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자나불은 우리의 부처님
임수경 의원은 3년간 월간 ‘해인’의 객원기자로 지내기도 했고 해인사 대비로전 건립 기획홍보위원으로도 있었다. 그러면서 1년 반 동안 해인사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비로자나불은 나의 부처님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왼쪽 검지를 오른 손으로 감아쥐고 계시는데, 그것은 중생과 부처가 본래 하나이고 번뇌와 깨달음이 본래 하나라는 것을 상징하죠. 화합과 평화의 빛인 부처님인 거예요. 그러니 우리나라에 꼭 맞은 부처님이시죠.”
그녀는 3년 전 대비로전에 고 노무현 대통령의 등을 달았다. 그리고 해인사에 들를 때마다 기도하며 그 등을 바라보다가 온다.
“절에 머문 건 제 인생에서 귀중한 시간이었어요. 우린 해야 할 일과 약속에 묶여서 살잖아요. 근데 한 순간에 그 모든 걸 놓을 수도 있다는 걸 배웠어요.”
건강하고 정의롭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불행이 닥치면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저 누군가를 혹은 또 다른 무언가를 원망하게 된다. 그녀는 갑작스럽게 닥친 불행을 부처님의 품 안에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내가 모르는 죄도 있는 거잖아요. 이 생에 지은 죄가 없다면 전생에 지은 죄가 있겠지요. 그것을 참회하며 이겨낼 수 있었어요.”
불교 의식을 전혀 몰랐던 그녀는 절에 살면서 종교 의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다. 마음속에서의 믿음도 중요하지만 의식을 통해서 정화가 되는 느낌을 받았다.
“절을 하는 건 나를 비우고 나 자신을 바라보는 거잖아요. 108배를 하면서 진정한 나를 보는 게 좋아요.”
그녀는 철학적, 문화적, 역사적 차원에서 불교의 가치를 말한다. 문화적 차원에서 불교는 민족적 가치와 전통을 잇는 글로벌한 자산이라는 생각이다.
“새벽에 스님들이 법고 치시는 모습을 봐요. 온 마음을 다하는 그 정성어린 모습은 종교적인 차원만이 아니라 문화적 가치로도 인정을 받아야 해요.”
그리고 남북 교류를 하는 데에 있어서도 불교를 통한 문화 교류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단다.
“절에 가면 마음이 편안하잖아요. 절에 가서 스님들을 뵈면 이미 정권 교체가 다 된 것 같아요.”
여행자에게 주어진 희망의 시간
제주도 올레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다. 그녀도 나도 여행 중이었는데, 서로가 자주 떠도는 여행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었다. 세상의 수많은 길을 걷다가 언젠가는 마주치지 싶었으니 반가웠고 그날의 제주 바람 속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무언가를 다 비워낸 몸뚱이인 것처럼 바람 속에서 무척 자유로워보였다.
“여행은 자기 성찰이잖아요. 자기를 돌아보는 것. 이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젊은 청춘들에게 여행을 많이 권하죠.”
전공 수업과 토익 점수와 취업난 속에서 허덕이는 젊은이들이 대부분이다. 신문도 책도 영화도 보지 않고 길을 나서지도 않고 도서관에 앉아 있어야 하는 청춘들에게서 열정을 보지 못 할 때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인문학적 소양은 단기간에 벼락치기로 되는 게 아니에요. 끊임없이 쌓아가는 것이지요.”
임수경 의원은 요즘 젊은이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게 부모세대의 잘못이란 생각이다. 지금 대학생들의 부모는 그녀와 함께 학생운동을 하던 세대이다. 함께 운동을 하지 않아도 지지해주던 친구들, 대리출석을 해주던 친구들, 감옥에 가면 안타까워하던 친구들이다. 그들이 생활인이 되어 살아가면서 자신의 자식들에겐 그런 정의로움을 전수하지 않았다. 내 자식만큼은 그렇게 가슴에 주먹을 쥐며 살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을 것이고, 이 먹고 먹히는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게 만들고도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취업전선에 있는 그 아이들이 행복한가요? 우린 다시 시작해야 돼요. 아직 안 늦었어요.”
그 당시의 젊은이들에겐 당당함과 자부심이 있었다. 손에 쥔 게 없어도 불의에 맞서 싸우는 청년의 정의로움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싸우고 있는 자는 20대 청년들이 아니다. 여전히 그 정의롭던 젊은이 몇몇이 이삼십 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에도 싸우고 있다.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라는 걸 만들었죠. 민주화운동을 기념할 단계라고 생각했던 건데, 결과적으로는 그 단계가 아니잖아요.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닌 거예요. 참여정부 10년이라고 하는데 그 시간을 성과 있게 쓰지 못한 거예요.”
역사엔 이긴 자, 강한 자들의 기록만 남는다. 우리가 백년, 천년 전의 역사를 검증할 방법은 없다. 살아서 이야기하는 자가 없으니 추정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역사의 한복판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의 역사를 정사로 바로 남겨야 한단다.
“우리가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살아 있기 때문이에요. 그나마 이 정도의 힘이라도 갖고 있을 때 싸우지 못하면, 5.16쿠테타가 구국의 결단으로 역사에 남는 거예요. 우리가 살아 있을 때 겪었고 70,80년대의 그 긴 터널을 뚫고 나왔는데 그게 최선의 선택, 구국의 결단으로 역사에 남는 걸 어떻게 눈 뜨고 보겠어요. 할 일이 많습니다.”
임수경 의원은 민주통합당 의원 총회에 나가면 힘이 생긴다. 자리에 앉아 의원들을 보고 있으면 대학 시절에 함께 거리를 뛰던 사람, 같이 강연을 듣고 토론회를 준비하던 사람, 같이 장례식장에서 울던 사람들이다. 공통의 가치관을 추구하면서 시대와 역사를 같이 해온 가족 같은 사람들이다. 그 뛰어난 사람들과 함께 해나가는 일들이 참 소중하다.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풀어가잖아요. 재미있고 보람 있어요. 실제로 법안을 통해서 제도화 시킨 게 쌓이면 큰 보람이 있는 직업인 것 같아요.”
그런 그녀의 하루하루가 참 바쁘게도 지나가니 언제 어디서 소소한 행복을 찾을까 싶다.
“행도 불행도 없어요. 우리가 늘 계획을 세우면서 살지만, 사실 그거 아무 것도 아니에요. 그냥 오늘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지요. 늘 부족하지만 그렇게 살아요.”
또 바쁘게 국회의 한 순간 순간이 돌아간다. 역사의 한 순간 순간이 새겨진다. 임수경 의원은 그 한복판에서 참 생생하게도 웃는다.
“한 스님이 제게 그러시대요. 제 인생에서 만행이 너무 길었다고. 지금을 제 인생의 결제 기간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