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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메지성에서 일본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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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스님의 유라시카 만행 - 원제스님 2012년 09월 367호

히메지를 가는 이유는 단순했다. 히메지성을 보기 위해서였다.
간사이 지방을 여행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고베를 서편의 마지막 도시로 삼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는 이번 만행에서 반드시 히메지성을 보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성은 ‘천공天空의 백로白鷺’라는 별칭을 가진, 우아하고 고결한 자태를 가진 성이었다. 파란 하늘 아래 흐드러지게 핀 벚꽃들 사이로, 하얀 몸체를 위용 있게 드러낸 히메지성의 모습은 말 그대로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한 마리의 백로를 연상케 한다. 언젠가 사진을 통해 본 그 아름다움에 나는 단번에 압도당한 기억이 있다. 그리고 히메지성은 적군에 의해 단 한 번도 함락된 적이 없는, 말 그대로 ‘난공불락’의 명예로운 기록을 가진 성이기도 했다. 도대체 어떠한 이유 때문에 점령될 수 없었는지 내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 밖에도 히메지성은 1993년, 일본에서 제일 처음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된 문화 유산이라는 기록도 가진다. 간단한 역사적 사실을 말하자면, 1333년에 히메지성의 그 기본이 완성되었고, 16세기 도요토미 헤데요시가 천수각을 증축했으며, 1601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9년여에 걸쳐 개축을 한 역사를 지닌다.
히메지에서는 미국 아리조나 출신의 타라와 매튜 커플이 카우치서핑의 호스트가 되어주었다. 그들 모두 히메지시 교육청이 정식으로 고용한 중고등학교 영어선생님이었다. 이 커플은 아리조나에서 교사 생활을 했었지만, 임금이나 근무의 여건들이 너무 힘들게 느껴져, 일본으로 영어 선생을 자처해 들어왔다. 그들이 지내고 있는 시라사기 레지던스 건물에는 수십여 개의 원룸이 있는데, 이곳에는 오직 히메지시 교육청에 의해서 고용된 영어 선생님들만 아주 저렴한 비용을 지불하고 지내고 있었다.
히메지에 도착한 시간은 이미 어스름이 짙게 깔린 저녁 시간이었다.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마치고 난 뒤에 숭전 스님과 나는 타라의 안내대로 정해진 버스를 타고 시라사기 레지던스로 향했다. 그런데 버스를 타고 가며, 역 한참 앞쪽으로 히메지성이 있어야 할 곳에 웬 직육면체의 도시형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사물을 잘 분간하기 힘들 정도의 어둠 때문에 도대체 무슨 건물인지 파악할 겨를 없이 버스는 무심코 지나갔고, 나는 그저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약속 시간에 정확하게 맞춰서 저녁 8시 도착한 숙소에서, 타라는 약간 상기된 소녀의 표정으로, 매튜는 상당히 여유로운 얼굴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히메지에 가기 전에 미리 들른 오사카에서 그들을 위해서 산 치즈케잌을 같이 나눠 먹으며 녹차를 마시며 간단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런데 이야기 나누던 와중에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히메지성 지금 지붕 기와 보수공사 중이어서 성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어요. 그래도 공사하는 현장을 구경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공사중이라 난감했다. 그제서야 버스를 타고 오며 보았던 검은 직육면체의 건물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히메지성 보수를 위해 지은 가건물이었던 것. 히메지성은 2009년부터 2014년까지, 무려 5년에 걸쳐서 천수각의 지붕 기와를 교체하는 보수 공사를 하는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숙소를 나서서 히메지성까지 걸어서 갔다. 30여분 채 가지 않아서 보수중인 히메지성의 베일이 완연히 드러났다. 벚꽃은 이미 다 떨어지고 없었어도 하늘은 정말 푸르고 높아 발걸음은 한껏 가벼웠지만, 히메지성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천수각을 완전하게 둘러싼 가건물의 모습은 그 육중한 크기만큼이나 우리를 낙담케 했다. 히메지성과 그 옆에 자리한 일본식 정원 고코엔을 입장하는데 총 720엔을 지불했다. 그런데 천수각의 보수 현장을 관람하는데, 200엔을 더 내야만 했다. 보수 공사 때문에 천수각의 온전한 모습을 보지 못해 실망을 했는데, 보수 현장을 관람하기 위해서 돈을 더 내야 한다는 상황이 잘 납득되질 않아, 우리는 이래저래 불만이었다. 그러나 보수중인 가건물의 안에 들어서서 현장을 둘러보면서 우리들의 생각은 조금씩 변하더니 급기야 180도로 바뀌어버렸다.
그것은 바로 보수하는 과정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 보여줄 수 있는 일본인들의 자신감과 긍지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공사를 하는 천수각의 지붕은 완벽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아주 말끔하게 흐트러짐 없이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간 히메지성이 어떤 역사적 과정을 통해서 건축되었고, 증축·개축·보수되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안내도와 비디오 자료를 보고 난 뒤에 적잖이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보수하는 과정을 공개할 수 있다는 자신감뿐만 아니라, 이러한 보수라는 과정마저도 관광이라는 상품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사고의 획기적 전환을 보았다고 해야 할까. 출가 전 서울에서 지낼 적에, 그 언젠가 경복궁에 가보려 했지만 보수중이어서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적이 있었다. 경복궁을 둘러싼 회색의 철판에는 붉은색의 ‘보수 공사중’이라는 큼지막한 표기와 함께 보수공사의 내용과 그 기간을 간단하게 설명한 글귀가 붙어 있었다. 때문에 나는 별 수 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한국에서는 관계자 외에는 보수 현장에 들어설 수 없고, 물론 일반인은 그 보수 과정을 볼 기회가 전혀 없다. 또한 한국인들의 급한 성정상, 지붕의 기와를 교체하는 데에 무려 5년이라는 시간이 걸릴 리 만무할 터였다. 농으로 한 이야기였지만, 5년이면 한국에선 아예 히메지성을 하나 더 지을 수 있지 않을까 할 정도로, 한국인들은 성격이 급하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참 달라보였다. 그들은 복원을 위해 긴 시간을 투자하며 인내하고, 완벽한 보수를 하고 있다는 데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고, 이러한 제반의 과정을 비디오나 사진 자료, 축소 모형 등등을 활용해 그럴듯하게 상품화했다. 기대했던 히메지성을 못 본 대신 말로만 듣던 일본을 보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 히메지 만행이었다.