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수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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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이야기 - 성안┃팔만대장경 보존국장
2012년 09월 367호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유명한 속담과 연관이 있는지, 사람들은 자신의 흔적과 이름을 남기고 싶어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의 명산대찰의 기암괴석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본인과 가족의 이름을 새겼는지 모른다. 해인사에서 가장 유명한 홍류동 계곡에 위치한 농산정의 아름다운 큰 돌들에도 역시 예외가 아니다. 본인이 직접 새겼는지 아니면 석공에게 부탁하여 새겼는지 모르는 많은 사람들의 이름으로 빽빽하다. 그러한 예를 우리는 팔만대장경판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대장경판의 조성에 참여한 각수들은 본인의 이름을 경판의 외곽에 조그마하게 음각이나 양각으로 새겼다. 이들은 누가 이 경판을 조성 하였는지 후세 사람들에게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13세기 중엽 대장도감과 분사도감 산하의 판각공간에서 팔만대장경판을 직접 판각한 전문 각수들의 이름이 조사되었다. 현존하는 팔만대장경의 개별 경판에 새겨져 있는 각수의 인원은 1,800여명이 넘는다. 이들 가운데는 승려, 유교 지식인, 하급 관료, 지방 토착세력, 백성과 더불어 미성년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승려 각수들은 비구比丘, 사미沙彌, 화상和尙, 도인道人 등으로만 표기하였다. 대표적인 승려지식인으로는 천태산인天台山人 요원了源, 산인山人 명각名角 및 신성信成, 대사大師 효여孝如석광釋光이고, 문인지식인으로는 진사進士 임대절林大節과 영의永義등이 확인된다. 하급관료로는 대정隊正 허백유許白儒, 지방세력인 향리로는 호장중윤戶長中尹 김련金鍊과 호장 배공작裴公綽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최소 1,800여명의 각수들은 자신의 사정과 능력에 따라 판각사업에 참여하면서, 1년 동안 10장 이내부터 최대 140여장까지 판각하였다. 특히 김승金升이라는 각수는 12년 동안 참여하여 800장 정도를 판각하기도 하였다. 또 경판의 외곽에 명각심작明覺心作이라는 글자를 볼 수 있다. 이것은 경판의 조성에 참여 하였던 각수 명각이 마음을 다해 새겼다는 것을 보여 준다. 많은 각수들이 심작心作이나 손재주를 다하여 새겼다는 수단심手段心이라는 문구를 각수의 이름 뒤에 같이 새겼다. 이것은 각수들이 부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한 글자 한 글자씩 혼신의 노력을 다하여 경판을 조성하였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들 각수들은 승려들과 세속인들이 판각 공방에 함께 소속되어 협조체제를 유지하였다. 이처럼 팔만대장경의 조성사업에 참여한 사람들은 그 출신이 특정 계층이나 사원 및 종단을 초월하여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특히 이 조성사업은 불교계와 세속 사람들로 구성된 교敎·속俗 이원적 조직이 긴밀한 협조 관계를 유지하면서 운영되었다. 이로써 팔만대장경은 13세기 중엽 모든 고려 사람들의 사회적 통합 노력과 의식을 담고 있는 민족문화유산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