하고, 붉은 빛깔의 홍궁은 종교를 관할한다고 한다. 다음으로 들른 조캉사원은 순례를 마치는 모든 티벳인들인 향하는 최종의 회향지다. 과연 포탈라궁에서보다 많은 티벳사람들이 오체투지나 마니차를 돌리는 등의 다양한 기도를 하는 모습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 조캉 사원은 송첸캄포 왕에게 시집을 온 당나라의 문성공주와 네팔의 브리쿠티 공주가 세운 사찰인데, 그 중에서 문성공주가 시집올 적에 가져온 석가모니 불상이 모셔져 있는 걸로 유명하다.
여행사의 일정에 맞추느라 여유있게 라싸를 둘러볼 수는 없는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오색의 휘황찬란한 룽다와 야크버터를 넣어 만드는 촛불, 마니차를 돌리며 코라를 도는 티벳인들, 오체투지를 행하는 순례자들은 언제나 있었다. 비록 본래의 불국토와 정신적 스승인 달라이라마가 부재한 라싸일지언정, 버터차의 촛불과 같이 사그라들지 않은 그들의 순수한 불심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인상으로 각인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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