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등사는 정취 가득한 산의 숲 속에 가만히 들어앉았다. 산등성이의 삼랑성은 전등사를 어여삐 에워싸고 도량의 배경이 되는 소나무는 힘이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솟았으니 그 품새가 온화하다. 그 풍경 안에 발을 들이니 마음의 무게가 절반쯤 줄어든다. 멀찍이서 범우 스님이 사붓사붓 걸어오신다. 스님께 여쭙는다. 잠시 행복할 뿐 다시 돌아보면 마음이 힘드니 어쩌면 좋겠습니까.
“마음도 행복도 깨달음도 피상적인 거예요. 우린 우리가 무형상의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는 걸 잘 몰라요. 마음 쓰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게 마음의 그릇을 키워야지요.”복권에 당첨되어 행복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고 되물으신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행복하지 않은 걸까 하고 거듭 물으신다. 그러고 보면‘행복’이란 말을참 잘도 쓰지만 주변에‘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마음의 그릇이 작기 때문이에요. 종지만한 그릇을 가졌으니 무얼 담아도 흘러넘치게 되고 그러면 옷을 더럽히게 되죠. 내 옷만 버리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
들의 옷도 같이 더럽힙니다. 모두의 행복이 망가지는 것이지요.”
그릇이 작은 사람은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이 다가오면 삶을 포기해 버린다. 허나 그릇이 큰 사람은 흔들리지않는다. 무엇이 오고 간다고 해서 그것으로 행과 불행을 만들지 않는다. 그러니 지혜의 그릇을 키워 무엇이 다가오든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다.“부처님의 말씀은 그 그릇을 키워주지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그렇게 자신이 스스로 행복해지면 주변 사람도 함께 행복해진다. 우린 모두 동업중생同業衆生이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깨닫고 보니 이 세상에 정토 아닌 곳이 없다고 했어요. 무학 대사께선 부처 눈엔 부처가 보이고돼지 눈에 돼지가 보인다고 했어요.”누굴 탓할 것도 아니며 환경의 문제도 아니며 조건의 문제도 아닌, 자기스스로의 문제라는 말씀이다. 본인이 변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환경과 좋은 조건이 주어져도 계속해서 불행할 뿐이라는 말씀이다.
결국 그릇을 키우는 것은 다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내 삶의 문제라는 말씀이다. 그러니 모두가 스스로 자기존재를 살필 때 함께 행복해진다는 말씀이다. 먼저 인생의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단다. 자기의 미래는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자신의 인생에서 큰 원을 세우고 그 다음에 순차적으로 작은원을 세워가며 그 길로 걸어가야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물이 흘러가는 것만 관조하면 되는데 그 물에 휩쓸려가니 힘든 것이지요.”스님은 행복해지려거든 불교적 삶을 살아야 한단다. 불교는 마음 다스리는 법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신앙은 결국 자기 내면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죠. 여러 가지 종교가 있지만, 결국엔 자기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어요.”종교를 불문하고 개념은 똑같다는 말씀이다. 누구나 자기 마음을 다스려 행복을 찾아갈 수 밖에 없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실천하느냐 했을 때 필요한 것은 의지력이다.“불교는 의지력 키우는 방법에 대해서 아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고 수행 방법을 통해서 제시하고 있지요. 그대로 따르면 됩니다.”
범우 스님은 지난 9월 종회의원으로 선출됐다. 그 자리에서 어찌 인연을 이끌어 가실지 여쭙는다.“변화를 이끌 수 있는 힘이 있어야죠. 힘이 없으면 허수아비에 불과합니다.”진정한 힘은 자기 공부와 살림에서 나오는 것.
스님은 더불어 함께 하는 여법한 도반스님들과 스님을 따르는 신도들의 힘으로 소신 있게 나아갈 것이란다. 스님은 고등학교 시절에 부천 석왕사 학생회 활동을 하며 불교와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는 대학교를 다니며 대불련 대전지부장을 역임하고 서울에선 한국 대학생 불교연합회 회장으로도 활동했다.“사람 좋아하는 데에 이유가 없는 것처럼, 부처님 가르침을 듣고 친구들과 후배들에게 이야기 하는 것이 재미났어요.”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출가했는데, 당연히 갈 사람이 가는 것처럼 환송회만 열 번 넘게 했다. 모두가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대불련 활동을 하며수없이 해인사를 오가며, 출가는 꼭 해인사로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인연으로 해인사에서 혜암 스님을 모시며 행자 생활을 했다.
“조계종 사태가 났던 해였어요. 그 불합리함을 개선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구조적인 문제를 극복하는 것은 누가 해줘야 할 일이 아니라 내 스스로 출가해서 수행을 통해 극복해나가야겠다는 원력이 있었죠.”
혜암 방장스님께서는 범우 스님에게 왜 출가를 했냐고 물으셨다. 스님은 탐내고 성내고 나태해져서 무엇에 끄달리며 사는 것이 아니라 의지대로 살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그러자 방장스님께선 부처가 되는 원을 세우라
고 하셨다. 그것이 이제야 이해가 간다. 이론적으로만 이해하지 말고 실천하라는 씀이었다. 큰 원을 세우고 걸어가라는 말씀이었다.
그래서 스님은 대학이 아닌 송광사 강원으로 갔다. 전통적인 대중 생활 속에서 자신을 탁마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곳에서 4년 동안 원 없이 공부하고 일했다. 범우 스님은 대학에서 배운 컴퓨터를 사용했다. 도반과 후배스님들한테 컴퓨터를 가르치고 그것을 통해 효과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불교를 공부하는 이들을 위해서 강원연합회란 이름으로 불교자료집을 CD로 만들었다. 큰 스님들의 강의를 녹취하고 윤문해서 공유했고 법요집도 만들어서 나누었다. 그리고 해인사에서 살 때는 컴퓨터로 신도관리시스템을 만들었다. 그 당시엔획기적인 일이었다. 그러고는 선방을 몇 철 다니다가 영국 런던의 연화사 주지로 갔고, 돌아와선 전등사 총무국장, 기획국장을 역임하고 봉은사 교무국장 소임을 보았다. 그러고는 올해 6월부터 전등사 주지로 살고 있다.
“소임을 안 살 때보다 더 치열하게 살아야지요. 내 모습이 불특정다수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까요.”
스님은 3년 동안 신도들과 함께 금강경 독송 기도를 하기로 했다. 무설전에 석가모니부처님을 새로 모시며 10월 23일에 입재를 시작으로 매일 사시에 금강경을 3독 하고 매월 한 번씩 모여 공부를 점검하며 금강경을 7독 하는 것이다.“기도를 위한 기도는 의미가 없고, 3년간 독송을 통해서 금강경에 대한 더 깊은 사유와 실천행이 필
요하다 싶었어요. 이 기도를 통해서 자기 스스로를 금강경의 가르침에 비춰 삶을 전환시켜보자는 뜻입니다.”
매일 3독을 하는 것은 나 자신과 가족과 돌아가신 영가들을 위해서이고, 매달 7독을 하는 것은 육도윤회의 사슬을 끊고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자는 뜻이며, 그것을 36개월 동안 하는 것은 석가모니부처님과 33분의 조사스님과 전등사에 전등록을 전하신 인기 조사스님,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다.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백화점식으로 공부하고 있어요. 하나를 깊이 있게 공부해서 내 삶의 근간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기도가 아니라 지견을 열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행복은 바란다고 오는 것이 아니라 지견을 열었을 때 온다. 그렇기에 스님은 금강경 독송을 통해서 가르침대로 실천하며 모두가 지견을 열고 행복해졌으면 한다.
“마음 쓰는 법에 대해서 배우는 거예요. 동일하게 마음을 쓰더라도 거기에 담긴 가치는 다르지요. 하나를 가지고도 천개의 가치를 아는 것이 금강경이에요.”범우 스님은 금강경이 우리 실생활과 가장 가깝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금강경 독송을 하자는 생각이고, 단순히 독송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경, 간경도 같이 할 생각이다.
“3년이란 기간 동안 어떤 사람이 어떻게 변할지 몰라요. 그러나 내 스스로가 그것을 통해서 바꿔나가야겠다
고 생각해요. 그런 내 모습을 통해서 바뀌는 인연들도 있겠지요.”
모두가 석가모니 부처님의 복장에 발원문을 넣고 3년 동안 함께 기도하게 되는데, 한 달에 한번 있는 기도는 직장인들을 위해 평일에 한번 주말에 한번 열어 편한 날에 오도록 했다.
“그것을 통해서 결국엔 참선으로 가야지요. 마음은 마음으로 다스려지는 것이니까요. 그 전에 지식과 사유를 넓히다 보면 어느 날 마음으로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게 되겠지요.”
범우 스님의 원력은 1250명의 인연 있는 금강 행자를 만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전등사라는 공간이 관광지가 아닌 신행도량이 되기를 바란다. 몇 십년 동안 관광지가 되어버린 전통사찰들이 제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다. 전통 사찰들이 새로운 역할을 하기 위해서 범우 스님은 앞장서서 나아갈 생각이다.
“참 많은 사람들이 전등사에 다녀가요. 그러나 실질적인 인연 관계가 없으니 그냥 스쳐갈 뿐이지요.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왔는데 대웅전에서 기도한 사람은 두 명뿐이에요.
이 도량에 온 인연으로 마음 한번 움직여서 삶을 변화시킬 수 있었으면, 그런 도량이 되었으면 합니다.”
스님의 나긋한 걸음을 따라 숲속 산책길을 걷는다. 아무 말 없으시다. 잠시 매화나무 옆에 앉으신다. 매화나무와 얘기라도 나누는 듯 가만히 매화를 바라보신다. 고개 들어보니 저 멀리 염화강이 내려다보인다. 스님이 다시 걸음을 옮기신다. 잠시 소나무를 올려다보신다. 소나무가 높이 솟아 저녁 빛을 받느라 무념중이시다. 아무 말 없으시다. 그렇게 숲길을 걸어 내려와 스님은절 마당에 가만히 앉아 찾아오는 저녁을 맞으신다. 스님을 따라 나도 아무 말 없다. 이토록 온화한 풍경이 그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