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 반 사건 현장에서
딸의 이야기
내 차 앞에 한 대형 세단이 평행주차가 되어 있었다. 주차공간이 널널한 낮인데도 꼭 평행주차를 해놓는 얌체들이 있다. 그런데 그런 차들을 보면 좋은 차들이 많다. 오늘도 그렇다. 1억 정도를 호가하는 외제차였다. ‘조금이라도 걸으면 죽나보다.’ 확 짜증이 올라왔다. 현관 앞 주차장은 약간의 경사로이다. 뒷바퀴에 바쳐 놓은 버팀목을 빼고, 차를 밀어야하기 때문에 여자 힘으로는 어림도 없다. 조금 전 현관을 지나올 때 보니, 경비 아저씨는 받아 놓은 택배 물품을 정리하고 있었다. 차를 밀 때마다 아저씨는 흔쾌히 도와주지만,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부탁한다는 것은 늘 미안한 일이었다.
그런데 차주인은 버팀목을 해 놓지 않았다. 사건은 여기서부터 시작했다. 버팀목만 없으면 내 힘으로도 밀 수 있을 터였다. 내 차안에 짐을 던져 놓고서는 온힘으로 밀었다. 자체가 생각보다 무거웠다. ‘야! 장미란도 있는데, 좀 더 힘을,’ “윽!” 기합을 주어 밀었다. 차가 뒤로 굴렁굴렁 움직이더니, 드디어 탄력을 받아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차가 예상했던 것보다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맙소사! 사선으로 후진하고 있는 것이었다. 미세한 비탈과 미미한 비뚤어짐이 결합하자 몇 초 후 일어날 일이 보였다. 이 고가의 외제차는 일렬 주차되어 있는 대형차 앞 범퍼를 박을 것이다.
생각을 할 겨를도 없는 순간이었지만, 나는 이미 많은 생각을 했고, 여러 선택들 중 하나를 결정해서 벌써 실행하고 있었다. 스스로 뒤로 가고 있는 차보다 더 빨리 뛰어, 양손으로 차 뒤를 밀어 정지시킨다는 것은 홍해가 갈라지는 것만큼이나 기적적인 일이다. 그렇다고 발만 동동 구르면서 두 차가 부딪히는 것을 수수방관 할 수는 없었다. 이건 정말 보험처리도 안 된다. 차는 ‘나’라는 것보다는 훨씬 더 보호 받아야 했다. 나는 ‘나’를 두 차 사이에 완충제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워낙은 내 몸 전체로 막으려 했지만, 내가 뛴 속도가 엄청 늦어 오른쪽 다리만 두 차 사이에 넣고 말았다.
“악! 악! 악!”
살려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사치이다. 덜 아픈 것이다. 차끼리 부딪히는 것은 막았지만 범퍼를 찌그러뜨리고도 남을 힘을 내 오른쪽 허벅지가 받았다. 차는 계속 나를 밀고 있었다. 오로지 찢어지고 불붙는 아픔이 높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맨 처음에는 목구멍 깊은 곳에서 짐승과도 같은 비명만이 나왔다. 눈물, 콧물 심지어 침까지 흘렸다. 35℃도 넘는 날 제일 뜨거운 시간에 누가 거리에 나왔을까?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울부짖음은 어느 누구도 부르지 못하고 아파트 건물에 부딪치고 또 부딪쳤다. 마침내 부르짖을 수도 없었다. 고통은 나에게서 말을 빼앗고 생각도 없애고, 오로지 아픔만이 있게 했다. 얼굴의 눈물도, 침도 다 말랐을 때, 아픔이 ‘나’라는 것을 빼앗았다. 아픔과 분리되어, 아픔을 보고, 느끼고, 벗어나려 꿈틀거렸던 ‘나’가 완전하게 ‘아픔’ 속에 녹아 버렸다. ‘아픔’의 정 가운데에는 깊은 물속과도 같은 육중한 고요만이 있었다.
저 멀리서 이웃 주민들이 뛰어오고 있는데 실상은 물속에서 걸어오듯이 두꺼운 공기를 헤치면서 간신히 나에게로 왔다. 드디어 그들은 차를 내 몸에서 떼어냈다. 그 순간 ‘나’라는 것이 물속에서 솟아오르듯이 나타났다. 몸의 느낌이 돌아왔다. 아픔이 돌아왔다. 나는 다리가 빠져버린 인형처럼 쓰러져 아스팔트 위에 놓여 있게 되었다. 그런데 아픈 것보다도 뼈가 시리도록 외로웠다. 서럽도록 외로웠다. 어린 아이처럼 엉엉 울며 엄마를 불러달라고 했다.
“엄마, 엄마 불러주세요. 근데 엄마 놀라지 않게 해야 해요.”
어머니의 이야기
딸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철이 없다. 모임에서 만난 분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그분의 딸이 외국에서 유학을 할 때, 밥상에 항상 딸의 수저를 같이 놓았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가 그런 미담의 주인공이 아닌 것을 내심 질투하는 것 같았다. 딸은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것을 볼 줄 모른다. 평상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유난떤다고 싫어했던 남편 때문에 아이들에 대한 사랑도 내 마음껏 할 수 없었다. 딸이 독일에 있었을 때, 나는 남편의 밥을 푸고 난 후에, 내 밥이 아니라 딸의 밥을 펐었다. 그리고 그 아이의 밥을 내가 먹었다. 그렇게 나는 내 딸의 매일의 한공기의 밥이 그 아이의 허기진 몸과 마음을 채우기를 기도했다.
지금도 그런 게 있다. 딸이 집에 들렀다가 갈 때는, 차를 운전해서 나갈 때까지 꼭 베란다에서 배웅을 한다. 그 이야기를 하면, 남편을 닮은 딸은 유난떤다고 하지 말라고 할 게 뻔하다. 용의주도한 딸은 차를 타기 전에, 집 쪽을 확인해서 베란다에서 내 그림자라도 보일라치면 전화를 걸어 야단을 칠 게 뻔하다. “엄마, 유난 떨지 마.” 그래서 그 아이에게는 비밀이다. 나도 예전엔 내 어머니의 딸이었고, 지금은 내 딸의 늙은 엄마다. 그래서 내가 내 딸보다 하나 나은 것이 있는데 “살아서는 어머니가 그냥 어머니더니, 그 이상은 아니더니/ 돌아가시고 나니 그녀가 내 인생의 전부”라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얘가 부탁하지 않아도 그 얘가 헤매는 곳에서 오록이 서 있을 테고, 그 얘가 찾지 않아도 그 얘가 흔들릴 때에 묵묵히 기다릴 것이다. 그렇게 내 어머니가 나에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했듯이, 내 딸도 언젠가는 드러나지 않는 것을 볼 수도 알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은 이렇게 내 딸의 매일의 한 마음이 그 아이를 살게 하기를 기도한다.
하지만 오늘은 딸을 배웅할 수가 없었다. 딸이 나가자마자, 막내가 일찍 들어온다고 전화를 했다. 그 아이는 자기가 집에 있을 때, 내가 집안일을 하는 것을 싫어한다. 부산스럽다고 싫단다. 그 아이가 들어오기 전에 오이지를 담겨야 해서 베란다에서 배웅하는 것을 안했다. 다용도실에 앉아 일 좀 하려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인터폰을 드니 경비 아저씨였다.
“아저씨, 어쩐 일이세요?”
“좀, 밑에 같이 내려가세요. 놀라지는 마시고요. 따님이 다치셔셔…”
웬만해서 나를 찾을 얘가 아닌데 큰일이 난 것 같았다. 아무 힘도 없는 늙은 어미를 찾을 정도면 얼마나 많이 다친 것인지 무릎이 후들거렸다.
저녁 5시 병원에서
어머니의 해석
“그래도 다행이지. 무릎 관절 안 다친 게 어디니. 근육이 찢어진 걸로 끝났으니. 관세음보살님이 도우셨지.”
어머니 집 현관에는 관세음보살의 탱화가 걸려 있다. 집안에 좋은 일이 있으면 당연히 관세음의 은공이요, 집안에 걱정거리가 있으면 관세음이 보살펴 주시며, 어쨌든 모든 걱정거리도 다 지나가기 마련인데도, 항상 보살님의 가피로 수월하게 넘긴 것이다.
“고~뤠! 관세음보살님이 내 무릎에 손을 대시어 차가 범하지 못하게 하셨다! 믿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인경아, 사실은 항상 베란다에서 너를 배웅했는데…”
“유난이네, 내가 어디 멀리가?”
“네가 그럴 줄 알았어. 어쨌든 오이지를 막내 오기 전에 담가야 해서, 너 가는 걸 안 본거야. 근데 내가 네가 차에 끼여서 비명 지르는 걸 봤다봐, 신발이나 신었겠니? 엘리베이터를 무슨 수로 기다려. 계단을 뛰어 내려가다가 심장마비로 죽었거나, 아마 발을 헛디뎌 층계에서 굴렀을 거야. 그런데 관세음보살님께서 나를 살리시려고 오이지를 담그게 하신거지. 그러니 관세음보살님이 얼마나 고마우시니!”
딸의 해석
“아니네! 꿈도 안 꿨는데 사고 난 게 이상하다 싶었어. 엄마가 날 안 봐줘서 사고가 난 거네. 다음부터는 내차가 아파트 진입로 나갈 때까지 봐! 오늘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은 엄마구먼.”
“그건 아니지.”
PS. 우리 집안사람들 모두는 내 해석에 손을 들어 주었다. 이제 우리는 높은 곳에서 우리를 배웅하는 어머니의 눈을 알지만 모르는 척 운전을 해서 사라진다. 어느 자식이 우리를 항상 기다린 어머니의 눈을 감히 쳐다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